아무것도 하지 않는 법
제니 오델 지음, 김하현 옮김 / 필로우 / 2021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예술가이자 교수인 저자는 이 책에서 현재 우리 사회의 생산성 개념에 의문을 제기하면서, 하지 않는 것, 즉 거부에 대해 얘기한다. 관심 경제를 중심으로 각 장마다 유지 노동과 보존 작업보다 파괴가 더 생산적이라는 관심경제의 부수적 논리를 파악하고, 대안으로써의 도피를 택한 몇몇 인물과 집단을 살펴보며, 거부의 역사를 살피고 동시에 창의적 거부 공간이 어떻게 위협받는지를 보여준다. 그리고 관심경제에서 벗어나 주도적인 방식으로 삶을 영위하고 이상적인 소셜 네트워크를 상상하고 제안하면서 '인간이 인간이 되는 데 전념' 하고자 했음을 밝힌다.








먼저 '딥 리스닝Deep Listening'. 저자는 새소리를 듣는 것으로서 딥 리스닝 방식을 체험하는데, 이때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조용히 걸으면서 새소리가 들릴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다. 그런데 경청도 마찬가지. 우리는 타인과 대화할 때 온전히 상대의 말을 듣기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경우가 드물다. 별다른 이유도 없이 핸드폰을 손에서 놓지 못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하다못해 다른 생각을 한다거나 상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자신이 할 말을 떠올리곤 한다. 저자는 이어서 완전한 몰입 상태에서의 걷기를 예로 들며 일정 기간의 단절이 주는 유의미한 경험과 변화에 대해 말하는데, 이 또한 현대인에게서 찾아보기 어려운 모습이다. 요즘 걷기 운동이 간편하게 실천할 수 있는 운동으로서 인기가 한창이지만, 이 걷기에 집중과 몰입이 동반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운동에 편리하도록 경량화한 이동통신이 개발되고, 블루투스 무선 이어폰 정도는 모두 귀에 꽂고 다니고 있는 실정이니 인간은 그야말로 시간과 공간의 효율성을 온몸으로 체현해내고 있는 중이다.



저자는 거부하는 것과 모든 것에 안녕을 고하는 것은 다르다고 얘기한다. 후자는 자신이 살아가는 세상에 대한 책임을 방치하는 것일 뿐이라고. 저자의 말처럼 1960년대 코뮌은 무척 매력적이고 낭만적이기까지 하지만, 현실적으로 실현하기에는 불가능에 가깝다. 마찬가지로 잠시나마 인터넷을 멀리하고 뉴스를 읽지 않는 것은 미봉책에 불과하다. 특히나 업무도, 중고대학교의 수업까지 온라인으로 전환하는 팬데믹 시대에 인터넷과 거리두기는 1960년대 코뮌 이상으로 비현실적일 뿐이다. 저자도 이를 모르지 않기에 모든 것을 거부하는 것은 실수라고 재차 말하고 있는 것일테고, 사색과 참여와 대응의 필요성을 제안한다. 한 발짝 떨어져 객관적 관점을 유지하며 현재를 살아가는 동시대인으로서의 책임과 소명이 무엇보다 필요한 때다.


우리가 실질적으로 도움을 주고 받을 수 있는 존재는 주위 사람이다. 외형적인 부분 뿐만 아니라 이웃과의 소통의 부재와 단절은 인간을 외롭고 피폐하게 만든다. 재난 상황이 발생하거나, 응급 상황이 닥쳤을 때 어딘가에 도움을 요청하고 서로를 보듬어 줄 수 있는 이들은 SNS 팔로워가 아니라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다. 21세기에 SNS 친구들이 의미없는 존재라는 것은 물론 아니다. 온라인 상에서 이루어지는 공감과 소통에 진정성만 동반된다면 점점 더 고립되어지는 현대인에게 좋은 동반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상대를 이해하고 공감하려는 노력을 불필요한 감정 소모라고 여긴다면 현실에서든 온라인에서든 늘 외로울 수 밖에 없다. 무엇보다 다양한 성향을 가진 사람을 만나는 과정에서 타인을 이해하고 자신을 성찰할 수 있는 기회를 생각해 보면 온라인에서의 교류는 분명 한계가 있다.


저자는 상업적인 소셜 네트워크가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동안, 우리가 할 수 있는 진정한 거부는 바틀비의 대답처럼 질문의 성립 조건 자체를 거부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관심경제에 있어 진정한 철회에는 지속적인 훈련이 필요하다. 관심을 거두는 능력 뿐만이 아니라 다른 곳에 관심을 기울이고 관심을 확대.증식하며 관심을 더욱 예리하게 갈고 닦는 능력이 필요하다고. 더 나아가 미디어와 광고가 우리 감정을 이용하는 방식을 면밀히 연구하고, 미디어가 조정하는 알고리즘 버전의 자기 모습을 이해하며, 우리가 무의식 중에 당하는 가스라이팅과 두려움과 불안의 근원이 무엇인지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관심경제에서 '제3의 공간', 즉 관심을 돌리는 행위가 중요한 이유는 개인의 관심이 집단적 관심의 토대가 되고, 모든 종류의 유의미한 거부 행위의 토대가 되기 때문이다. 이에 저자는 생각의 토대를 복원하는 데에 있어 '현상의 공간'에 집중한다. 저자는 아렌트의 말을 빌려 '현상의 공간'을 유의미하게 말하고 행동하는 사람들의 모임으로 정의하는데, 그가 조사한 사례를 찾아본 결과 현상의 공간은 대개 물리적인 공간이었다. 저자는 지금의 상황에서, 소셜 네트워크가 이러한 시간과 장소의 역할을 해주길 기대한다. 잠시 들렀다 사라지는 공간이 아닌, 공감과 책임, 정치 혁신을 배양하는 공간으로 거듭나기를.  





생산성과 효율이라는 자본주의적 사고방식이 당연해지는 세상에서 경제적 안정이 무너진 노동자에게 남은 것은 시간이 곧 돈이라는 압박감과 무한 노동시간이다. 구독과 좋아요가 곧 돈벌이가 된 현 세태에 공감은 허울일 뿐 돈을 벌기 위해서 온갖 자극적인 행위가 밤낮으로 여과없이 무분별하게 이루어진다. 존재하는 시간과 공간이 누군가에게는 모두 돈으로 환산되는 세상은 숨이 차도록 급박하게 돌아간다. 인간은 점점 더 스스로에 대한 통제권을 잃어가고, 변화와 적응에 대한 두려움으로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알고리즘에 자신을 안주시킨다. 사용자가 미디어의 상품이 되어버린 세상에서 우리가 미디어에 착취당하고 있음에 대한 인지 여부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 책을 제목만 보고 '잠시 휴대폰을 꺼두셔도 좋습니다' 처럼 힐링 에세이나 정신 승리를 위한 심리 자기계발서로 판단하면 곤란하다. 저자는 신자본주의 세계에서 인간의 가치가 실용성과 효율성으로 재단되고, 마치 워커홀릭이 유능한 인재처럼 여겨지며, 거래로 이어지는 인간 관계에 얽매이는, 관심경제에 개인의 권리를 빼앗긴 세태에 반기를 들어야 한다고 말하는, 비평서에 가깝다고 볼 수 있겠다.  


저자가 말하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것은 정말 아무것도 하지 말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생각할 시간을 주고 주위에 시선을 돌리며 현재의 관심경제 체제에서 빠져나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이러한 사고를 동반한다면 굳이 온라인 세상에서 '로그 오프'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 출판사 지원도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상한 날씨 - 위기가 범람하는 세계 속 예술이 하는 일
올리비아 랭 지음, 이동교 옮김 / 어크로스 / 2021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리의 시간은 한낱 그림자처럼 덧없이 지나가지만
삶은 그루터기에 남은 불씨처럼 영원히 계속되리라

(영화 '블루'에서 / 감독 데릭 저먼) 
 


비평가이자 에세이스트 올리비아 랭이 2011년부터 쓴 에세이, 칼럼, 서평, 대담 및 간단한 평전 형태의 글을 모아 출간한 책이다. 저자는 서문에서 자신의 큰 관심사는 예술이 저항과 회복에 관련을 맺는 방식이라고 말하며 소외와 차별에 대한 저항, 그리고 참여와 관용과 환대에 관해 얘기하고자 함을 분명히 한다.  
 








저자는 10대 후반부터 상태계 파괴와 기후 변화를 막는데 적극적으로 행동에 나섰고, 스무 살에는 자발적 고립을 선택하며 야생과의 조우를 경험하기도 하지만 이는 지구 환경에 최선이 아닌 오히려 퇴보에 가깝고, 결국은 고립이 자신을 갉아먹으며 사람들과 어울려 사는 삶이 갈등의 원인기도 하지만 동시에 지속적인 행복의 원천임을 젊은 나이에 깨닫는다. 그래서 저자가 이 책에 등장하는 예술가들의 불행과 희망과 저항에 더 이입할 수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어린시절 가정 폭력과 학대로 고통받고, 유년부터 지녀온 내재적 수치심과 성정체성에 혼란스러워 하며, 불안정한 양육 환경에 노출된 채 불안감을 안고 성장했으며, 자신을 옭아매는 과거로부터 벗어나지 못해서 선택한 글쓰기가 역으로 다른 올가미가 되고, 고독과 타인과의 관계에 대한 불안을 떨치지 못하는 예술가. 그러나 이러한 모습은 비단 그들 뿐만이 아니다.  
 


사회적 위협에 대한 과잉 경계를 촉발하고, 거절당하는 것에 극도로 예민해지면서 사회적 상호 작용을 부정적으로 받아들이게 되며, 이는 고립을 강화시키게 된다. 작은 화면 뒤에서 숨고 드러내기를 자유자재로 조절할 수 있는, 필터링 된 자신의 모습에 눌러주는 '좋아요' 에 만족하는 요즘 사람들. 저자는 여기에서 짚어냐 할 것은 이런 식의 접촉이 진정한 친밀감과는 거리가 있다는 것이다. 만들어진 이미지 뒤에서 온라인 친구를 얻을 수 있으나 고독은 치유되지 않는다는 것. 고독은 관람이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발견되고 표용되어야 치유가 가능하다고 얘기한다. 무엇보다 사이버 공간은 현재 더 이상 사적 공간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저자는 접촉을 두려워하면서도 접촉을 원하는 한 우리에게 아직 기회가 있다고 말한다.  


-



스물일곱 살에 요절한 바스키아는 인터뷰에서  세상을 위해 그렸다는 자신의 그림에서 '세상'이란 곧 사람이라고 말했다. 흑인 빈민층 출신 예술가가 말하고 싶었던 사람 사는 세상은 어떤 세상이었겠는가. 조지프 코넬을 읽으면서 작품을 찾아봤는데 정말 모든 작품이 상자 안에서 이루어진다. 혼자만의 세계에서 고독에 빠져 로맨티스트였음에도 독신으로, 여행과 자유에 대한 로망이 있었음에도 자신의 생활권 밖으로 거의 나가지 않았던 코넬은 스스로 덜 내성적이었더라면 좋았을 것이라는 말로 알 수 있는 것처럼  은둔자였고, 그의 모티브가 된 상자를 통해 자유와 구속을 창작했다. 사사건건 감시를 늦추지 않는 어머니와 돌봐야하는 동생. 그가 얼마나 사랑과 자유를 동경했을지. 그가 마지막으로 남긴 한 마디, 안으로 뚫고 들어 온 정오로 향하는 햇살이 '신나는 신세계'였다니. 관계에 대한 노력을 감정 소모로 여기는 추세를 생각해 보면 우리는 점점 더 은둔자의 모습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예술에 있어서 강간과 살해를 소재로 다루는 것 자체가 불경죄가 되는 경우가 있는데, 시각화된 공포가 기록된 실제 사건보다 더 몹쓸 외설이라도 되는 것처럼 우리는 상당한 불쾌감을 표시한다. 실제 사건 피해자들의 피해와 공포를 보듬어주기보다는 외면해버리는 것이 더 편리하기 때문일 것이다. 세라 루커스는 "내게 예술의 의미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생각하고 말한 것들을 표현하는 데 있다"고 말하는데, 이는 예술 뿐만 아니라 사회 공동체 안에서도 마찬가지가 아닐까싶다. 작가 앨리 스미스는 담장을 두르고 요새화에 집착하다 보면, 우리 스스로를 감옥에 가두는 형국이라고 말한다. 이 부분을 읽다보니 문득, 앨리 스미스는 신자유주의 세계에서 자국민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가해지는 폭력적인 정책들을 말하는데, 나는 현 시국의 우리 모습이 연상됐다. 
 


예술이 저항의 행위일까? 비옥한 토양에 던져진 씨앗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달렸고 얘기면서, "악에 맞서는 가장 강력한 무기는 풍자"라는 작가 힐러리 맨틀의 말을 인용한다. 그리고 이어진, 존 버거가 당연하다는 듯 대답한 "환대해야죠" 는 우리가 이 세상에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웃음과 환대다.   
 


-


 
 
예술 에세이나 칼럼을 읽다보면 예술가들이 대상을 관찰하는 시각이나 감수성이 남다르게 예민하다는 점을 인정할 수 밖에 없다. 순탄하지 않은 삶이 예술에 몰입하게 하는 건지, 도드라지는 예술적 감성 때문에 삶이 순탄하지 않은 건지는 잘 모르겠다. 조지아 오키프를 비롯한 여러 예술가들의 삶을 따라가다 보면 이런 생각이 반복적으로 든다.  
 


사실 이 책에 언급된 예술가들을 모두 알지 못한다. 몰랐던 예술가들과 그들의 작품을 하나하나 찾아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무엇보다 가장 반가운 만남은 앨리 스미스였다. 그의 소설들을 좋아하면서도 작가에 대해 잘 알지 못했기에 나 나름대로 그가 어떤 사람인지 무척 궁금했더랬다. 개인의 상상에 어떤 대상의 이미지를 정형화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을 모르는 바는 아니나, 그럼에도 나는 앨리 스미스라는 작가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차에 작품 밖에서 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어 좋았다. 그리고 환대로써 친절을 택해 인간다운 인간이 되라고 말하는 존 버거는 말해 무엇하리. 
 


저자는 문학, 미술, 영화, 사진, 음악 등 수많은 예술 작품들과 작가들을 통해 이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의 결핍과 고독과 외로움, 그리고 난민과 이민자, 성소수자, 인종차별, 페미니즘, 젠트리피케이션, 기후 변화 등 당면한 사회 문제들을 고찰하면서, 이 안에서 예술이 자리하고 있는 위치와 역할을 예술가들의 저항적 삶을 짚어보며 예술의 공간에서 우리가 확장해나가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얘기한다.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들의 삶과 자신의 경험을 풀어놓는 그가 진정으로 애정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 것 같다.   
 
 


293.
예술은 마음의 문을 열고 '나'라는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이다. 예술은 바로 그런 것이다. 세상을 사는 사람이 만든 것이고 그들의 상상력도 함께 따라온다. 시대와 역사와 개인의 인생사를 막론하고 다가올 인생은 제압할 수 없다. 마치 세상에 빛과 어둠이 깔리는 것처럼. 그러나 때가 되면 우리는 활기찬 상상력과 함께 그 빛과 어둠을 넘나들 수 있을 것이다.

 
 
 
♤ 출판사 지원도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환희의 인간
크리스티앙 보뱅 지음, 이주현 옮김 / 1984Books / 2021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무엇을 보느냐에 따라 우리가 달라지며 우리가 보는 그것이 우리 자신을 드러내고, 이름을, 진정한 자신의 이름을 부여한다고 말하는 시인의 섬세하고 아름다운 시선이 느껴지는 에세이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우리가 보고자 하는 것들, 그리고 어떤 대상을 보았을 때 각자의 관점에 따라 달라지는 시각의 차이를 생각해 보면, 평소 지향하는 삶의 방식이 드러나는 모습을 목격할 때가 있다. 좋다, 나쁘다 혹은 옳다, 그르다를 말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때때로 우리에게는 거창하지 않은, 일상의 작은 틈을 이용한 성찰의 시간이 필요함을 말하고 싶다. 
 


시인은 오래된 책보다 더 젊은 것은 없다고 썼다. 무슨 의미일까? 곰곰 생각해보기도 전에 한두 쪽을 넘기니 푸쉬킨과 시인의 글이 답을 준다. 황폐한 우리의 머릿속에 불을 켜주는 역할을 하는 것은 오래된 책들이다. 글은 죽음보다 더 많은 것을 알고 있다고 말하는데, 아마 죽음으로 침묵하는 이들의 모든 생각과 말들이 책 안에 녹여져 있으며, 책이 부싯돌 역할을 해준다면 내면화를 통해 재창조하는 것은 결국 독자 개인의 노력에 달렸음이다.  
 


연주회장에서는 연주자도 청자도 오롯이 음악에만 집중할 수 없다는 글렌  굴드의 말에 현혹된다. 하물며 영화관에서 팝콘 먹는 것도 거슬려하는 나같은 사람은 격하게 공감한다. 오페라 공연 관람시에도 노래 들으랴, 연기 감상하랴, 자막 보랴 정신이 없다. 어느 연주회에서는 아주 가끔 조는 사람도 있어 집중이 안 되는 경우도 있었던 기억을 떠올려보면 엉뚱하기는 하지만 틀린 말도 아니라는 생각이다.  
 


이 책에서도 여지없이 등장하는 지슬렌. '단 한 번의 봄이 일생의 모든 봄이었고, 단 한 순간의 삶이 모든 순간을 살아낸 삶과 같았다' 라는 문장이 얼핏 읽기에는 그저 사랑타령에 불과한 듯 하지만 좀 오래 생각해 보면, 우리에게도 사랑 뿐만 아니라 어느 한 때의 좋은 기억으로 남은 추억은 삶을 견디고 이겨내게 하는 경험이 있지 않은가.  
 


시인은 알츠하이머가 고단하고 기진맥진하게 만드는 일들과 물건을 사고 타인을 질투하고 경쟁에서 승리하는 현대 생활의 질서에서 해방시켜준다고 말하면서, 그야말로 한 번도 삶이었던 적이 없는 삶을 끝내준다고 말한다. 이는 이 병을 앓고 있는 아버지를 바라보는 시인의 시선이다. 아버지가 아들과 아내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자, '우리가 잊지 않은 녀석', '최고로 훌륭한 사람'이라고 대답했다는 분. 시인의 남다른 감수성에 대한 의문이 풀리는 지점이었다.  
 


산책을 하고, 책을 펼치고, 꽃이 피는 것을 바라보는 것이 아무 의미 없는 일이라면, 무엇이 의미 있는 일이겠냐는 시인의 물음에서, 나는 잠시 내 삶의 의미를 생각해 본다. 크고 아름다운 열쇠 꾸러미, 그러나 문이 없다면 그 열쇠 꾸러미는 쓸모가 없다. 우리 안에는 수많은 문이 존재한다. 그 문이 어떤 문인지는 본인만이 알 것이고, 그 문을 만드는 자가 누구인지 또한 본인만이 알 터다.   
 


 
야생과 순수가 결합된 집시 소녀, 시각과 관점, 괴짜 글렌 굴드를 바라보는 이해 충만한 시선, 음악과 사랑과 삶의 숭고한 동일성, 지금은 세상에 없으나 지금도 사랑하고 있는 여인을 향한 애틋한 그리움, 아버지에 대한 추억, 소소한 일상에서 발견하는 철학적 사유, 질병과 노화를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과 정서적 측면이 결여된 부적절한 노인 부양 시스템의 지적, 어린 고양이의 죽음을 통해 바라 본 삶이 우리를 데려가는 종착지에 대한 단상, 스스로 만든 단절과 허상에 대한 성찰. 
 


서투름으로 붉어진 상처 입은 삶이야말로 진실하고, 자신의 책들은 모두 스스로 쓰여졌다고 말하며, 읽고 쓰고 사랑하는 것이야말로 우리를 구원하는 삼위일체라고 얘기하는 크리스티앙 보뱅은 위에서 언급한 모든 부분들에서 삶의 깊은 통찰을 보여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환희의 인간
크리스티앙 보뱅 지음, 이주현 옮김 / 1984Books / 2021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94.
오래된 책보다 더 젊은 것은 없다. 
 
​ 
 
무슨 의미일까? 곰곰 생각해보기도 전에 한두 쪽을 넘기니 푸쉬킨과 시인의 글이 답을 준다. 황폐한 우리의 머릿속에 불을 켜주는 역할을 하는 것은 오래된 책들이다. 글은 죽음보다 더 많은 것을 알고 있다고 말하는데, 아마 죽음으로 침묵하는 이들의 모든 생각과 말들이 책 안에 녹여져 있으며, 부싯돌 역할을 해준 이 책을 재창조하는 것은 결국 독자 개인의 노력에 달렸음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환희의 인간
크리스티앙 보뱅 지음, 이주현 옮김 / 1984Books / 2021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38.
무엇을 보느냐에 따라 우리는 달라진다. 우리가 보는 그것이 우리 자신을 드러내고, 이름을, 진정한 자신의 이름을 부여한다.  
 
​ 
 
우리가 보고자 하는 것들, 그리고 어떤 대상을 보았을 때 각자의 관점에 따라 달라지는 시각의 차이를 생각해 보면 평소 지향하는 삶의 방식이 드러나는 모습을 목격할 때가 있다. 좋다, 나쁘다 혹은 옳다, 그리다를 말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때때로 우리에게는 성찰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런데 하얀 눈이 내린 풍경을 모두 검게 칠했다는 술라주는 그 하얀 세상에서 무엇을 보았던 걸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