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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영사 ㅣ 문지 스펙트럼
마르그리트 뒤라스 지음, 최윤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4년 3월
평점 :
10년 동안 길을 잃을 방법을 되뇌이며 무작정 걸었던 거지 소녀가 찾아다닌 '새들의 평원'은 무엇이며, 어디에 있을까? 아무도 '새들의 평원'으로 가는 정확힌 길을 모른다. 그녀는 아이를 놔누고 갈 철책 안 백인의 정원을 '새들의 평원'이라고 생각한다. 부영사는 몽포르 기숙학교 재학 당시 그곳에서의 행복은 더럽고 지저분한 몽포르를 파괴하는 데 있었다. 이러한 광기는 부임지였던 라호르로 이어진다. '그녀'가 생각한 '새들의 평원'은 쉽게 들어갈 수 없는 백인 구역이고, 부영사의 기쁨은 파괴에 있다.
이 소설에서 두드러지는 단어는 '철책'이다. 철책은 백인 구역을 보호하는 용도로 사용된다. 철책 안쪽과 바깥쪽의 풍경은 극명하게 나뉜다. 그리고 백인은 철책 바깥쪽의 풍경이 아무리 아름다워도 그곳에 가지 않는다. 프랑스 대사 스트레테르의 저택에서 자정이 넘어서까지 이어지는 만찬회가 한창인 시각, 저택의 문 밖에는 심야 시간에도 불구하고 음식을 얻기 위해 거지들이 모여 든다. 철책을 기준으로 안과 밖의 극명한 대조의 모습이다. 이러한 분리와 구분은 안-마리가 자주 가는 섬에서도 보여진다. 섬 반대편 끝에 있는 마을과 호텔 사이에는 큰 철책이 세워져 있어 두 공간을 분리하고 있다.
이러한 구조는 공간뿐 아니라 등장인물의 정서와 감정으로 이어진다. 소수 주류에 해당하는 백인들 사회에서 적응하지 못해 부유하는 그들은 현지인들과도 가까워지지 못하고, 백인 사회에서도 아웃사이더다. 반면 걸인 여자 '그녀'는 문둥병환자들 사이에서 전혀 이질감없이 섞여 들어가 군중 속의 하나, 색깔없는 존재로 자신을 숨긴다.
부영사가 저지른 끔찍한 일도 일이지만, 이에 대한 얘기를 들은 사람들의 반응이 더 놀랍다. 누군가는 문둥병자들이나 개들을 죽이는 게 살해라고 할 수 있냐고 의문을 제기하고, 이를 반박하는 사람 역시 그들 가해 행위보다는 죽은 자들이 문둥병자인지 아닌지에 대해 초점을 맞춘다. 즉 피해자들의 신분이 문제가 될뿐 그들 죽음 자체에 대해서 누구도 문제 삼지 않는다.
여기에는 그들이 살아온 시간과도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안-마리가 샤를 로세트에게 '긴 여정 중에 그들이 지나친 수많은 다른 곳에서 온 사람일 수도 있다'라고 한 말에서 거지 소녀이자 걸인 여자인 무명의 '그녀'(의 10년)을 떠올리게 된다. 캄보디아에서 시작해 10년을 걸어 캘커타에 도착한 여정은 그녀가 거쳐온 지역들을 가리키는 것을 넘어서 그 시간과 삶, 고달픔이 뒤엉키고 켜켜이 쌓인, 무형의 흔적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안-마리가 걸인들에게 음식을 나누는 행위는 그들이 불쌍해서라기보다 그렇게 살 수밖에 없는 그들 삶에 대한 연민이자 다른 한편으로는 어느 쪽에도 정착하지 못하는 사람으로서 그들에게 느껴지는 감정적 동질감일지도 모르겠다.

권태와 공허, 삶에 대한 무관심, 감정의 소멸, 존재의 상실.
평온이라고 포장하지만 무기력하게 시간을 흘려보내는 사람들.
'그녀'와 부영사의 광기는 존재를 드러내고자 하는 혹은 어떻게서든 살아보려는 몸무림이 아닐까.
소설의 결말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안-마리, 샤를 로세트, 장 마르크 드 아슈. 그들이 어떤 결정을 내리지 않는 한 그들의 삶은 그전과 전혀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거지 소녀'의 10년의 걸음을,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은 어떻게 해석할지 무척 궁금해졌다.
부영사는 어디에서 근무하든 인도에 남기를 바라고, 백인 사회 안에 존재하기를 갈구한다. 하지만 정작 인도에서 무엇을 하고 싶은지, 왜 남아야하는지 본인도 잘 모른다. 그저 프랑스 대사의 처분만을 기다린다. 샤를 로세트는 빌어먹을 캘커타를 간절하게 떠나고 싶다. 그런데 그러지도 못한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그들과 비슷한 일련의 삶을 살고 있는 건 아닌지. 제 인생임에도 마치 남의 일인 양 뒷짐진 채 수동적으로 끌려다니고 있는 건 아닌가. 그래서 안-마리의 작은 일탈에 공감하게 된다.
개인적으로 '그녀'의 고난의 결과에 '불임'이 있다는 점도 의미심장하게 전해졌다. 소설 속에서는 '그녀'의 처절함이 직접적으로 많이 드러나지 않는다. 제 몸을 다 내던져 살고자 했던 '그녀'와 겉으로는 선의를 베풀며 두 아이를 낳고 평안하게 살아가지만 한곳에 머물지 못하고 반복적으로 철책 안에서 떠도는 안-마리는 자연스럽게 대비된다. 그들에게 '새들의 평원'은 어느 쪽일까.
※ 도서지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