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라지는 마음 현대문학 핀 시리즈 에세이 3
김멜라 지음 / 현대문학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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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가 대부분 그렇지만, 이 책은 정말 작가 본인의 이야기만 한다. 그래서 나는 좋았다. 물론 신변잡기만 늘어놓는 것은 아니다. 그 자신 외에도 그의 가족, 연인, 주변 인물, 동물들, 그가 읽은 책, 말과 글이 갖는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힘, 일상에서 오는 감상과 경험을 통한 크고 작은 깨달음 등 우리가 동의하고 공감하거나 혹은 그렇지 않을 수 있는 얘기들을 하고 있다. 





  
 
에세이를 읽다보면 글쓴 이, 혹은 글에 등장하는 주변 인물이나 사건에 이입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럴때마다 사람 사는 게 다른 것 같아도 다 비슷비슷하다는 어르신들의 말을 떠올리곤 하는데, 이 책은 유독 공감하는 부분이 많았다. 작가의 성향이나 경험치에서 나의 유사한 점들을 꽤 많이 발견했기 때문이기도 하고(심지어 외할아버지를 '~ 씨'라고 쓴 것까지!), 그냥 모르는 어느 누군가의 살아오고 살아갈 일들을 읽는(이라고 쓰고 '듣는'이라고 이해하는) 즐거움이 크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책에는 후각에 대한 얘기가 나온다. 작가의 연인과 언니가 후각이 민감한, 특히 작가의 연인은 지상에 존재하는 온갖 먹을 것에서 다양한 비린내를 맡았다고 했는데 이런 격한 공감이라니. 지금도 내가 수박과 오이, 밥이 지어질 때 올라오는 냄새, 콩국물 등에서 물비린내가 난다고 하면 이를 납득하는 이가 거의 없다. 말도 안 된다는 반응이 대부분이고, 유난스럽다는 소수의 반응, 뭔지 알겠다는 대답은 백 명 중 한 명 있을까말까다. 이러한 민감함은 일상생활이 불편할 때가 있을 정도라는 말 역시 동의하는 바다. 일상에서 내가 거의 하지 않는 일이 음식물쓰레기를 버리는 일이고, 앞집에서 비린 식자재를 배달하고 반나절 이상을 집안으로 들이지 않는 날에는 며칠동안 그 비린 냄새에 내가 생고생이다. 하지만 이런 말을 누구한테 해봐야 예민한 내 코만 탓할 뿐이다.  


ㅡ 


어떻게 살까, 교훈을 얻기 위해 책을 읽었다는 작가. 본인도 인정하듯 작가가 책을 읽는 이유치고는 상당히 의외다. 이유야 어찌되었든 나 역시 의도치 않게 읽었던 수많은 책들과 그 안에서 숨쉬는 인물들에게서 삶의 교훈을 얻었다. 책뿐이겠나. 작가는 가까운 연인부터 길냥이, 몇 번의 이사를 통해 거쳐간 이웃들, 등단하기까지 초조했던 숱한 시간들 등 몸으로 부딪쳤던 많은 일들이 하루하루의 깨달음이 아니었을까.  



"많아서 넘치지도, 모자라서 초조하지도 않게, 가까스로 겨우, 부족하지만 그 결핍이 슬픔이 되지 않도록 둘이서 다정하게. 온점은 그 다정함이 쌓여서 다복이 된다고 하는데, 다정을 잃으면 다 잃는 거라며 자잘한 다정으로 탄탄하게 다복을 쌓아가자고 말한다." (p285) 


내가 이 문장에 꽂힌 이유는 간단한다. 나는 '다정'이라는 단어를 무척 좋아한다. 다정한 마음을 건넬 줄 알고, 다정하게 배려하는 사람들을 사랑한다. 가끔 내가 이와 비슷한 말을 하면 나의 가까운 지인은, "말만 그렇게 하지 말고 너야말로 그 무뚝뚝한 성격 좀 어떻게 해 봐."라고 장난스레 말한다(진심일지도...!). 아무튼 이 책에서 가장 좋았던 문장이다. 



작가는 에세이의 말미에 자신이 이 글을 쓴 이유에 대해서 고백하듯 말하고 있다. 그래서 작가의 필명이 왜 '멜라'인지 알게 됐다. 읽으면서 얼마 전에 읽었던 김연수 작가의 소설 중 한 대목이 떠올랐다. "버틸 때까지 버텨보다가 넘어지면 그만이야". 작가가 말한 '멜라지는' 것과는 조금 다를지 모르겠으나 어쩌면 이런 생각(마음가짐)이 우리를 더 단단하게 만들어주는 건 아닐까싶다. 


올해의 마지막주, 난로를 켜놓고 편한 좌식 소파에 앉아 읽은(나에게는 극히 드문), 이 편안한 기분에서 오는 간만의 나른함이 무척 좋았다.




※ 출판사 지원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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