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위의 딸 열린책들 세계문학 12
알렉산드르 세르게비치 푸시킨 지음, 석영중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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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일곱 살 청년의 군 입대 성장기 혹은 연애소설이라고 단순하게 정리하기에는 이 소설은 너무나 영리하고 나름 복잡하다. 역사적 사건을 풍자적으로 그려내고 있는데, 소설 속에서 반란의 주동자이자 실존 인물인 뿌가쵸프를 미워할 수 없게 묘사한 소설의 마지막에는 '~카더라'로 끝내면서 교묘하게 한 발 물러나는 모습을 보인다. 
(현대 소설에서 이러한 방식을 사용한 몇몇 작품들이 있는데 제목이 도통 기억이 나지 않는다.)  





 




태어나기 전부터 아버지에 의해 어느 연대의 중사로 등록된 뻬뜨루샤는 열일곱 살이 되어서 마침내 군 입대를 하기에 이른다. 군복무를 하게 되어 뻬쩨르부르그에서의 화려한 삶과 자유를 상상하면서 기뻐했는데, 그의 희망에 찬 상상은 보기좋게 날아갔다. 아버지는 아들을 제대로 사람 만들어보겠다는 취지에서 오렌부르그로 보내버린다. 하지만 뻬뜨루샤의 낙담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고, 아버지의 옛 동료인 안드레이 장군은 오랜 친구의 뜻을 존중해 그의 아들을 끼르기즈 까이사쯔끼 초원에 접경한 외딴 요새인 벨로고르스끄로 배속시킨다. 산 넘어 산이다. 만사 포기한 뻬뜨루샤의 군 입대는 시작부터 좌충우돌이다. 그리고 자신의 인생의 변곡점을 찍게 될 결정적 인물을 외딴 요새에서 만나게 된다.  



소설의 중반부까지는 상당히 유머러스하고 유쾌하게 진행이 되는데, 등장인물들의 인연이 후반부에 큰 영향을 미친다.  


소설은 1773년부터 2년에 걸쳐 실제로 일어났던 뿌가쵸프의 농민 폭동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앞서 썼듯 실제 사건을 소재로 당시 서민들의 피폐한 삶을 에둘러 서술하는데,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개인의 삶이 지향하는 소박한 만족과 행복이다.  


풍자소설에 가까운 작품은 백성의 처지나 군사력을 따져가며 현실적인 대안없이 그럴싸한 말로 포장해 원론적인 내용만 반복하면서 봉쇄령을 고집하는 러시아군 장교들과 제 말이 맞다고 헐뜯기에 바쁜 까즈끄 장수들의 모습에서 당시 사회 지도층을 꼬집고 있다.   


입대와 함께 화려한 삶을 기대했건만 오지로 발령이 나면서 가득했던 불만은 시간이 지날수록 사라진다. 위기와 고난을 이겨내는 동안 뻬뜨루샤가 열망하는 것은 출세가 아닌 사랑하는 사람을 데리고 귀향하는 것. 작가는 한편으로는 정부의 폭정과 농민 폭동으로 피폐해진 서민들의 삶을 서술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뻬뜨루샤의 깨달음을 통해 역사라는 거대한 굴레 안에서 미미하게만 느껴지는 민중 한 명 한 명의 삶이 갖는 소중함을 얘기한다.   



요새가 함락되고 사령관과 부관은 살해 당했고, 남은 군사들은 무기를 빼앗긴 채 허수아비가 되었다. 뻬뜨루샤는 무엇을 해야할지 막막하기만 하다. 조국 수호에 기여해야 하는 군인으로서의 의무도 이행해야 하고, 사랑하는 여인도 지키고 보호해야 한다. 이 지점에서 뻬뜨루샤는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할까?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은 무엇일까? 이러한 딜레마는 의외로 쉽게 답을 찾는다. 뻬뜨루샤가 화를 면하게 된 것은 오래 전 눈보라에서 우연히 만난 한 남자에게 대단치 않은 호의를 베푼 덕분이었다.


뿌가쵸프는 안다. 자기를 따르는 사람들이 유사시에는 아주 쉽게 그의 목에 칼날을 내밀 것이라는 사실을. 어쩌면 우리는 온갖 핑계를 대며 칼자루를 수시로 바꿔쥐는 쉬바브린이나 폭도들과 비슷하게 처세하며 살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가 죽은 고기를 쪼아먹는 까마귀가 아니기를.   


한마디로 작가는 반복되는 상황을 통해서 인생은 새옹지마이자 역지사지라는 것을 보여주면서 우리가 어떻게 삶을 살아야할지를 고찰하게 한다. 



까자끄 인들은 뻬뜨루샤가 첩자임에 틀림없다고 주장하며 모두들 그를 사형해야 한다고 난리다. 그러나 뿌가쵸프는 눈보라가 친 그날, 뻬뜨루샤가 사준 술 한 잔과 추위를 막을 토끼 가죽 외투를 잊지 않고 (그의 입장에서) 선처를 베푼다. 우리가 살면서 필요한 건 이런 마음이 아닐까. 누군가에게 나눈 선의는 잊되, 받은 선의는 잊지 않는 것. 아마도 우리는 이와 반대로 기억하고 행동하기에 많은 부분에서 무언가 억울해 하고 불만이 커져가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마지막, 뿌가쵸프와 뻬뜨루샤의 시선이 마주치고, 뿌가쵸프가 고개를 끄덕이던 그 순간을 떠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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