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아이
로미 하우스만 지음, 송경은 옮김 / 밝은세상 / 2021년 6월
평점 :
절판







 



23세 여성 레나 벡의 실종으로 시작된 소설은 14년 동안 딸을 기다리는 아버지 마티아스, 납치되어 오두막에서 4개월 동안 갇혀 살았던 야스민 그라스, 높은 지능과 엄마의 교육으로 탁월한 지적 능력을 보여주는 열세 살 소녀 한나가 화자가 되어 이야기를 전개해 나간다.  


 
도입부에서 높은 긴장감을 선보이고 초반에 사건이 거의 해결되는 듯해 중반 이후에 이 소설이 무엇을 보여주려고 하는지 궁금해진다. 소설은 아버지로부터 가스라이팅을 당한 소녀에게 섬뜩함을 느끼게 하고 이후 납치범과 납치 사건의 실체, 그리고 소설 후반부 가스라이팅의 주체가 바뀌면서 전혀 예상치 못했던 결말로 향한다. 그리고 독자는 소설이 끝난 이후의 상상이 보태져 더욱 두려움을 갖는다.  


 
소설은 독자가 야스민을 통해 납치와 성폭행 피해자의 입장이 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탈출 후 다행히 구조되었지만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인해 일상생활이 불가능하게 된 야스민. 처절한 고통과 외로움을 아무와도 공유할 수 없는 야스민은 자신과 같은 상처가 있다고 여기는 레나에게 이입되어 그녀와 상상의 대화하듯 독백을 이어나간다. 그런데 야스민이 타인이 자신의 고통을 공유하지 못할 거라고 짐작하는 데에는 과거의 경험이 존재한다. 룸메이트였던 가장 친한 친구 키르스텐이 강간을 당했을 당시 '왜 저항하지' 않았느냐고 물었던 야스민은 비로소 남성에게 강간.폭행은 저항으로 대응이 가능하지 않다는 사실을 납득했으며 아마도 자신의 고통을 호소하는 순간, 누군가가 본인이 했던 똑같은 질문을 할 것임을 알았던 것이다. 
 


 
마티아스는 실종된 딸에 대한 악의적인 조작기사와 마녀 사냥에도 불구하고 이슈를 만들어 내기 위해 아내가 만류함에도 언론을 도발적으로 자극한다. 그는 딸을 찾기 위해서 왜곡된 기사든 마녀 사냥이든 대중으로부터 사건이 잊혀지지 않게 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이러한 그의 방식은 한나와 관련해서도 마찬가지다. 마티아스가 취한 행동과 방식을 지지할 수 없지만, 부모로서의 절실함을 생각해 본다면 이해 못할 일은 아니다. 다만 그것이 무의식 중에라도 딸을 빙자한 자기 위안이 아닌지는 따져봐야할 것이다. 
 
 


그리고 이 소설의 가장 중심에 있는 소녀 한나. 가장 큰 피해자 중 한 사람이자 가해자가 되어버린 소녀. 태어날 때부터 폭력과 억압, 감금이 일상적이었기에 그 모든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한나는 아버지를 뛰어넘는 냉혹함을 보인다. 이는 똑같은 환경에서 성장한 동생 요나단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기도 하다. 주입된 지식이 모든 상황의 판단에 기준이 되고 죄책감이나 사랑 등 감정에 전혀 동요되지 않는 모습은 단순히 환경적 요인이라고만 보기에는 어렵다. 
 


 
어둡고 음산한 분위기의 소설이지만 아이만큼은 구원하고 싶었던 레나와 야스민의 희망과 노력, 그리고 절망에서도 삶의 끈을 놓지 않았던 야스민의 삶에 대한 열망이 소설 곳곳을 환하게 비춘다. 
 


그릇된 사랑이 여러 사람의 인생을 망가뜨렸다. 이 소설에서 삐뚤어진 사랑을 했던 인물은 과연 납치범 뿐이었을까?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쓴 지극히 사적인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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