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극에서 온 남자 울릭 - 프랑수아 를로르 장편소설
프랑수아 를로르 지음, 지연리 옮김 / 열림원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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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릭은 어린 나이에 부모를 잃고 외삼촌에게 입양되어 열악한 환경에서 성장했다. 배고픔과 애정 결핍에 시달리던 울릭은 카블루나(백인, 유럽인, 이누이트인이 아닌 사람을 뜻하는 이누이트 단어)가 세운 기상대에 드나들었고 이후 성인이 되어 다른 카블루나가 마을에 석유탐사기지를 세웠을 때에도 우호적으로 지내왔다. 그러나 카블루나와 가까이 지낸 것(명분은 연이은 곰사냥이었지만)이 화근이 되어 어린 시절 집안끼리 약속되었던 혼인 상대 집안으로부터 정식으로 파혼당한다. 그러던 중 한 카블루나 남자가 문화적 교류를 위해 이누크를 한 명 선별해 자신의 나라로 보내줄 수 있는지 물어왔고, 울릭은 이를 기회로 삼아 카블루나의 나라로 떠난다. 목적은 오직 하나, 다시 돌아와 파혼당한 약혼녀 나바라나바와 결혼하는 것이다. 
 





 
카블루나의 나라에 도착한 울릭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 투성이다. 그는 잡지사와 방송사의 인터뷰, 르포르타주 영화, 광고 등에 출현하면서 여러 업종에 종사하는 다양한 사람들과 교류한다. 그런데 주거와 가족 형태는 차치해 두고라도 카블루나들이 느끼는 성평등과 사랑, 그리고 고독에 대한 관점이 이누이트와 많이 다르다는 것을 깨닫고 그들의 문화와 이누이트의 전통을 비교하며 사랑과 행복의 본질에 대해 고민한다.  
 
남편의 외도로 이혼 후 두 아이를 양육하는 워킹맘으로서 유네스코가 울릭의 가이드로 지정해준 마리 알릭스, 어린 시절 부모의 이혼으로 사랑과 결혼에 대한 긍정적인 부분은 외면한 채 일에만 매달리는 잡지사 사장 플로랑스, 외모에 대한 자격지심을 숨기고 남성이 없는 삶이야말로 진정한 독립적인 삶이라고 말하는 아드린느, 여성이 세상을 지배해야한다고 거칠게 주장하는 마틸다, 젊은 여성과의 외도를 후회하는 샤를르, 여자친구 대신 페미니즘 모임에 나올만큼 성평등에 적극적인 알렉스, 그리고 울릭에게 카블루나에 대한 이해를 돕는 꾸뻬 박사 등을 통해 문명인이라고 자처하는 현대인들의 고독과 상실감을 잔잔하게 풀어내고 있다.  
 
남녀의 역할이 분명하게 정해져 있고, 남성 위주의 사회 구조를 가진 이누이트 나라에 대해 해맑게 말하는 울릭은 여성들에게 공격을 받기도 하고 시대에 뒤처진 야만인이라는 조롱을 당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이에 대해 분노하지 않고 왜 그들과 자신의 생각이 다른지를 고민한다. 카블루나들은 왜 공평하게 나누지 않는지, 사랑하는 대상이 있고 가족이 있는데 왜 다른 이성을 찾는지, 외롭다고 하면서 왜 독신을 고집하는지, 왜 서로를 존중하지 않는지 울릭은 여전히 납득하기 어렵다.  
 
개인적으로 마음에 들어왔던 부분인데, 소설 초반에 나오는 '안다'라는 의미를 읽다보면 울릭을 이해할 수 있다. 이누이트 나라에서는 좋고 나쁜 일을 겪으며 몇 년을 지켜본 뒤에야 비로소 '안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명함만 주고 받아도 안다고 말하는 현대 사회에서 이누이트처럼 '알기'까지의 과정을, 우리는 감수하지 않는다. 이누이트의 의미에 가까운 아는 사람, 과연 몇이나 될까?  
 
우리는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을 무시한 채 혹은 그 과정에 쏟는 에너지 소모가 피곤해 서로에게 영웅이 되어줄 수 있는 조건을 갖춘 사람을 찾는다. 사는 데 불편하지 않을만큼 경제력을 갖추고 적당한 외모와 센스, 무시못할 학벌과 집안, 따뜻한 마음과 이해심과 배려를 갖춘 사람. 여기에 부합하는 사람을 만나기 어렵기 때문에 차라리 외롭더라도 혼자됨을 선택하는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돈을 벌기 위해 노력하지만 마음을 나누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간과한다. 어쩌면 의도적일 수도 있겠지만.
 
작가는 현대인의 고독만이 아니라 문명화를 명분으로 소수 민족의 전통을 훼손하고 자연을 파괴하는 우리의 모습을 에둘러 꼬집고 있다. 울릭은 카블루나 나라에서의 경험을 통해 욕망이 삶을 갉아먹는 독임을 깨닫는다. 그리고 마리 알릭스 가족들과의 관계를 통해 가족, 우성, 사랑, 상실감 등 다양한 감정을 경험한다.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너무나 다양하다. 이러한 세상에서 함께 공존하기 위해 스스로 최소한의 원칙을 세워두는 건 어떨까. 추운 나라에서 온 따뜻한 사람, 이누크 울릭처럼.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쓴 지극히 사적인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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