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길산 1~4 세트 - 전4권 - 특별합본호
황석영 지음 / 창비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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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1.
도대체 진인이란 무엇입니까? 진인眞人은 따로이 있는 게 아니라 역병에 쓰러져가는 팔도의 백성들이 다시 살아 환호하며 춤추는 세상에서 서로 정을 주고받으며 살아가는 모든 이가 진인이지요.


조선 후기 숙종 치세를 배경으로 민초들의 삶과 운명적인 사랑, 그리고 새시대를 향한 염원을 담은 대작이다. 한반도 곳곳의 아름다운 산야와 바다, 강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등장인물들의 역동성은 그 어떤 무협소설보다 흥미롭고 장엄하다. 또한 길산 봉순 묘옥 경순 여환 원향의 애절한 순애보와 장충 부부의 자식을 향한 묵직한 사랑은 명치를 누르는 가슴 벅찬 감동으로 남는다.  
  
저희들 정치 싸움에 굶주림과 역병으로 죽어가는 백성들은 아랑곳 없는 임금과 벼슬아치들, 권력자의 줄대기에 급급한 하급 관리들, 무능력한 관리 아래에서 부정부패로 재물을 축적하는 양인들, 탐욕 때문에 동지도 팔아먹는 기회주의자들, 욕망을 위해서라면 타인의 희생 쯤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자들. 오만가지 인간군상이 모여 세상의 부조리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들의 횡포와 폭력에 무참히 짓밟힌 가난하고 힘없는 자들의 고통어린 울부짖음이 생생하게 전해진다. 가장 낮은 곳에서 끓어오르는 대동세상에 대한 염원을, 가장 미천한 신분으로써 길에서 태어난 이가 그들과 함께 이루고자 하는 설정은 최고 권력자에 대한 도전이라는 것 더 나아가 가장 천한 이로써 가장 고귀한 이가 생각지도 못했던 일을 시도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쓰다보니 숙종은 조선 왕조에서 단 일곱 명 뿐인 완벽한 금수저, 적장자 중 한 명이라는 생각이 불현듯 떠오른다.

녹림당이 따로 있을까. 그들의 손에 들려있는 농기구가 어떤 용도로 쓰이느냐에 따라 달라질 일이다. 소설의 마지막 장터에서 장길산이라는 이름으로 죽은 광대의 죽음은 장길산의 죽음임과 동시에 또다른 장길산의 탄생일 것이다. 대동세상은 실패했다. 그러나 그러한 세상을 계속 꿈꿔야하지 않겠는가.

두 달여 정도의 <장길산> 읽기를 마친다. 좋았던 부분은 (좀 엉뚱하지만) 에필로그와 프롤로그였고, 최고는 4천쪽에 달하는 분량에서 한 줄도 놓칠 수 없었던 문장들이었다. 모든 문장의 강약이 조화로웠고 매쪽마다 벅찼다. 말을 보태 작품의 가치를 훼손할까 싶어 줄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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