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저널리스트 : 어니스트 헤밍웨이 더 저널리스트 1
어니스트 헤밍웨이 지음, 김영진 엮고 옮김 / 한빛비즈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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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밍웨이는 작가가 되기 전, 젊은 청년이었을 때에 유럽의 전쟁과 사회상을 보도하는 기자였다. 1930년대 스페인 내전 현장에 있었고,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아시아 각국을 돌며 국제 정세부터 전투 현장까지 폭넓게 보도했다. 헤밍웨이는 기자로서 사회의 불평등과 그에 따라오는 인간의 고통, 파시즘의 두려움 등을 서술했다. 또한 저널리스트로서의 경험은 작가 헤밍웨이에게 영감을 주었고, 그의 작품 안에 고스란히 녹아있다.
 
도심의 응급병동은 콧구멍에 옥수수 알갱이가 들어간 꼬마부터 경찰의 총에 맞은 강도, 이민자 지역에서 일어나는 폭력 싸움으로 부상당해 실려오는 사람들까지 다양하다. 시장통에서 싸우다가 병원으로 실려와 결국 죽음을 맞은 한 남자에게서 나온 주택 대출금 상환 영수증이 그의 신원을 말해준다. '전염'병이라는 이유로 환자를 기차역 복도에 방치한 의사와 경찰, 링 위의 선수들은 피투성이가 되도록 잔인한 경기를 이어가는데 유권자들에게 홍보하기 위해 스포츠 경기장 순례를 하는 토론토 시장을 비롯해 객석에서 그들의 터진 상처를 보는 고위층 인사들의 웃음은 멈추지 않는다. 그 웃음과 맞바꾼 선수들의 상처가 어떤 의미인지 웃음의 주인들은 알고 있을까?  
 
작가는 미국으로 이주해 군수품 공장에서 일을 하고 긁어모은 돈으로 귀국한 캐나다 젊은이들에게 전쟁의 자양분을 공급하는 데 기여한 사실을 자랑삼지 말기를, 한 전투에서 5만 6천 명 캐나다 청년이 사망했다는 점을 기억하기를 당부한다. 그리고 아드리아노플에서 그리스군 퇴각으로 대피해야 할 피난민 25만명과 마케도니아에 머물고 있는 피난민 약 50만 명의 현실, 흑인 작가 르네 마당의 사례를 든 제국주의가 미치는 폐해, 더불어 스페인 내전의 현장 한가운데에서 타인의 죽음에서 자신이 살아남았음을 매순간 각성하며 떨어지는 포탄 소리에 자신이 마드리드에 있음을 실감함과 동시에 여러 명분을 떠나 전쟁 자체가 얼마나 잔인한지를 서술한다.
 
헤밍웨이는 한때 전쟁은 식민 영토 반환, 해로 개발 등 경제적 이해관계의 셈법으로 설명되었지만, 이제는 자국민의 애국심을 이용하는 선동가와 독재자에 의한 촉발까지 더해졌다고 말한다. 선동가와 독재자는 개혁을 떠벌리다가 무위로 돌아가면 전쟁이야말로 문제의 해결책이라며 허상을 선전하고 애국심을 부추겨 전쟁을 실행에 옮긴다. 여기에 정치적 입지를 중요시하는 서유럽 지도자들의 장단까지 맞춰진다. 그는 나라를 위한 희생이 아름답고 의미 있는 죽음이라는 인식이 예전에는 있었지만, 현대전에서는 그저 개죽음에 불과하다고 일갈한다. 그러면서 역사상 전쟁의 잔혹성 때문에 인류가 전쟁을 포기한 적이 없기에 이 역시 의미 없는 논쟁이라고 자조한다. 현대전에는 승자도, 승리자도 없다. 모두 패자가 될 때까지 전쟁이 치닫기 때문이면서. 헤밍웨이가 찍은 몇 장의 사진 속 사망한 젊은 군인들의 사진은 참혹하기 그지없다. 헤밍웨이는 적어도 죽은 이들은 자신이 죽는 이유를 알고 있다고 썼다. 그렇다하더라도 이국 땅에서 죽은 이들의 주검, 지금은 존재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이들의 죽음은 쓰리고 아프다. 그는 비단 독재자 뿐만 아니라 영국, 프랑스, 미국의 외교관 대부분들도 파시스트라고 말한다. 권력이 국민의 손에서 행정부로 옮겨가면 정부를 제어할 유일한 기능이 상실되는 셈이다. 헤밍웨이는 혹여 유럽에서 전쟁이 다시 일어나더라도 미국이 개입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하며 유럽인들에게 다시는 바보처럼 전쟁터에 끌려나가지 말라고 당부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 글 4년 후, 여봐란듯이 2차 세계대전은 발발했다.  
 
혁명을 영혼없이 입으로만 일삼는 자들은 혁명에 대해 논하지 말라. 앞에서 이끄는 사람만이 대상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비판할 수 있으며 풍자할 자격이 있다고 말한다. 사기꾼을 의심하듯 전쟁 선동가를 의심하라. 그들의 말에 속아 전쟁터에 끌려가는 노예가 되기를 거부하라. 파시즘이 지나간 자리에 남겨질 역사는 피로 점철된 살인의 역사 뿐이라며 파시즘을 규탄한 헤밍웨이는 전쟁에는 익숙해질지언정 그 누구도 살인에 익숙해질 수는 없다고 말한다.  또한 그는 마드리드에 도착한지 만 하루도 되지 않았고, 호텔 방 밖으로는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은 기자가 쓴 기사의 내용을 들어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자극적인 기사를 쓰며, 정직한 언론인까지 거짓말쟁이로 만드는 기레기 기자들의 작태와 기자의 윤리에 대해 비판한다.   







책을 읽다보니 헤밍웨이의 날카로운 펜 끝만 보이지 않았다. 사회의 소외 계층, 정의를 부르짖다 죽음을 맞이하고 자국을 위해 이국 땅에서 숨을 거둔 젊은이들, 그리고 전쟁의 피해를 고스란히 안고 있는 보통의 서민들을 향한 진한 연민과 그들을 이해하기 위한 노력을 느낄 수 있었다. 그가 집중하고 강조하는 부분은 이념도 정의도 아닌 '공정'이다. 헤밍웨이는 어느 인터뷰에서 '무엇이 옳고 그른지 의식이 없는 이들은 글을 쓸 생각을 하지 말라'고 충고했고 또한 전쟁을 통해 정치적.경제적 이득을 얻는 위정자들을 강하게 비판했다. 작가의 중요한 덕목으로 경험을 꼽았던 헤밍웨이. 책의 말미에 작가가 되고 싶다고 찾아온 젊은이와의 대화를 읽다보니 <노인과 바다>의 그 노인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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