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둘기 열린책들 파트리크 쥐스킨트 리뉴얼 시리즈
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 유혜자 옮김 / 열린책들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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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2년 7월 어느날, 어머니가 수용소로 끌려가고 얼마 안 있어 아버지마저 사라진 후 조나단은 여동생을 데리고 카바용의 친척 아저씨의 집에서 숨어 지내며 농토 일을 배우면서 농사꾼으로 살아가다가 1950년대초 아저씨가 군대에 입대시켜 3년 동안의 병역의 믜무를 마치고 돌아와보니 동생은 이민을 떠난 후였다. 아저씨의 권유로 결혼을 했지만 아내는 4개월 만에 출산을 하고, 같은 해 낯선 남자와 눈이 맞아 도망을 쳤다. 조나단은 이러한 불상사를 겪고 나자 사람들을 절대 믿을 수 없다는 것과 그들을 멀리해야겠다는 결론에 이르고 파리로 향한다. 그곳에서 어느 은행의 경비원으로 취직하고 아주 작은 방 하나(그의 방은 24호다)를 얻었는데 침대 하나, 책상 하나, 의자 하나가 있을 뿐이지만 조나만은 아주 만족하며 평화롭게 30년을 살았다. 그곳은 조나단에게 세상 속의 안전한 섬 같은 곳이었고, 확실한 안식처였으며, 도피처였다. 그렇게 그 방에서 평온한 세월을 보내고 1984년 8월 어느 금요일 아침이 되었다. 


그날 아침, 조나단의 방문 밖에 서 있는 생명체가 있었으니 비둘기였다. 죽을만큼 놀란 조나단은 정신을 수습하고 출근 준비를 서두르는 와중에도 저녁에 다시 집으로 돌아와 비둘기를 마주할 생각에 아득하다. '밤은 어디서 보내지? 호텔에서 묵어야겠군. 면도기, 칫솔, 갈아입을 옷가지, 개인 수표책, 혹시 모르니 저금통장까지'. 비둘기가 방문 앞을 떠나지 않을 거라는 가정 하에 조나단의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한여름에 겨울 장화를 신고 겨울 외투에 목도리를 두른 차림으로 비둘기를 피해 도망치듯 달음박질을 친 조나단. 


점심 시간에 그날 묵을 호텔을 예약하고 나니 예정에 없던 지출때문에 점심을 공원에서 해결하기 위해 자리를 잡은 조나단의 시선에 자주 보았던 거지가 눈에 들어온다. 그를 보고 있자니 은근 질투와 부아가 치민다. 자기는 꼬박꼬박 같은 시간에 같은 자세로 같은 업무를 보며 근면하게 일하고 돈을 벌고 있건만, 저 거지는 너무나 태평한 자세로 사람들의 동정심과 적선에 빌붙어서 동전을 거둬들여 아무것도 하지 않으며 살고 있다. 거기다 파리에 입성한 이래 오늘 최대의 위기를 맞았으니 그동안 세워두었던 인생 계획이 수포로 돌아갈 지경이다. 자신이 일평생 바란 것이라고는 고작 마음이 평안한 작은 공간을 갖는 것 뿐이었는데... .  심지어 점심을 해결하고 자리를 뜨는 순간 나사에 걸려 바지까지 흉물스럽게 찢어진다. 조나단은 관처럼 보이는 호텔방에서 저녁을 해결하고 잠자리에 들면서 다짐한다. 내일 자살해야지. 


59.
자신의 존재를 둘러싼 확실해 보이는 것들이 완전히 부서지는 데 과연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릴지가 궁금해졌다. 



그러나 악몽을 꾸고 부리나케 돌아온 그의 안식처 24호 방 앞에는 비둘기도, 바닥의 오물도, 깃털도, 그 어떤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비둘기>는 유년시절 전쟁 통에 가족을 잃고 세상에 대한 불신으로 타인과의 소통을 최소화하고, 24호 방 안에서 자기만의 세계를 구축하며 대중의 익명성 안에서 안주하는 조나단이 쉰 살이 넘어 인생 최대의 위기를 맞는 만 하루 동안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조나단 노엘, 결벽증이 심하긴 하지만 아주 흔히 볼 수 있는 보통의 오십 대 남자다. 정해진 시간에 출퇴근하고, 부여된 업무를 하며, 그날 하루를 무사히 마친 것에 안도하는 모습은 여느 도시인과 다를 바 없다. 거리에서 천하태평으로 늘어져 있는 거지를 보면 '네 팔자가 상팔자다'라는 질투(?) 아닌 질투를 하다가도, 수치심도 없이 길에서 아무렇지 않게 용변을 보는 모습을 보면 '저런 인간은 되지 말아야지' 새삼 다짐을 한다.


소설에서 비둘기는 조나단에게 공포의 대상이다. 비둘기는 가족을 잃게 한 전쟁이며, 자신을 군대에 보낸 친척 아저씨이며, 낯선 남자와 눈이 맞아 도망간 아내다. 자기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일상을 흔드는 공포. 그것은 호텔에서 악몽을 꾸는 조나단을 통해 짐작할 수 있다. 


90.
어른으로 성장했다는 것과 파리에서 늙어 빠진 경비원이 된 것은 다 꿈이고, 어린아이가 되어서 집의 지하실에 갇혀 있는 것이 사실 같았다. 밖에는 전쟁이 나서 집은 파괴되었고, 사람들은 그를 잊어버린 모양이었다. 도대체 사람들이 왜 안오는 걸까? 왜 나를 구출해 내지 않지? 왜 이렇게 쥐 죽은 듯이 조용한 거야? 다른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갔지? 다른 사람들이 없으면 나 혼자서는 절대로 살 수가 없단 말이야! 


18.
비둘기가 안에서 살고 있는 집에 인간이 같이 살 수는 없는 노릇이지. 비둘기는 혼란과 무질서의 대명사가 될거야. 


비둘기만으로도 하루를 버겁게 시작했는데, 이제 그를 예측할 수 없는 무질서의 혼란에 빠트리는 거지가 눈앞에 나타나고, 그것도 모자라 근무시간에 입어야 할 경비원 제목까지 나사에 걸려 찢어진다. 이 별일 아니라고 여겨질 일들이 조나단에게는 규칙과 예정에 없는 무질서의 혼란으로 밀어넣는다. 이쯤되니 조나단은 자신의 존재에 회의를 갖는다. 그토록 성실하게 살아왔는데, 용변 볼 때 조차 제 몸 하나 숨길 수 없는 거지나 근무시간 내내 잡담이나 하고 팁이나 얻는 카페 웨이터가 아닌 왜 자신에게 이러한 위기가 닥친단 말인가! 


81.
스핑크스처럼 마음의 평온을 찾은 것이 아니라, 작동이 멈췄거나 줄이 끊긴 꼭두각시처럼 기둥 앞에 가만히 서서 마지막 남은 10의 근무 시간을 채웠고, 오후 5시 30분 정각에 빌망 씨가 잠깐 유리창에 모습으르 드러내며 문 닫자고 소리칠 떄까지 그렇게 있었다. 그러다가 조나단 노엘이라고 불리는 꼭두각시 인간 기계는 은행 안으로 순순히 들어가, 문의 여닫이를 조절하는 책상으로 가서, 직원들이 바끙로 나갈 수 있도록 안쪽과 바깥쪽 유리문을 두 개의 버튼을 누르며 조절하였다.



모든 사람들은 인생에서 때때로 저마다 각자의 비둘기가 등장한다. 예기치 못한 상황에 일상이 흔들리고, 그로인해 관계가 틀어지거나 자아감이 위기를 맞기도 하지만 삶은 계속된다. 그러니 흔들리면 흔들리는대로 살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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