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의 우주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13
김인숙 지음 / 현대문학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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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후, 미라는 반복해 생각해보곤 했다. 그때 자신에게는 혹시 다른 선택이 있지는 않았을지. 후회는 아니었다. 누군가는 어차피 죽게 되어 있었다. 어떤 선택을 했더라도 말이다.



1994년.
미라가 열네 살, 벚꽃이 난분분 흩날리는 날에 결혼식을 앞둔 엄마가 교통사고로 죽었다. 

미라는 평탄하지 못했던 성장 과정으로 인한 왜곡된 성격과 일부는 멈춰버리고 일부는 순식간에 성장해버린 내면을 안고 있다. 미라 스물아홉 살, 미래를 축복해주듯 불꽃놀이가 하늘을 수놓고 청혼을 하기 직전인 민혁에게 걸려온 전화, 그리고 사색이 된 민혁으로부터 들은 뜻밖의 고백. 그러나 미라는 민혁을 사랑했기에 결혼을 했다. 

몇 년 간 방치해 두었던 엄마와 살던 시골집이 공폐가로 철거된다는 통지문을 받고 민혁과 시골에 내려온 미라는 흐드러지게 핀 벚꽃을 보며 예전 기억을 떠올린다. 시골집에 다녀온 이후 그녀는 그곳에 펜션을 짓고자 마음먹고 20년 만에 엄마의 약혼자였던 '천문대'를 찾아간다. 그후 '천문대'는 펜션을 짓는 일을 비롯해 미라의 조력자가 되어주었다.

펜션이 오픈하고 제 발로 찾아온 첫 번째 손님이 호수에 몸을 던졌다. 손님의 이름은 정명주. 그녀는 민혁이 미라에게 고백했던 과거의 사건 안에 있었던 사람이다. 명주가 죽은 후 또 한명의 불청객, 송종호가 찾아오고 소심했던 그녀가 자살했을 리가 없다며 미라에게 폭행을 행사하던 중 실랑이 끝에 그가 사망하고 미라는 '천문대'의 도움을 받아 시신을 유기한다. 비로소 완벽한 삶이 시작됐다고 생각했는데, 벌써 두 사람이 펜션에서 죽었다. 불행의 기운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건 모두 1994년, 그 사건 때문이다.


김주열의 죽음에 관련 있는 세 명의 남자아이와 두 명의 여자아이.
그들은 모두 '자기'는, 김주열을 죽이지 않았다고, 가장 먼저 그 자리를 떠났다고 말한다. 마치 말을 맞춘 것처럼 토씨 하나 틀리지 않은 진술들. 송중호는 절도범으로 교도소를 전전했고, 정명주는 그런 송종호에게 얻어 맞으면서 동거를 했다. 얼굴이 예뻤다는 황경선은 그 사건 이후로 10년도 못살고 교통사고로 사망했고, 최윤재는 여전히 김주열의 시신을 유기했던, 김주열의 누나가 살고 있는 동네에서 알콜성 치매를 앓으며 해장국집을 하면서 살고 있다. 그들 중에서 가장 별볼일 없었던 민혁만이 번듯한 회시원으로 건실한 시민이 되었다. 열일곱 살 아이들은 당시에는 어떤 식으로든 사건이 수면 위로 드러날 줄 알았다. 그래서 늘 '언젠가는......'이라는 마음으로 불안과 죄책감을 가슴에 묻은 채 지냈다. 그런데 아무도 김주열의 죽음에 관심이 없었다. 아이들은 20년을 그렇게 살았다.


미라는 자신의 행복을 침범해 오는 그들을 방치해 둘 수 없다. 그래서 찾아나섰다. 비밀을 묻고 그들이 죄책감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하기 위해.







기억도 없는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잃고 엄마가 우주였던 열네 살 미라에게 아버지가 생길지도 몰랐다. 소녀처럼 까르륵 웃는 엄마의 목소리를 들으며 입 밖으로 내놓아 본 적 없는 '아빠'라는 단어. 집을 깨끗하게 수리하고 욕실에 새로 들인 욕조를 쓰다듬듯 만지며 곧 세 사람이 한 식구가 될 일에 가슴이 부풀었던 미라에게 엄마의 죽음은 한 세계의 소멸이었다. 그래서 완벽한 집, 완벽한 가정, 완벽한 행복을 꿈꿨던 미라. 그런데 남편은 십대에 시신을 유기해 그 덫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아들은 자폐를 앓는다. 그리고 지난 과오가 덫이 되어 부메랑처럼 돌아오고 있다. 미라는 그냥 행복하고 싶었을 뿐이었는데, 왜 자꾸 이런 일들이 그녀 주위에서 일어날까? 

민혁과 미라는 서로에게 집착한다. 미라는 자신의 완벽한 가정의 한 요소로써 민혁에게 집착하고, 민혁은 과거 자신의 오래된 죄를 미라에게 고백하면서 구원해줄 대상으로 집착한다. 한 사람은 상처를, 한 사람은 죄책감을 안고 살았던 그들은 자기의 아픔에 대한 해소를 상대에게 부여했다. 민혁의 과거 사건에 미라는 전혀 관계가 없다. 당시에는 민혁을 알지조차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라는 남편과 자신을 동일시하면서 행복을 지키기 위해 당사자 민혁이 원하지도 않는 해결사로 나선다. 그래서 그 사건은 공소시효가 지난 '과거'가 아닌 '현재'가 된다. 

미라와 민혁이 서로에게 부여하는 의미.

"봄비처럼 왔다" 

그들은 서로를 '봄비'라고 칭한다. 왜 봄비일까?
춥고 메마른 겨울의 끝에 내리는 봄비는 봄이 왔음을 알려주는 신호이고 반가움의 상징이다.  어둡고 우울했던 두 사람의 삶에 서로는 봄비같은 존재였다.  

김주열의 죽음에 직접적인 살해자가 누구인지는 알 수 없다. 그들은 자신들이 저지른 비행이 들통날 것이 두려워 친구의 시신을 유기했다. 열일곱 살 아이들이 20년 동안 창살없는 감옥에서 살아야했던 그 시간들이 벌이라고 한다면 너무 안이한 생각일까? 그렇다면 그 다섯 명의 아이들을 유기한 죄의 벌은 누가 받을 것인가! 


♤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쓴 지극히 사적인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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