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짝반짝 빛나는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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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아한 문체와 투명한 감성이 매력이라는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들. 하지만 난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이 갖는 최고의 매력은 세속적인 것과는 거리가 먼 주인공들의 캐릭터에 있지 않을까 싶다. 알콜중독자에 정서불안인 쇼코와 호모인 남편 무츠키, 고집불통인 그의 애인 곤. 묘한 삼각관계에 놓인 세 사람 사이에는 일반적인 남녀관계에서의 애정 못지 않은 아름다운 감정이 있다. 질투는커녕 오히려 서로를 배려하기까지 하는 본처와 애인. 알콜중독자인 아내를 더없이 따뜻하게 감싸주고, 그녀의 세계를 이해하려하는 남편. 결혼기념선물로 남편애인의 목에 리본을 달아 선물하는 아내.

아무런 편견 없이 욕심 없이 서로를 대한다는 것이 이 세사람들의 특징이다. 이들의 이야기를 읽어가다보면 과연 세상에서 말하는 행복이라는게 무엇일까, 그동안 필요이상으로 남들의 눈을 의식하며 살아오지는 않았는가하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게 된다. 인생을 필요이상으로 복잡하게 살 필요는 없지 않을까.

이 소설의 주인공들은 지나치게 욕심을 부리려 하지 않기에 오히려 행복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또한 이 소설은 일부러 아름답고 감동적으로 치장하려는 의도가 보이지 않기에 마음을 흔든다. 심플하다는 것의 매력을 에쿠니 가오리는 잘 알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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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하하는 저녁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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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이런 상상을 해낼 수 있을까?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을 읽을때마다 드는 생각이다. 실연이라는 주제를 이렇게 엮어나갈 수 있는 작가가 또 있을까? 주인공 리카가 8년이나 동거했던 남자 다케오를 한순간에 앗아간 하나코. 하지만 그녀는 결코 미워할 수 없는 존재이며, 오히려 리카에게 존재감을 더해가는 사람이다. 기묘하면서도 아름다운 세 사람의 관계.

<반짝반짝 빛나는>의 세 주인공들을 연상시키는 리카와 하나코, 다케오 중 중심점에 서있는 사람은 단연 하나코다. 다케오와의 이별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과거에 얽매이기를 자청하는 리카를 현실과 맞서게 해주는 인물 역시 하나코다. 현실과 가장 동떨어진 인물인 듯 하면서도 주변 인물들을 현실에 발붙이게 만드는 하나코.

극적인 사건이 없으면서도 ( 이 책은 약간 예외지만) 소설속에 흠뻑 빠져들게 만들 수 있는 능력이 에쿠니 가오리의 힘이 아닐까. 그녀의 소설을 읽는 것은 빡빡한 일상을 마무리하고 여유롭게 목욕을 즐기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그 안에 아늑하게 머무르고 싶어지니까.

이 책을 읽으면서 아직 정리되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는 내 마음을 정돈해보려 했지만 리카처럼 성공하지는 못했다. 하나코의 죽음과 같은 결정적인 사건이 있어야만 가능한 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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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의 카프카 (상)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김춘미 옮김 / 문학사상사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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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하루키의 책은 거의 빼놓지 않고 챙겨 본다. <해변의 카프카> 역시 하루키 특유의 매력을 가지고 있는 작품이다. 이 작품에 대해 상반된 평가가 엇갈리고 있지만, 책 속으로 흠뻑 빠지게 만드는 재미와, 깊이를 동시에 찾을 수 있는 작품을 쓸 수 있는 작가는 극히 드물지 않을까? 끊임없이 솟구치는 자아에 대한 의문을 풀기 위해 가출을 감행한 15세 소년 카프카. 반면 또다른 등장인물 나카타 상은 터프한 세계에 의해 자아를 상실하고 텅빈 채 삶을 살아가고 있는 인물이다.

전혀 다르게 보이는 두 사람이지만 묘하게 둘의 관계는 얽혀가는데. 도쿄 나카노구를 떠나 다리를 건너 시코쿠를 향하고 결국 고무라 도서관이라는 같은 장소에서 도착하게 되는 두 사람. 카프카의 아버지가 살해되고, 나카타가 다른 세계로 통하는 입구의 돌을 뒤집어 놓고, 카프카가 그 세계를 경험하는 사건들이 일어나면서 두 사람은 결국 같은 길을 가고 있었다는 사실이 분명해진다.

하루키의 소설은 그 이유를 생각해볼 틈도 없이 쳇바퀴 돌 듯 돌아가는 일상을 한 치 위에서 바라보고, 그 안에서 나의 존재 의미를 곰곰이 생각해보게 만든다. 이번 작품 역시 그러하며 읽는 재미또한 풍성한 작품이다. 시간이 나면 다시 한번 찬찬히 읽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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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박민규 지음 / 한겨레출판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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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일날 알람소리에 괴롭게 잠을 깨지 않고 대낮에 한적한 객석에서 영화를 보고 내키는 대로 집에서 책을 보며 뒹굴뒹굴 하기. 대학시절 방학때면 늘상 해오던 일들이 절실하게 그리워진건 휴학기간 5개월 남짓 회사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8시 20분 출근 7시 퇴근을 해야만 했던 시절이었다. 졸업을 1학기 앞두고 휴학을 했던 그때 난 다시는 이런식으로 내 시간의 대부분을 내가 하고싶은 일이 아닌일에 쏟아붓지는 않겠노라고 다짐했다. 그래서 내가 하고 싶었던 방송일을 시작하게 됬고 프리랜서로 일하면서 주말을 반납하고 때론 며칠밤을 지새우며 사생활이라고는 꿈꿀수 없는 날들을 보내면서도 폭풍뒤의 고요처럼 방송이 끝나면 주어지는 나만의 평온하고 한적한 시간들에 행복해 했다. <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은 내게 그런 시간들이 주는 소중함을 되새기게 만들었다.

세상이 인정하는 승리를 좇고자 할때 우리가 잃을 수밖에 없는 것들, 반대로 그것을 포기할 때 비로소 얻을수 있는 인생의 가치들을 이 소설은 재치있는 문장으로 말하고 있다. 자본주의가 빚어낸 현대사회의 치열한 경쟁체제, 그 안에서 허덕이고 있는 현대인들의 비애를 풍자한 소설이나 영화는 꽤 있었지만 이에 대한 대안으로 유유자적 인생을 즐기는 법을 제시한 소설로서는 처음이지 않을까 싶다. 이 소설의 가장 큰 장점은 심도있는 주제를 유쾌하고 쉽게 풀어나갔다는 것이다. 가벼워 보이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소설이다. 앞 부분 주인공의 소년시절에 대한 묘사에서는 위트있는 문장에 배꼽을 잡고 키득키득대다가도 페이지를 넘길수록 작가의 또 다른 목소리가 들려오며 책을 덮고 나서는 자신의 인생을 이제까지와는 다른 관점에서 돌아볼수 있게 되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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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산도르 마라이 지음, 임왕준 옮김 / 솔출판사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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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우선 처음 접한 헝가리 작가의 소설이라는데 우선 흥미가 갔던 작품이다. 일단 TV 드라마며 영화며 '쿨'한 부담없는 연애나 불륜 일색인 요즘 오랜만에 고전적인 러브스토리를 만나고 싶다면 추천하고픈 소설이다. 장안의 유명인사인 카사노바 자코모, 그를 사랑하는 백작부인 프란체스카 , 프란체스카를 사랑하는 파름므 백작 이 세사람이 이야기를 이끌어가지만 이중 가장 깊은 인상을 미치는 인물은 단연 프란체스카다. 내가 생각하는 이 소설의 백미는 후반부 쟈코모를 찾아온 프란체스카가 자신의 심정을 고백하는 대목이다.

더 많이 사랑하는 사람이 약자인 것이 변함없는 연애의 순리아니었던가... 하지만 프란체스카는 쟈코모를 사랑하기에 자신은 강자라고 자신있게 말한다. 쟈코모를 향한 그녀의 사랑고백은 비굴하게 애정을 구걸하는 것이 아니라 당당하고 아름답기 그지없다. 마치 남자가 여자에게 프로포즈하듯이 쟈코모를 위해서 모든것을 해줄수 있다고 말하는 프란체스카의 대사들은 사랑앞에서 항상 소극적이었던 내 모습을 되돌아보게 만들었다. 이 소설은 등장인물들의 길고도 운율있는 대사가 한편의 연극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들게 한다. 아마 연극으로 각색을 해도 좋은 작품이 되지 않을까 싶다. 사랑은 그것을 전적으로 믿는 이들, 그리고 모든 것을 아낌없이 줄 각오가 된 이들만이 맛볼수 있는 선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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