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보뱅. 종교적인 글도 그가 쓰면 예술이 된다.






















잉크로 쓰인 모든 길을 웃음으로 해방시킨 지슬렌 마리옹에게

‘아이는 천사와 함께 떠났고, 개가 그 뒤를 따라갔다.‘

이 문장은 아시시의 프란체스코에게 딱 들어맞는다. 우린 그에 대해 별로 아는 게 없지만, 그것이 오히려 다행이다. 누군가에 대해 안다고 하는 것이 그 사람을 알 수 없게 만들어 버리니까.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안다고 믿으며 그 사람에 대해 말함으로써 그의 참 모습을 놓치기 일쑤니까. - P12

아이와 천사는 아시시에서 멀어져 갔지만 아무도 그걸 눈치 채지 못한다. 개가 그들을 쫓고 있었다. 세 발자국 뒤에서. - P20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하는 여자를 기다린다고 하자. 그녀는 올 것이다. 그렇게 말했으니까. 약속했으니까. 이 길을 따라 올 것이다. 우리는 지평선에 눈을 고정하고 그 풍경을 바라본다. (그녀는 무얼 하고 있는 걸까? 이미 여기 와 있어야 하는데 말이다.) 풍경 속에는 다양한 규모의 대상들(숲, 집, 도로)이 있다. 마침내 그녀가 나타나는 순간 그것들이 풍경 속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뒤죽박죽이 되어 버린다. 길 끝에 보이는 가느다란 실루엣이 대번 숲과 집들과 도로보다 더 커다랗게 보인다. 측량기사의 눈에는 먼 곳의 한 작은 점에 불과한 것이 사랑하는 사람의 눈에는 온 우주보다 더 큰 무엇이 된다. 우리는 바라는 것을 보기 마련이다. 우리의 희망에 상응하여 보기 마련이다. - P44

우린 이런저런 도시에서 이런저런 직업을 갖고, 이런저런 가정에 산다. 하지만 우리가 사는 곳은 사실은 어떤 장소가 아니다. 우리가 정말로 살고 있는 곳은 하루하루를 보내는 그곳이 아니라, 무얼 희망하는지도 모르면서 우리가 희망하는 그곳이며, 무엇이 노래하게 만드는지도 모르면서 우리가 노래하는 그곳이다. - P58

그는 가슴이 뜨겁고 두 뺨이 상기된 채 그곳을 나온다. 아니, 나오지 않는다. 더 이상 그곳을 나오지 않을 것이다. 자신의 주인이 계시는 집을 찾았으니까. ‘지 극히 낮으신 분‘이 어디에 거하는지 이제 그는 알고 있 다. 세속의 빛이 가까스로 닿는 곳, 삶에 모든 것이 결핍되어 있는 곳이다. 그곳에서 삶은 꾸밈없는 원시적 생명에 불과하며, 단순한 경이요 조촐한 기적이다. - P73

예언자들은 사람들을 상대로 하느님을 이야기한 다. 그러느라 쉬어 버린 그들의 목소리엔 야수의 우울함이 감돈다. 반면 프란체스코는 하느님을 상대로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저마다 자신의 삶을 통해 - 오로지 자신의 삶을 시간 속에 지탱함으로써 풀어놓는 음, 그 순수한 음이 먼 하느님의 귀에 울려 퍼지도록 말이다. 가늘고 희미한 음이다. 이 음을 덮어 버리지 않으려면 가능한 한 낮은 소리로 이야기해야 한다. - P101

남자와 여자 간에 차이가 있다면 성이 아닌 자리의 차이이다. 남자는 남자의 자리를 지키는 자며, 무겁고 진지한 모습으로 두려움 속에 안전하게 자리 잡는 다. 여자는 어떤 자리에도, 심지어 그녀 자신의 자리에도 머무르지 않는 자다. 그녀는 언제나 자신이 부르는 사랑 속으로 사라져 버린다. 그녀가 부르고, 부르고, 또 부르는 사랑 속으로 이 차이는 매순간 극복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할 경우 절망적인 것이 되어버린다. - P124

여자를 두려움의 대상으로만 느끼며 여자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남자일지언정 여자들의 웃음소리를 들으면 멜랑콜리에 젖고, 무사태평으로 환히 빛나는 어떤 얼굴을 보며 주체할 수 없는 향수를 느낀다. 그 순간 그는 빛을 감지하기 시작하며 하느님의 일부를 엿 본다. 남자가 여자들의 진영과 하느님의 웃음에 가 닿는 건 언제나 가능하다. 한 번의 동작으로 족하다. 온 힘을 다해 몸을 내던지는 아이들처럼, 단 한 번의 동작이면 된다. 넘어지거나 죽는 것을 겁내지 않는 세상의 무게를 잊은 동작. 이렇게 남자는 과거가 가해 오는 진 지함의 부담을 등한시하면서 자기 자신과 두려움에서 해방된다. 이런 남자는 이제 제자리를 지키지 않는 사람이다. - P124

그리스도만큼 여자들을 향해 얼굴을 돌린 이는 아무도 없었다. 나뭇잎 하나를 보려고 얼굴을 돌리듯, 여정을 계속할 힘과 의욕을 얻기 위해 강물 위로 몸을 숙이듯 말이다. 성서 속엔 새들만큼이나 많은 여 자들이 등장한다. 처음에도 마지막에도, 여자들이 있 다. 여자들은 하느님을 낳아, 그가 자라고 뛰어놀고 죽는 것을 지켜본다. 그리고 미친 듯한 사랑의 단순한 몸 짓으로 그를 부활시킨다. 산과 병동의 후텁지근한 방에서든 선사시대의 동굴 속에서든, 태초부터 취해 온 똑같은 몸짓이다. - P125

그가 그녀보다 먼저 죽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좋다. 사랑은 처음 시작되는 순간, 첫 전율을 느끼는 순간 이미 시간에 대한 오래된 관념을 파괴하니까. 전과 후의 구별이 사라지고, 살아 있는 자들의 영원한 오늘이 지속될 뿐이다. 사랑으로 충만한 오늘뿐이다. - P129

누군가 프란체스코의 말들을 얇은 책 속에 모아 두었다. 진짜 가난한 사람의 말을 담은 책이다. 아름다울 것도 없는 편지들, 우아하지도 않은 기도 너무 자주 빨고 기운, 가난한 사람의 닳은 옷 같다. 성서에서 빌려와 짜 맞춘 것들. 여기에 시편 한 편, 저기에 또 한 편, 그것으로 충분하다. 기도하기, 허공이 우리의 말을 씻어 내도록 허공에 대고 말하기, 라는 의도한 바가 달성 된다. 너를 사랑해. 하느님을 향해 쏘아진 이 말은 불화 살처럼 어둠을 뚫고 들어가선 미처 과녁에 닿기 전에 꺼지고 만다. 너를 사랑해. 이것이 그가 하려는 말 전부이다. 거기서 어떤 독창적인 책, 작가의 책이 탄생할 수는 없다. 사랑은 전혀 독창적이지 않으니까. 사랑은 작가의 발명품이 아니니까 - P138

사랑을 하는 그는 공을 들고 벽 앞에 선 아이 같다. 그는 자신의 말을 던진다. 빛을 발하는 말의 공 ‘너를 사랑해‘는 혼자서 둘둘 감긴다. 그는 그 공을 벽에 대고 던지지만, 남은 세월 내내 벽은 그에게서 날마다 멀어져 간다. 되돌아오기를 기대하며 수천 개의 공을 던지지만 돌아오는 공은 하나도 없다. 그래도 그는 멈추지 않는다. 언제나 미소 띤 얼굴이며, 믿음을 잃지 않는다. 그에게는 놀이 자체가 보상이다. 사랑하는 것 자체가 보상이다. - P139

그렇긴 해도 그에겐 할 말이 조금 더 남아 있다. 그가 말한다. 너를 사랑한다고. 너를 그렇게 조금 사랑해서 미안하다고 너를 제대로 사랑하지 못해서, 사랑할 줄 몰라서 미안하다고, 빛에 다가갈수록 어둠으로 가득한 자신의 모습을 보기 때문이다. 사랑을 할수록 자신이 사랑할 자격이 없는 사람임을 알게 된다. 사랑에선 진전도, 언젠가 도달할 수 있는 완벽의 지점도 없기 때문이다. 어른스럽고 성숙하며 이성적인 사랑이란 있을 수 없다. 사랑 앞에선 어른이 없으며 누구나 아이가 된다. 완전한 신뢰와 무사태평을 특징으로 하는 아이의 마음, 영혼의 방치가 있을 뿐. 나이는 합산을 하고, 경험은 축적을 하며, 이성은 무언가를 구축한다. 그러나 어린아이의 마음은 아무 계산도 하지 않고, 축적 하지도 구축하지도 않는다. - P139

어린아이의 마음은 언제나 새롭고, 언제나 태초에서 다시 출발해 사랑의 첫발을 떼어 놓는다. 이성적인 사람은 축적되고, 쌓이고, 구축된 사람이다. 그러나 어린아이의 마음을 지닌 사람은 이런 합산의 결과물인 사람과는 반대된다. 그는 자신 에게서 벗어나 있으며, 만물의 탄생과 더불어 매번 다시 태어난다. 공을 갖고 노는 바보, 혹은 자신의 하느님 에게 이야기하는 성인이다. 동시에 둘 다거나. - P140

당신들은 자신들의 사막 같은 영혼 속에서 완벽을 찾습니다. 그러나 저는 당신들에게 완벽하라고 하지 않습니다. 그저 사랑하는 사람이 되라고 합니다. 둘은 결코 같지 않으며, 오히려 정반대입니다. - P147

사랑은 충만한 상태라기보다 우선 결핍이니까요. 사랑은 결핍의 충만함입니다. 맞아요, 이해하기 힘든 일이죠. 하지만 이해 불가능한 일도 그 실천은 참으로 단순합니다. - P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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