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청 흥미롭고 재미있다. 약간 죄와벌을 읽는 느낌도 있다.






몇 해 전에는 이 여자의 맞은편에 상점이 하나 있었다. 그 상점의 초록빛 판자들은 사방 틈바구니에서 습기를 풍겼고, 좁고 기다란 나무 간판에는 잡화상‘ 이라는 검은색 글자가 씌어 있었다. 그리고 출입문 창 유리에는 붉은색으로 ‘테레즈 라캥 이라는 여자 이름이 적혀 있고, 상점 좌우로는 푸른 종이를 씌운 깊숙한 진열장이 박혀 있었다. - P22

병으로 인해 끊임없이 고통을 받아 제대로 성장하지 못한 카미유는 키가 작고 허약했으며, 가느다란 사지는 힘이 없어 움직임이 둔했다. 라캥 부인은 아들을 속박하는 그 나약함 때문에 더욱 아들에게 사랑을 쏟았다. 창백하고 허약한 아들의 모습을 바라보는 그녀의 눈에는, 병을 이겨낸 애정과 자기 때문에 아들이 열배 이상은 오래 살 수 있게 되었다는 생각이 담겨 있었다. - P27

테레즈는 고모의 미적지근한 애정을 받으며 카미유와 같은 침대에서 성장했다. 그녀는 강철 같은 건강 체질이었는데도, 마치 허약한 애처럼 사촌오빠와 약을 나누어 먹고 어린 병자가 차지하고 있는 방의 후텁지근한 공기 속에 갇혀 자랐다. - P30

병약한 카미유는 젊은이의 가혹한 욕망을 알지 못했다. 테레즈에 비하면, 그는 여전히 어린 소년으로 머물러 있었다. - P33

그날 저녁, 테레즈는 계단 왼쪽에 있는 자기 방으로 들어가지 않고 오른쪽에 있는 사촌오빠의 방으로 들어갔다. 그녀에게 변화란 이것이 전부였다. 그리고 다음날 젊은 부부가 아래층에 내려왔을 때, 카미유는 병적인 무기력과 에고이스트의 변함없는 침착성 그대로였으며, 테레즈도 부드러운 무심함과 무섭도록 냉정한 얼굴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었다. - P35

삼년 동안 비슷한 날이 계속되었다. 카미유는 단 하루도 결근하지 않았다. 그의 어머니와 아내는 상점에서 거의 나가지 않았다. 습기찬 그늘 속에서 맥없고 답답한 침묵에 싸여 살고 있는 테레즈는, 매일같이 저녁이면 차가운 잠자리와 아침이면 공허한 하루를 가져다주는 아주 무미건조한 생활이 자기 앞에 전개되는 것을 가만히 보고 있었다. - P43

그날 저녁 테레즈는 상점으로 내려가려고 애쓰지 않았다. 그녀는 손님들과 함께 열한시까지 의자에 앉아 있었다. 로랑과 시선이 부딪히는 걸 피하면서 같이 도미노 놀이를 하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하기야 로랑도 그녀에게 마음을 쓰진 않았다. 그러나 이 남자의 다혈질적인 천성과 큰 음성, 기름진 웃음, 그리고 몸에서 풍겨나오는 거칠고도 달콤한 냄새에 마음이 쏠려서 그녀는 초조하고 괴로운 기분에 빠져 있었다.

(비극의 시작~~!) - P58

"우린 여기선 아무것도 겁낼 게 없어요…… 저자들은 모두 장님이에요. 그들은 사랑을 몰라요." - P77

그녀가 한 남자를 맞아들인 것은 바로 지척에 있는 옆방이었다. 간통을 저지르며 뜨겁게 뒤엉켜 뒹굴던 곳도 바로 그 방이었다. 그런데 바로 이시간이 오면 그의 정부는 그녀에게 낯선 사람이 되고, 남편의 친구가 되고, 관심을 가져서는 안 되는 방문객이 되는 것이다. 이 가혹한 희극, 인생의 기만, 대낮의 뜨거운 포옹과 저녁의 고의적인 무관심을 비교하면서 젊은 여인의 피는 새로운 정열을 느끼고 있었다.

(늦게 배운 욕망이 더 무서운거다) - P84

"난 그를 원망친 않아." 그는 마침내 이름을 대지 않고 말했다. "하지만 정말 우리에겐 너무 귀찮거든. 그를 떼어놓을 수 없을까? 어디 멀리 여행을 보낼 수는 없을까?" "아, 그이가 여행을 하다니!" 하고 젊은 여인은 머리를 흔들면서 말을 받았다. "그런 남자가 여행을 할 것 같아요? 다시 돌아오지 않는 여행만이 있어요. 그렇게 되면 도리어 우리가 매장될 거예요. 겨우 목숨만 붙어 있는 사람들은 절대로 죽지 않아요."

(다시 돌아오지 않는 여행이란...) - P91

다음날 시체공시장에 들어갔을 때 그는 가슴에 심한 충격을 느꼈다. 바로 눈앞의 포석 위에 카미유가 벌렁 누워서 머리를 들고 눈을 살짝 뜬 채 그를 쳐다보고 있었던 것이다. - P140

그러나 사랑은 그들을 잡아두지 않았다. 욕정이 사라진것이다. 그들은 조용히 얘기하며, 얼굴을 붉히지도 않고 떨지도 않고 서로 바라보기만 할 뿐, 살을 아프게 하고 뼈를 삐걱거리게 했던 미친 듯한 포옹을 잊은 것 같았다. 그들은 단 둘이 만나기를 피하기까지 했다.

(정점에서 내려오는 감정) - P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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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1-12-24 23:1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 이 책, 저도 전에 샀던 것 같아요. 이게 박찬욱 감독 영화 <박쥐>원작이었어요.
프랑스 소설이라서 생각을 못했는데, 원작이라도 들었던 것 같아요.
새파랑님, 오늘은 크리스마스 이브입니다.
추운 날씨지만, 행복하고 따뜻한 밤 되세요.
메리크리스마스.^^

새파랑 2021-12-24 23:40   좋아요 2 | URL
박쥐를 본지가 오래되서 가물가물한데 비슷하면서도 약간 다른거 같은 느낌도 들더라구요~!! 즐거운 크리스마스 🎄 보내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