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속으로>
"언제 서로 이야기를 나눌 기회도 없었네요." "그렇죠." "사실 선생님한테 어느 나라 말로 이야기하면 좋을지 모르겠으니까요." "물론 나는 조선인입니다." 기분 탓인지 대답하는 내 목소리가 약간 떨렸다. - P20
<빛속으로>
"예를 들어 내가 조선인이라고 하면, 저런 아이들이 나를 대하는 기분 속에는 애정 이외에 나쁜 의미의 호기심이랄까, 아무튼 다른 감정이 앞설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나 자신이 조선인이라는 것을 감추려는 것은 아닙니다. 그저 모두가 그런 식으로 나를 불렀을 뿐이에요. - P22
<빛속으로>
자기 어머니 병문안을 오면서 남의 눈을 피하거나, 알리지 않으려고 한다는 건 얼마나 슬픈 일인가. 나는 오히려 소년의 그런 모습이 뭐라 말할 수 없을 만큼 애처로워 보였다. - P58
<빛속으로>
그렇게 말하자마자 그는 내 손에 자기 옆구리에 끼고 있던 웃옷을 내던지고 달려 내려갔다. 나도 문득 구원받은 듯한 가벼운 발걸음으로 쓰러질 듯 타다닥 하고 그의 뒤를 따라 내려갔다. - P68
<천마>
"나는 이제 조선어 창작은 질렸습니다. 조선어 따위 똥이나 처먹으라고 하세요. 그건 멸망의 부적이니까요." 그는 지난밤 모임을 떠올리며 되는대로 허세를 부렸다. "나는 도쿄 문단으로 돌아갈 생각입니다. 도쿄의 친구들도 모두 그러기를 열심히 권하고 있죠." - P82
<천마>
사실 그는 허울 좋은 애국주의의 미명 아래 숨어 조선어로 쓰는 것은 어리석고, 언어 그 자체의 존재조차 정치적인 무언의 반역이라고 헐뜯는 자 중 한 사람인 것이다. - P90
<천마>
이제 와서 보니 모든것이 자신을 슬프게 할 씨앗이 아니었던가 - P110
<천마>
일본인을 만났을 때는 일종의 비굴함으로 조선인의 험담을 줄줄이 늘어놓지 않고는 배길 수 없는, 그리하여 비로소 자신도 일본인과 동급이라고 믿는 그였다. 드디어 현룡은 불같은 열정으로 타올라 거친 숨을 몰아쉬며 외쳤다. "나는 이런 구제할 길 없는 민족성을 생각하면 슬퍼서 견딜 수가 없다네. 다나카, 이보게 자네, 내 기분을 알겠나?" - P120
<풀이 깊다>
"언제 다시 만날 수 있으려나..." 옛 스승은 슬픈 듯 멈추어 서서 중얼거렸다. - P166
<풀이 깊다>
방화는 쫓겨 들어가는 그들이 이 세상에 퍼붓는 일종의 저주일까? 군청에서는 자기 관할 내에서 만큼은 화전민들을 살게 할 수 없다며 사방에서 화전민을 쫓아내기만 하기 때문에 그들은 어쩔 수 없이 점점 더 산속 깊이, 산속 깊이. - P17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