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인과 읽는 독자까지 무력하게 만드는 악인이 등장하는 소설이다. 작가의 다른 소설들과 마찬가지로 심리묘사가 뛰어난 스릴러이며 그걸 즐길 수 있는 오락성을 가진 소설이라 생각한다. 그냥 오락으로 즐기고 끝나야할까. 악마같은 인간이 만들어지는 과정이나 그 악에 맞선 이들을 통한 인류애나 주변인 사회가 해야할 역할이나 교훈을 주는 일 따위는 없이 냉혹한 현실에 무력한 피해자만 난무하는 결론이 처절하다. 독서모임에서 선정했지만 딱히 함께 나눌 이야기가 없다. 현실세계에서 지유와 같은 인물이 있다면 우린 그런 사람과 어떻게 더불어 살아야할까. 교화도 타협도 불가한 이런 끔찍한 사람이 가족을 이루고 자식을 낳아 학대하는 것을 어떻게 막을 수 있을까. 지유가 원하는 완전한 행복을 위해 그런 악행을 저지르게 되었다는 이 소설이 나에겐 별로 와 닿지가 않았다.
그녀의 글은 늘 뾰족하고 선득한 느낌이 있었다. 덤덤하고 건조하게 씌어진 글을 읽을 때면 다정하게 느껴질 정도이다. 내가 읽은 두 편의 소설이 그랬고 이 에세이도 그렇다. 작가 특유의 느낌이 있어 역시! 하면서 읽었던 것 같다. 언젠가 작가 사진으로 본 모습에서 왜소하다 생각했는데 실제 몸이 약한 분이다. 본인의 얘기 속에서 어린 시절 받은 상처와 약한 신체로 인해 겪은 불의와 예민한 감각들이 지금의 작가 황정은을 만들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난하고 소외되고 사회적 약자로 여러 폭력에 노출되어 살아가는 이들의 이야기에 강한 연민을 가지고 그들의 이야기를 쓰려고 했던 이유도 알 것 같았다. 얼마전 읽었던 필립 로스의 울분의 나온 인물처럼 황정은 작가에게 울분은 글을 쓰게 하는 동력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려운 이들의 삶을 고민할 필요조차 없는 삶을 사는 많은 무심한 이들에게 따끔하게 찔러 일깨워주는 역할을 하는 글을 써 주어서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국의 대문호인 셰익스피어의 대표적 작품인 햄릿을 드디어 읽게 되었다. 그의 다른 작품들 널리 알려진 것들도 생각해 보면 아동용으로 편집된 책이었거나 극이나 짧게 소개된 글로만 접했던 것 같다. 이렇게 원문을 읽은 것이 처음이라 생소하면서 진짜 고문을 읽는 듯한 느낌도 가지면서 운문스럽고도 소리내어 발음을 하면 착착 입에 붙는 것 같은 글이 매력적이었다. 사실 셰익스피어가 직접 쓴 글이 아니라 배우들의 기억에 의존해 만들어지고 여러 판본이 전해진다는 것도 놀라웠다. 그렇기에 더 많은 해석들이 나오고 그만큼 햄릿의 이야기가 풍성해지는 것이 아닐까 싶기도 했다. 역자의 해설이나 각주를 보긴했으나 내 생각이 그에 다 동의되지는 않았다. 있음이냐 없음이냐로 해석한 투비 올 낫투비도 썩 내키지 않는 번역 같았다. 이 말 뒤로 죽음에 대한 햄릿의 복잡한 심경이 아주 길게 자세하게 나열되기때문에 죽느냐 사느냐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되었다. 책 읽기 이전에 익히 들어 온 우유부단의 대명사로서의 햄릿과는 내가 보기엔 많이 달랐다. 그는 오히려 주도면밀하고 똑똑한 사람이었다. 부친 유령으로 부터 죽음의 진상을 알고 나서도 삼촌이 자신의 악행을 연기한 극 앞에서 반응을 보고서야 확신을 갖고 자신의 계획을 철저히 관리하고 실행하는 모습에서 영리하고 용기있는 인물로 보이기까지 했다. 상대인 삼촌인 왕도 자신의 욕망을 위해 냉철하게 판단하고 허투루 자신의 악행이 드러나지 않게 하며 주변인들에게 인심을 얻는 좋은 군주의 행색을 하는 최고의 모사꾼이라 작가의 능력을 가늠케 한다. 안타까운 점은 오필리아나 왕비가 당시 시대의 여성상이 반영된 것이겠으나 애처로울 정도로 의존적인 인물이라는 점이다. 그녀들의 말을 보면 멍청한 여자가 분명 아님에도 자신생각과 의지의 피력을 해 보지도 못하고 오빠와 아버지, 연인, 남편에 종속되어 순종적인 모습을 보이고 심지어 그 남자들로인해 실성하는 모습에서 다시한번 여성의 비참한 삶의 역사성을 보는 것 같았다. 이 또한 작품의 비극이라 할 수 있겠다. 함축적이고 의미심장한 글들이 많이 보였다. 꼼꼼히 작정하고 보다 보면 엄청난 명언 제조도 가능하리라. 누구나 다 알고 있지만 읽은 적이 없는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원전으로 꼭 읽어보아야 할 이유가 될 것이다.
나로선 감당이 되지 않는 너무도 자신의 욕망에 충실한 루실이지만 또한 그래서 매력적인 인물이다. 나로선 도저히 그렇게 살아 낼 수 없을 것 같지만 그래서 동경하게 되는 삶을 루실이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남자버전으로 조르바가 있듯이.그녀의 두 남자, 샤를과 앙투안 그녀는 둘 사이에서 재거나 계산하지 않는다. 그녀가 누구를 선택하든 납득하게 되는 놀라운 글에 감탄하게 된다. 너무 뻔하고 통속적이 될 수 밖에 없는 사랑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사강의 전작에서 보였던 장면들, 침대에서 꾸물거리기, 아침을 오렌지 한 조각으로 떼우기, 자동차 드라이브 씬들이 사강의 모습을 보는 것 같이 익숙해 읽는 동안 팬심이 절로 든다. 프랑스 사교계를 엿보는 즐거움도 있었고 닳고 닳은 중년들의 시선들, 허세와 가식이 가득한 세계에 순수하고 열정 가득한 젋은 남녀의 사랑이 반짝이고 사그라드는 것이 너무 뻔한 진부한 이야기일 수 있지만 내겐 가슴절절하게 다가왔던 것은 루실과 앙투안의 순수함이었을까. 순수함 사랑의 열정 그런것들을 우리모두 욕망하고 동경하기때문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 장 루실이 샤를과 결혼했다는 문장을 본 순간 난 소름이 끼쳤다. 세상에 없는 크고 넓은 아량과 지고지순한 루실에 대한 사랑을 보여주었던 샤를이 애초에 이런 결말을 생각하고 마침내 이루었다는 생각이 들었기때문이다. 루실은 발목 잡혔다. 그런 생각이 들면서 퇴각의 북소리에 무감해지는 루실과 앙투안의 모습이 내겐 너무 짠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