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에 산 책인데 방금 읽기를 마쳤다. 9년만에 책을 펼친 것이다. 노인과 소년과 바다에서 물고기 잡는 이야기로 단순히 회자되던 책이지만 노벨문학상에 빛나는 헤밍웨이의 대표작이기도 하기에 내게 꼭 읽어봐야할 책이었고 그렇게 오랫동안 책꽂이에 꽂혀 내게 암시만 하던 책이었다. 어린 딸이 몇번 꺼내 읽는 것을 보고 물었던 기억이 있다. 저 책 어디가 재미있니? 하면 맛있는 생선들이 나와서 좋다고 했다. 그 맛있는 생선을 책에서 직접 접하면서 내 딸은 예사롭지 않은 음식취향을 가진 아이임을 알 수 있었다. 바다에서 갓 나온 생선의 색과 냄새, 촉감, 생선의 피의 향까지 생생하게 전해지기도 하지만 노인이 날 생선을 즐기지 않는 사람임이 분명한 것도 알 수 있는데 그런 노인의 입장따위 생각 않고 자신이 좋아하는 생선회만 떠 올렸음이 분명하다고 생각이 드니 역시 어린 아이가 읽는 문학은 또 다른 것이구나를 생각하게 된다. 나는 노인이 기운을 차리기 위해 섭취한 생선들에서 역한 비린내 구역질 그런 것들이 떠 올라 함께 역경을 마주하는 기분이었다. 낚시줄에 손바닥이 패이고 어깨와 등으로 줄을 매고 물고기와 버티는 것은 내 몸도 같이 패이고 결리는 느낌이었으며 몽둥이로 상어를 칠때 전해오는 반동도 내 손에 전해지듯 생생하여 긴장감이 감돌았다. 망망대해 홀로 물고기와 상어떼와 사투를 벌이는 노인에게 두려움이 보이지 않는 것이 무척 놀라웠다. 순간순간 절망의 순간에도 현실을 직시하고 할 수 있는 최선으로 용기있고 묵묵하게 버텨내는 모습, 정복의 대상이었던 물고기가 든든한 재산 이었다가 함께 가는 동반자이기도 하고 마지막엔 연민의 대상이 되는 과정이 우리가 살아가며 겪는 인간관계와도 닮아있어 감동과 재미를 느꼈다. 중간중간 심심치 않게 웃음의 포인트들도 위트있다 느꼈다. 야구이야기, 사투중에 벌어지는 몸개그들. 짧은 길이의 소설임에도 내게 남긴 인상이나 의미들은 적지 않았던 멋진 작품이었다. 말미에 간밤에 입으로 느꼈던 각혈의 느낌이나 가슴통증으로 미루어 보아 갈비뼈 골절로 폐를 다쳤을것 같은데 어려운 생활의 노인이 잘 회복하지 못하고 소년과의 다음 낚시출정은 불가하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이 들어 혼자 안타까웠다. 그래도 5.5미터 청새치를 홀로 잡은 노인이라는 타이틀을 얻은 것인가 …
명랑하고 생기있던 경아가 어떻게 그렇게 깊은 상처를 가지고 살아왔을까. 경아는 곧 작가 자신이어서 생동감이 넘친다. 타인을 향한 속엣말엔 거침없고 솔직하다. 소설 전체에 흐르는 일관된 감정 같은 것이 고집스레 경아를 이끄는 것 같은 것이 느껴진다. 도중에 읽기를 그만두고 다시 읽어도 늘 한결같은 그 감정이 무엇일까 생각하게 만든다. 꽃다운 시절, 아름다운 청춘에 갑자기 배움을 중단하고 소녀가장이 되었으며 홀로 남은 어머니는 표정도 감정도 없이 루틴만 반복하고 있으며 폭격에 잃게 된 두 오빠에 대한 상처, 죄책감 마저 안고 살아야하는 그럼에도 늘 우울하고 슬프지 않고 씩씩하고 담대하게 사는 모습이 대견해보였다. 아버지뻘 옥씨와의 사랑도 밉지 않고 애처로웠다. 그렇게 장성한 경아는 지금의 작가가 되어 있구나. 그 울분을 글로 쓰고 싶었겠구나 싶었다. 경아를 통해 본 작가님은 멋진 여성이 되었을듯 싶은데 이미 세상을 뜨셨다. 지금도 아니 그 옛날엔 정말 보기드문 당당한 여성이셨을 것 같은데 너무 늦게 글로 만나 뵈어 안타깝다.박완서 작가님의 소설과 에세이들이 많이 남아 있으니 하나씩 하나씩 섭렵하며 그 분의 매력도 알아가면 좋을 것이다.
24살 젊은이가 쓴 글이라곤 믿기지 않을정도로 인물의 묘사가 섬세하고 디테일하다. 중년 여인 폴이 중년인 나에게 와서 콕 박히는듯 절절하게 와 닿는다. 내가 마지막 장면에서 느꼈던 감정은 아마 폴에게도 똑같이 느껴졌으리라. 프랑스와즈 사강이라는 작가가 더욱 궁금해졌다. 책의 마지막에 수록된 것으로 보아 남긴 작품도 꽤 되는 것 같은데 국내에 소개된 것은 그리 많지 않은듯하다. 이렇게 매력적인데.. 말년에 중독과 순탄치 않았던 개인적인 삶 때문이었을까 아무튼 앞으로 그녀의 작품들을 찾아서 읽게 될 것 같다.그리고 번역가 해설중에 프랑스 사람들이 브람스를 별로 안 좋아해서 브람스 연주를 권할땐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라고 묻는다는 말이 참 인상적이었다. 브람스는 어쩌다 프랑스인들에게 비호감 음악가가 된 것일까 분명 유명하고 위대한 음악가였음이 틀림없는데 말이다.
우리가 부처님이라 일컬는 고타마 싯타르타의 전기인줄 알았다. 생소한 인도문화를 접하리라 살짝 긴장했었는데 등장하는 인물들의 이름만이 인도스러움이라 할만큼 이질감이 없이 술술 넘어가는 한 브라만 출신의 소년의 성장과 그의 인생을 그려낸 소설이다. 그 이름이란 것이 각주에 설명되어 있는데 너무나도 딱 캐릭터 내지 상징인 것이었다. 싯다르타가 진짜 고타마를 만나 종국엔 스스로 진짜 싯타르타가 되는 것까지 전체적인 구조가 멋지다고 생각했다.그 속에 담고 있는 한 인간의 끊임없는 자아성찰은 종교인이라서 특별한 것과 보통의 사람의 것 두 가지가 주인공 내면에서 다 나타나고 이를 잘 다스려 궁국의 해탈에 이른 성자가 되기때문에 신분이나 직업, 부와 가난과는 상관없다는 것을 보여주었다고 생각된다. 백 마디 말보다 체험이 중요하다는 것과 산전수전, 부와 쾌락 겪을 수 있는 모든 것으로부터 깨달음에 이르는데 있어 가장 큰 걸림돌이 부모로서 자식에 대한 사랑이었다는 것에, 어쩌면 싯다르타 인생의 처음이자 마지막 사랑이라는 격렬한 감정이었을 수도 있는 부정이 마침 이 책을 읽는 시점의 내게 큰 공감을 주었다. 내게도 자식에 대한 생각과 마음, 태도를 되돌아 보게 하는 큰 역할을 한 책이기에 오랫동안 좋은 기억으로 남을 것 같다.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놓고 한동안 읽지 않았습니다. 이 책은 체 왜 빌린 거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오에 겐자부로 라는 노벨문학상에 빛나는 작가의 독서에 관한 책이라 이런 사람은 어떤 책을 읽을까 궁금해서 빌린 것 같은데 거부감부터 일었습니다. 그러다 반납일 알림 문자를 받고 마침 읽던 책이 끝나서 읽기 시작했는데 그만 끝까지 읽어야겠기에 연체가 되어버렸습니다. 이 유명 작가의 책이나 글을 한번도 접해본 적이 없지만 이 책을 통해 오에 겐자부로 라는 작가에 대해 좀 익숙해진 느낌이 듭니다. 내성적이고 쑥스러워하는 그러면서도 자기 취향에 제대로 집중하는 면이 있는 사람인 것 같습니다. 소설을 주로 쓴 분 같은데 시에 꽂힌 분이라는 점과 단짝 같은 여기서 작가는 수도커플라는 단어를 많이 썼는데 상대와 시나 글로써 친분을 쌓는 모습이 좋아보였습니다. 읽고 쓰는 일이 외로울 수 있는데 결을 같이하는 친구들과 서간을 통해 우정을 나누며 성장해 가는 행복한 노년이 부러웠습니다. 아마도 오에 겐자부로와 그의 친구들의 책을 제가 찾아 읽게 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