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욱이 중앙정보부장이었던 시절은 중앙정보부의 위세가 가장 드높을 때입니다.김형욱이 하늘을 쳐다보면 날아가는 비둘기 떼가 우수수 떨어지기도 했다죠.정치비화에는 김형욱이 행패 부린 일화가 많은데 그 중에서도 내 기억에 가장 선명히 남은 것이 있습니다.
김형욱이 중정의 수장이 된 초창기인 1964년 서울대에서 수상한 독서모임이 적발되었습니다.민족주의비교연구회라는데 불온서적을 읽고 토론하는 모임이었답니다.줄여서 민비연이라고 하는 이 모임의 지도교수는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황성모 씨.황 씨도 잡히고 학생들도 잡혔는데 그 중 한 학생이 김형욱의 눈에 띄었습니다.
"어이! 너는 경상도 출신인 것 같은데 왜 각하에게 반대하느냐?" 그러자 그 학생은 기세좋게 이렇게 받아쳤습니다."부장님도 북한 출신이면서 김일성에 반대하잖아요?" 자...그 학생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화가 머리 끝까지 난 김형욱은 옆에 있던 부하들이 말릴 사이도 없이 튀어나가 그 학생을 마구 두들겨 패버렸습니다.김형욱은 황해도 출신이었고 자신의 월남 경력을 꼬집은 그 학생을 참을 수가 없던 것이지요.
박정희 시대 정치사에서는 이른바 친위집단들 간의 경쟁을 잘 살펴야 합니다.특히 중앙정보부-청와대 경호실-보안사령부 이 세 집단의 충성경쟁을 주목해야죠.김형욱이 중앙정보부장으로 있을 때 경호실장은 권총 사격의 명수라서 별명이 '피스톨 박'인 박종규였습니다.비대한 김형욱에 비해 박종규는 호리호리하고 날씬한 체격.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충성경쟁으로 둘은 늘 신경전을 벌였지요.그러다 어느날 말다툼이 주먹대결로 번졌는데 김형욱이 일방적으로 얻어 맞았다고 합니다.날쌘돌이인 박종규에겐 상대가 안 되었나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