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이 막장드라마의 대표작으로 <아내의 유혹>을 꼽는데 그 작가가 임성한 씨라고 오해하더군요.아마 임성한 씨 출세작인 <인어 아가씨> 주연이 장서희 씨라서 역시 장 씨가 주연인 <아내의 유혹>의 작가도 임 씨겠구나 하고 짐작하는 것 같아요.하지만 <아내의 유혹>의 작가는 김순옥 씨입니다.꽃님이라는 별명 (<내 딸 꽃님이>에서 꽃님이 역을 맡았대서 생긴 별명)을 지닌 진세연 씨가 주연한 <다섯 손가락>의 작가인 그 김순옥 씨죠.
<아내의 유혹>은 얼굴에 점만 찍어놓고 딴사람 행세를 하는데도 아무도 못알아본다는 엉성한 설정과 김서형이 히스테리칼하게 절규하는 모습 덕에 코미디 소재로 지금도 자주 활용되고 있습니다.그런데 김순옥 씨는 이 드라마의 작가를 임성한 씨로 알고 있는 사람이 많은 사실을 어떻게 여길까요? 막장 하면 대중들이 떠올리는 이름이 임성한이라서 다행으로 여길까요...실제로 저의 지인들 역시 임성한은 알아도 김순옥은 잘 모르더군요.
고인이 된 시드니 셀던도 소설 내용이 자극적이고 성애묘사가 선정적이라고 해서 생전에 미국의 보수적 도덕주의자들에게 욕을 많이 먹었습니다.토론방송에서 복음주의 계열의 목사와 셀던이 격론을 벌이기도 했죠.얼핏 생각하기에 이런 통속적인 소설은 쓰기가 쉽다고 생각하겠지만 사실은 독자들이 지루할 만한 틈을 주지 않으려고 상당히 정교하게 줄거리를 진행시켜야 되기 때문에 작가가 상당히 신경써서 집필한다고 합니다.셀던의 자서전을 보면 그런 사정이 자세히 나와있죠.
우리나라 드라마 작가들도 마찬가지입니다.막장 드라마를 쓴다는 작가들이 욕을 많이 먹지만 시청률은 잘 나오는 편이죠.소설가와 달리 드라마 작가는 시청자들의 반응을 수시로 점검해가면서 어디에 충격요법적 장면을 집어넣을까 세심히 생각하며 집필하기 때문에 두뇌소모가 더 많을 겁니다.그런 드라마는 나도 쓰겠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드라마 작가 아무나 하는 거 아닙니다.우리나라 방송계에도 시청률 보장을 해주는 작가들은 손가락에 꼽을 정도입니다.
<아내의 유혹> 방영 때도 저런 드라마는 발을 못붙이게 해야 한다는 사람들이 퇴출운동을 벌이기도 했고, 얼마 전 끝난 <오로라 공주>도 마찬가지입니다.그런데도 사람들은 김순옥이란 이름보다 임성한이란 이름을 더많이 기억합니다.막장드라마에 대한 논의보다도 왜 이렇게 지명도의 차이가 생기는지가 나는 더 궁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