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어느 어느 장소를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묻는 소녀에게 약도를 그려서 가르쳐 주려고 한 일이 있었어요.그런데 이 소녀는 "저는 약도 볼 줄 몰라요." 하는 것입니다.아유...정말 난감하더군요.그래서 말로 설명하려 하니 역시 잘 못 알아듣습니다.그녀는 길을 잘 못찾는다고 고백했는데,그런 사람들은 길을 못찾을 뿐만 아니라 약도를 볼 줄도 모르고,자신이 남에게 길을 가르쳐 주지도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길 눈이 어두운 사람은 자신이 있는 위치를 다른 사람에게 설명하지도 못합니다.다행히 요즘은 스마트폰 덕분에 이런 경우는 해결되죠.하지만 스마트폰 사용법을 모르는 사람들은 이것도 곤란합니다.전화로 길을 설명해야 하는데 워낙 그런 쪽으로 둔감하기 때문에 듣는 사람 입장에선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그래놓고도 "아유 답답해...왜 말귀를 못알아먹어..." 하면서 답답하다고 합니다.정작 답답한 사람이 누군데...
제가 아는 남자는 길눈이 매우 어둡습니다.여러번 가본 곳인데도 처음 와본다고 말합니다.하지만 지금은 운전배달로 생계를 이어갑니다.역시 내비게이션의 승리입니다.그리고 그 직업 덕분에 어느 정도 길눈이 트였다고 합니다.예전 네비게이션도 휴대전화도 없던 시절 어떤 아줌마가 신문배달을 처음 하는데 길눈이 어두워서 걱정했지만 몇 번 하다 보니 조금씩 나아졌다고 합니다.역시 생계가 걸린 문제니 정신 바짝 차리고 임한 결과지요.
나는 그다지 독도법이 능숙하지 못했습니다.우리 부대에서 가끔 산에 올라가 지도 놓고 지형 파악하는 법을 배우긴 했지만 그다지 성의 있게 임하지도 않았습니다.그런데 사회생활하면서 지인 한 명이 "길눈 어두운 사람은 약도를 볼 줄도 모르고 자기들이 그릴 줄도 몰라." 하는 말을 듣고 우연히 약도 보는 것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습니다.그때 교재(?)로 쓴 것이 광고지에 있는 약도였습니다.이리저리 광고지 위치를 바꿔서 읽어보기도 하고 내가 다시 그려보기도 하고 하면서 약도 보기에 익숙해졌습니다.그러면서 알게 된 사실은...약도를 이상하게 그려놓은 광고지가 가끔 있다는 것이죠.처음엔 내가 잘 모르나 보다 하고 내 탓만 했는데 좀 익숙해지고 나서는 그려놓은 사람이 애매하게 그려놓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당연히 그런 업소엔 찾아가기도 힘드니 손님이 많이 안 올 것입니다.
우리는 학교에서 6하 원칙이라는 것을 배우는데 유독 장소 개념이 없는 사람들이 있습니다.순경이나 형사들의 경험담에 의하면 조서작성할 때 장소를 잘 설명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합니다.이럴 땐 타이프 치다가 정말 짜증난다고 하죠. 여행을 마친 뒤에 여행지에 대한 이야기를 전혀 못하는 사람들도 이런 부류입니다.이런 이들은 장소에 관련된 모든 것에 무관심하기 때문에 지명 같은 것도 알아보려고 하지 않습니다.어디 무슨 산을 갔느냐고 물어봐도 거기가 어디더라...하고 더듬더듬합니다.답답해진 사람이 "어디 어디로 해서 갔느냐" 고 물어보면 더 모릅니다.
소설가들 중에서 공간묘사가 뛰어난 사람들이 있습니다.하지만 장소개념이 없는 사람은 이런 묘사를 제대로 즐기지 못합니다.제대로 즐기려면 그런 묘사를 상상하면서 머릿속으로 그려야 하는데 그게 안 되죠.장소이동이 잦은 장면, 예를 들어 전투장면을 묘사하면 읽어도 감이 안 잡힌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여자들은 그럴 때 전투 장면을 여자가 이해하기는 힘든 것 아니냐 고 해명을 합니다만 사실은 그런 것보다는 장소 개념에 어두운 게 원인입니다.
얼마 전 돌아가신 가수 조미미 씨는 자기 노래가사를 적은 노래비가 전국 각지에 세 개나 있습니다.그 중 경주의 모 해수욕장에 '바다가 육지라면'을 적은 노래비가 있다는 신문기사를 보았습니다."어...경주는 내륙인데 무슨 해수욕장이 있는 거지?" 하고 이상하게 여겼는데 지도책을 보고 알게 되었습니다.나는 예전 수학여행 갈 때의 경주만 생각했는데 거기서 더 나아가 해안선까지 경주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그러니 당연히 경주시에 속한 해수욕장이죠.장소에 대해 무관심하다면 지도까지 찾으면서 그 해수욕장을 알아보려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다지 길 찾기에 능숙하지 못한 내가 약도 보는 훈련을 시작해서 장소나 지명에 관심을 가지게 된 뒤에는 어느 낯 선 곳을 갈 때마다 그 곳의 지명은 물론 그리고 가는 길, 지형까지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게다가 그 전부터 동식물에는 관심이 많으니 더 풍부하게 그곳을 알게 되었습니다.길 찾는 능력도 후천적으로 향상되는 것이 분명한가 봅니다.6하 원칙에 따라 글을 쓰는 버릇이 든 것도 그에 따른 긍정적 부산물입니다.여러분도 한 번 시도해 보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