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소설은 유행가 같은지, 한때 큰 화제를 모은 작품도 요즘은 안 팔리는 것은 물론 헌책방에도 잘 안 나옵니다.물론 이 분야에도 고전이라 해도 좋은 작품은 있습니다.그 중 하나가 재클린 수잔(1921~1974)에게 부와 명성을 안겨준 <인형의 계곡>입니다.미국 뉴욕의 연예계가 배경인데 한 여인의 인생유전을 전형적인 대중소설 풍으로 그렸습니다.1966년은 <인형의 계곡>이 나온 해라고 할 정도로 대단한 인기를 모은 작품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그 열풍이 상당히 뒤늦게 불었습니다.모음사 번역본은 1989년에 나왔으니까요.버트리스 스몰<아도라>는 <인형의 계곡>보다 훨씬 나중에 나온 작품인데 우리나라에서는 모음사에서 <인형의 계곡>보다 5년 먼저 번역했습니다.이제 이 두 번역본 모두 구하기가 힘듭니다.<아도라>는 몇 년 전 구했는데 <인형의 계곡>은 다행히 어제 구입했습니다.대중소설의 고전인 이 작품을 구할 수 있을까 하고 의심했는데 의외로 어느 헌책방을 들어가니 "나를 가져가시오" 하는 듯 내 눈에 얼른 띄었습니다.주인 아줌마가 값도 싸게 불러서 냉큼 샀지요.천 원!
<인형의 계곡>이 잘 팔리자 영화업자들이 가만히 있을 리 없었죠.이듬해 1967년 바로 영화화되었습니다.이 영화에 그 유명한 샤론 테이트가 나옵니다.'로즈마리의 아기' '피아니스트' 등 명작을 만든 로만 폴란스키의 부인이지요.하지만 그녀는 서른도 안 되어 1969년 사이비 종교집단을 이끌던 찰스 맨슨 패거리에게 살해당하고 맙니다.당시 테이트는 임신 중이어서 영화팬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지요.이래저래 인형의 계곡이라는 소설과 함께 연상되는 비극입니다.
<인형의 계곡>을 구한 책방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정치소설의 고전인 이그나치오 실로네 <빵과 포도주>(최승자 역 한길사)도 구했습니다.이 소설도 정말 구하기 힘든 소설이죠.어서 퀘슬러 <한낮의 어둠>과 함께 20세기 정치소설의 고전으로 꼽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한낮의 어둠>은 최근 다시 나오고 있지만 <빵과 포도주>는 감감무소식입니다.1930년대 이탈리아가 배경인데 정치이데올로기와 신앙의 긴장관계를 깊이 있게 다룬 묵직한 작품으로 평가받습니다.이탈리아를 배경으로 한 정치소설로 19세기에 보이니치 <등에>가 있다면 20세기엔 단연 <빵과 포도주>입니다.
헤르만 헤세와 함께 독일 성장소설의 대가로 꼽히는 한스 카롯사 <아름다운 유혹의 시절>과 <젊은이의 변모>도 구했습니다.우리나라에서는 워낙 헤세의 인기가 높습니다만 독일에서는 카롯사나 호르바트도 20세기 성장소설로 유명하답니다.
헌책들을 집에 가져와 물에 적신 화장지로 표지를 닦으니 깨끗해졌습니다.이걸 언제부터 읽나...만져보고 또 만져봅니다.다음엔 고려원 추리물을 찾으러 돌아다녀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