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톱스타 여배우가 영국의 평범한 서점주인 아저씨와 결혼한다는 영화 '노팅힐'. 현실에서는 전혀 일어날 수 없는 일이지만 영화가 유쾌하고 부담없어서 한국에도 좋아하는 팬이 많습니다.특히 남주인공 휴 그랜트의 친구들이 아주 재미있게 묘사되어 있어서 어떤 이는 조연들이 더 인상적이었다는 감상평을 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여행서적을 파는 휴 그랜트가 좋아하는 작가는 헨리 제임스입니다.이 작가는 영어권에서도 생전에는 그다지 명성을 못얻었고 지금도 대중적인 인지도가 높은 편은 아닙니다.영어권에서도 누군가가 헨리 제임스를 좋아한다면 다소 잘난 체하고 현학자인양 한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정도입니다.그런데 '노팅힐'에서 헨리 제임스는 꽤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휴 그랜트와 사랑에 빠지는 쥴리아 로버츠는 공상과학 영화로 유명해지지만 마지막에는 헨리 제임스 원작의 영화의 주인공이 되니까요.그리고 헨리 제임스 작품에 정통하다면 이 영화에 왜 헨리 제임스가 종종 언급되는지 눈치를 채게 됩니다.

 

  '노팅힐'은 미국의 발랄한 여배우가 영국에 영화촬영 와서 겪는 소동이 주요 줄거리입니다.그녀의 옛 시절 얄궂은 영화를 가지고 떠들어 대는 기자들...휴 그랜트 집에 머무는 쥴리아 로버츠를 찾아내 카메라 플래시를 터뜨리는 기자들...쥴리아 로버츠는 온갖 오해와 시달림의 대상입니다.바로 이것이 헨리 제임스의 중편 '데이지 밀러'를 떠올리게 합니다.미국의 자유분방한 아가씨 데이지 밀러가 유럽을 여행하면서 보여주는 거침없는 모습에 유럽 사람들, 심지어 유럽에 사는 미국인들마저 문화적 충격을 받습니다.그러면서 몸가짐이 헤픈 여자라고 손가락질 합니다. 하지만 이 소설의 결말을 보면 데이지 밀러는 순정파입니다.그녀가 예기치 못하게 전염병으로 죽어가면서 남긴 말을 통해 사람들은 그 동안 그녀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떠들었던 것이 근거없었음을 알게 되지요.

 

  '노팅힐'은 소설 '데이지 밀러'와는 달리 해피엔딩입니다.쥴리아 로버츠는 휴 그랜트가 좋아하는 헨리 제임스 원작의 영화에 출연하고 휴 그랜트와 결혼하여 영국에 정착합니다.재미있는 것은 헨리 제임스 역시 미국인이지만 유럽문화를 이해하고 동경하여 결국 영국에 귀화한다는 점이지요.이렇게 이 영화에서는 헨리 제임스가 아주 중요한 키워드가 되어 있습니다.

 

  헨리 제임스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 중 한 명입니다.'데이지 밀러'는 분량도 짧고 스위스 이탈리아의 정경도 자세하여 로드무비 같은 느낌도 줍니다.헨리 제임스 입문용으로 좋지요.요즘은 절판된 한국 헨리 제임스 학회 번역 <헨리 제임스 단편집>(현민시스템 1995)에도 재밌는 작품이 많이 수록되어 있습니다.특히 헨리 제임스는 추리나 공포괴기 쪽에도 솜씨가 좋습니다.'실수의 비극', '어느 헌 옷가지에 얽힌 로맨스' 같은 작품이 그 예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제인 오스틴은 여성 애독자가 있는 편입니다.그래서 '노팅힐'에서 제인 오스틴을 언급한 장면이 있음을 기억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하지만 정작 영화의 진짜 키워드인 헨리 제임스는 낮은 지명도 때문에 소홀히 지나치게 됩니다.내 글을 읽고 다시 한 번 영화를 본다면 아마 헨리 제임스가 귀에 들어올 것입니다.물론 '데이지 밀러'를 읽고 난 후 본다면 금상첨화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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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클 2012-08-29 1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주제곡 Elvis Costello의 'She'가 기억이 나네요. 휴 그랜트의 괴짜 친구도. 참, 암호명(?) '밤비'도. ^^

노이에자이트 2012-08-29 13:46   좋아요 0 | URL
애기 오줌 누일 때 부르는 노래 쉬~~ 늘 벌거벗고 다니는 그 괴짜친구...으흥...밤비.

그리고 앞으로는 헨리 제임스도 기억해 주세요~

transient-guest 2012-08-30 07: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영화는 여러번 봤는데, 헨리 제임스는 처음 듣네요. 구해서 읽어봐야겠습니다. 저는 그냥 미국사람들은 역시 영국 액센트를 좋아하는구나 생각만 했지요.

노이에자이트 2012-08-30 15:43   좋아요 0 | URL
이제 노팅힐을 다시 보면 헨리 제임스가 귀에 들어올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