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에는 건국이냐 정부수립이냐 용어 문제로 대립하더니, 이제 한국전쟁이냐 6.25전쟁이냐로   대립합니다.평범한 사람들이야 두 용어 중 어느 것을 쓰든 상관하지 않지요.학자들은 이 용어를 통일하기 위해 토론도 하고 논쟁도 합니다.그런데 2010년 그러니까 한국전쟁 60주년 특집을 마련하면서 언론사들 간에 한국전쟁파와 6.25전쟁파로 나뉘었습니다.당연히 진보 보수 이념논쟁이 스며들었습니다.

 

  간단히 정리하면 조중동은 모두 6.25전쟁이라는 용어로 통일했습니다.뉴스를 잘 들으면 정부에서도 6.25전쟁으로 용어정리를 한 것 같습니다.원래는 한국전쟁이라고 하든 육이오전쟁이라고 하든 아무 문제가 없었습니다.예를 들어 박정희 행정부 시절인 1968년에 나온 <한국전쟁사>(전사편찬위원회)라는 책도 있고(이 책엔 박정희 장군의 휘호가 들어있음), 반공극인 '전우'의 작가 김중희씨가 쓴 방대한 실록이 <한국전쟁>입니다.그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서 한국전쟁이라는 용어보다는 육이오전쟁이라고 해야 한다고 설득해봤자 뭔 잔소리여 하고 핀잔이나 들을 것 같습니다.

 

  그러면 왜 보수진영에서는 2010년이 되어서야 육이오전쟁이라는 용어를 써야 한다고 했을까요.그것은 1950년 6월 25일에 누가 먼저 전면적인 공격을 했느냐가 중요하다면서 남침의 책임소재를 명확히 하기 위해서였습니다.북한은 남한이 먼저 공격했다는 이른바 북침설을 공식설로 내세우고 있습니다.(물론 이것은 냉전종식 이후에는 러시아나 중국에서도 채택하지 않는 설입니다).그러니 우리는 남침을 명확히 하면서 국가관을 다져야 한다는 것이 보수진영의 논리이고 거기에 진보진영이 맞섰습니다.그래서 오랜동안 보수진영이나 진보진영이나 별 편가름 없이 써오던 용어가 이젠 무슨 용어를  쓰느냐에 따라서 편가름이 되는 것으로 윤곽이 잡히고 있습니다.물론 이런 진영논쟁에 대해서 대다수 장삼이사들이야 별 관심을 갖지 않지요.하지만 좀 아는 척하는 사람들, 먹물기질 있는 사람들(이런 인간들은 보수진영에도 있고 진보진영에도 있음)이 이 문제에 대해서 정색하면서 말싸움을 걸어오면 피곤해지기 시작합니다.

 

  건국이냐 정부수립이냐 하는 문제도 그렇습니다.그동안 이 두 용어를  혼용했습니다.그런데 2008년 들어 건국60주년이냐 정부수립 60주년이냐 하는 문제로 진보 보수 갈라져 싸우더니 이제 한국전쟁60주년을 맞이하여 한국전쟁이냐 6.25전쟁이냐 하는 것 가지고 또 갈라졌습니다.그 막간극에 자유민주주의냐 민주주의냐를 둘러싸고 또 한바탕 했지요.

 

  물론 한국전쟁이냐 6.25전쟁이냐 하는 문제를 정리하는 것은 필요합니다.휴전된 지 60년이 가까와 오는데 아직도 용어정리가 안 되어 있는 것이 바람직한 상태는 아니지요.하지만 차분하고 냉정한 논의가 아니라 진흙탕 싸움으로 가기 쉬운 진영논리가 바탕에 깔리게 되니 피곤하고 괴롭습니다.그저 한가한 틈만 나면 편갈라 싸울 거리가 없는지 늘 그런 생각만 머리에 가득한 이들이 이 나라엔 꽤 있나봅니다.그게 그렇게 재미있을까요?

 

  나는 언젠가 한국전쟁에 관한 논쟁을 정리한 책을 써보려고 그 분야의 관련서적을 꽤 모았습니다.하지만 이 문제 가지고 아는 체하는 것은 남들이 보기엔 비호감일 뿐입니다.육이오가 가까워 오니 늘 몇 년 전부터 들은 이야기가 또 방송을 차지합니다.요즘 대학생들은 육이오가 언제 일어난지 모른다 운운 하는 기사...그러나...생각해보십시오.지금 대학생들의 부모들 거의 대부분이 육이오 이후 태어난 사람들입니다.그러니 지금의 20대가 육이오 일어난 해를 모를 수도 있겠지요.세월이 지났지 않습니까.기성세대에게 "육이오도 안 격어본 것들이 뭘 안다고..."하는 욕을 얻어먹은 세대가 나이 들어 이제 그 자식들이 20대가 되었으니까요.지금 한국전쟁 관련 전문가로 활약하고 관련 저서도 낸 박명림, 박태균, 정병준이 전부 휴전 이후 태어난 사람들입니다.

 

  그래서...나는 육이오라고도 했다가 한국전쟁이라고도 했다가 내 맘대로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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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2-06-25 2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감합니다.

며칠 전 조선일보 칼럼에서는 아예 6.25 남침전쟁이라고 규정하자는 글을 본 적이 있어요. 사실 용어 확립 논란도 마무리짓는 것도 좋지만 과연 용어는 통일한다고해서 우리나라 사람들 일부가 6.25 전쟁에 대해서 자세히 아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관심을 가지지 않을거라고 생각이 들어요. 역사 논쟁에 열을 올리는 기득권층들이 자신들의 갈등과 불화가 역사 교육을 경시한 교육제도에서 비롯된 사실을 과연 제대로 알고 있는지 궁금하네요..

노이에자이트 2012-06-26 01:33   좋아요 0 | URL
한국전쟁 용어 문제는 기득권층만이 아니라 진보 보수 모두 조금씩 이야기가 나온 것입니다.그러나 요즘 같은 식으로 정착되는 모양새는 아무래도 좀...

transient-guest 2012-06-26 01: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6.25나 한국전쟁이나 (예전에는 동란이란 말도 쓰인 적이 있는것으로 기억합니다) 편하게 쓰는 것이죠. 뭐가 그리 대단한 용어라고. 정말이지 '용어정리'를 내세운 또하나의 프레임짜기 같네요.

노이에자이트 2012-06-26 01:34   좋아요 0 | URL
용어정리를 하는 것은 필요하지요.하지만 아무래도 이 문제가 워낙 이념적으로 민감하니까 소모적인 말싸움으로 번지는 것 같습니다.

미국사람 2012-07-27 07: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국전쟁이라고 하는 말은 미국쪽(Korean War) 이나 중국, 일본쪽 (조선 전쟁) 에서 부르는 이름이고 우리가 6.25를 한국전쟁으로 부르는 것은 옳지않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남북이 싸운 내전을 한국전쟁이라고 한다는 것은 외부인의 입장에서 하는 말이고 우리 입장에서는 반드시 한국 내전 또는 6.25 이런 식으로 불러야되다고 생각합니다. 미국에서 벌어진 남북전쟁을 미국에서 미국전쟁(American war) 라고 부른다면 얼마나 웃기는 용어 이겠어요.(미국에서는 반드시 Civil War(정확히 내전이라는 뜻) 라고 합니다.

한국전쟁이라는 말은 부르스 커밍스가 한국전쟁의 기원을 쓴 이후 유행한 말인 것 같은데 이를 그래로 가져다가 쓰는 것은 조금....

참고로 월남에서는 월남전을 어떻게 부르는지 궁굼하군요.



노이에자이트 2012-07-27 16:26   좋아요 0 | URL
한국전쟁이라는 단어에 대한 미국사람 님의 설명은 우리 학계에서도 나왔습니다.
한국내전에 대해서는 내전으로 시작했지만 국제전으로 전개되었기 때문에 요즘은 널리 받아들여지는 용어는 아닙니다. 전쟁이 시작한 날짜를 내세우는 6.25도 좀 이상하죠.

그리고 제가 헌책을 많이 갖고 있는데,브루스 커밍스가 한국에 소개되기 이전인 70년대 김중희 씨 책제목도 한국전쟁이라고 한 것이 있습니다.

베트남에서는 월남이란 말을 싫어합니다.

미국사람 2012-07-28 05: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노이에자이트님 여기 와본지도 몇달만이군요.. 노이에님의 말씀은 충분히 이해가 되고요 그냥 저의 사견을 전재로 말씀드립니다. 이런 용어 가지고 싸우자는 뜻은 아니고요.

50년대 이후 영미쪽에서 나온 책은 Korean war라는 말로 통일되어 있읍니다. 80년대 초까지는 한국의 대부분의 매체에서 6.25 라고 했읍니다. 한국전쟁이라는 말이 한국에서 자주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80년대 후반으로 생각됩니다.

데이비드 핼버스탬이 쓴 한국전쟁사 [콜디스트 윈터: 한국전쟁의 감추어진 역사 2009]를 보면 전쟁을 미국 혼자서 하는 것 같이 나오거든요. 1000페이지나 되는 책 속에 한국인 병사는 한명도 찾을 수 없어요. 한국전쟁이라는 이름은 한국전쟁 속의 한국인을 철저히 남으로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올바르지않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개인적으로 6.25나 한국전쟁이나 마음에 안들기는 마찬가지 이고 내전이라고 부르는게 어떨까합니다. 내전으로 시작해서 국제전으로 되었지만 전쟁은 한국땅을 한치도 벗어나지않았거든요.

지금 상황으로 보아서는 한국전쟁이라는 이름으로 굳어질듯한데 좀 더 토론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되네요.




노이에자이트 2012-07-29 19:24   좋아요 0 | URL
내전이란 용어가 적절하냐 아니냐를 떠나서 남한에서는 되도록 안 쓰는 것이 좋아요.내전이라는 단어 자체에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이 많거든요.그런 사람들하고 입씨름해봤자 입만 아픕니다.자칫 잘못하면 얻어 맞을 수도 있고요.

예전에 동란이니 사변이니 하는 단어가 일종의 내전이란 뜻을 담고 있었죠.

핼버스탬이 워낙 유명한 기자 출신이라서 한국에서도 번역되어 꽤 화제가 됐습니다.이 책은 우리나라에선 맥아더에 대한 내용이 주목을 받더라고요.영어원본으로 읽으셨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