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말, 라디오를 통해서 나온 애잔한 목소리..."잊는다는 슬픔보다 잊어야 하는 이유가 내겐 너무나 서글픈 아픔이었네..." 오! 이 여인은 누구인고? 이렇게 가녀린 목소리를 가지다니? 설마 목소리만 이렇고 생김새는 뺑덕엄씨같이 생겨 우리를 실망시키진 않겠지? 아! 그러나 실망할 필요는 없었습니다.그녀는 여고생.이름은 이지연! 순정만화에서 막 튀어나온 듯한 청순가련형 소녀. 오...그녀는 요정인가 사람인가? 한동안 이지연도 밥먹고 똥을 누는가로 갑론을박했다는 전설도 있었다는데...
그런데 모두가 그녀의 노래에만 빠져 있는 순간에도 이 노래의 작곡작사가는 누군가에 관심을 가진 나는 깜짝 놀라고 말았으니...바로 유현상! 아니 이 유현상이 그 헤비메탈하는 남자 유현상이란 말인가? 아니...그 거친 목소리를 내는 남자가 어떻게 여고생의 감성으로 충만한 이런 노래를 작곡하고 작사했단 말인가...놀라는 것도 잠시...그후로 2년 여 동안 이지연의 히트곡은 모두 유현상 작사작곡. 댄스곡도 발라드도 모두...결국 유현상은 이지연 노래만들기와 음반제작에 몰두하여 백두산 활동도 소홀히 하고 팀은 해체되고 맙니다.그리고 이지연도 난 데 없이 1990년 경 어떤 아저씨와 사랑의 도피를 하면서 짧았던 연예계 생활을 청산합니다.유현상은 헤비메탈과 완전히 인연을 끊고 트로트 가수가 되고...
좀 더 시간을 거슬러 올라 1970년대 중반. 가냘픈 목소리로 "거리에 찬 바람 불어오더니 한 잎 두 잎 낙옆이 지고..." 하는 노래를 부른 여인이 있었으니 그 이름 윤정하! 제목은 '찬비'. 여성적인 노래란 이런 것이구나 하는 것을 절실히 느끼게 해준 노래. 그런데 이 노래를 작사작곡한 이가 누구인고 하니 하수영. 소녀시대의 수영은 최수영이고 이 하수영은 '아내에게 바치는 노래'를 부른 하수영입니다.아마 지금의 20대나 30대의 부모님이 좋아했을 저음가수. 체격도 크고 목소리도 남자의 매력이 짙게 풍기는 하수영이 이런 애잔한 노래를 만든 것입니다.
얼마전 인터넷으로 윤정하 씨의 최근 노래부르는 모습을 봤는데, 역시 세월이 흘러서인지 그 고운 목소리도 이젠 좀 탁하고 굵은 아줌마 느낌이 나더군요.어쩔 수 없는 운명이지요.하지만 그래도 하수영 씨보다는 낫습니다.알 사람은 알겠지만 하수영은 40도 못채우고 1982년 경 병으로 사망합니다.그렇게 건장한 체격을 지닌 남자가 저세상으로 가버린 것입니다.그는 '아내에게 바치는 노래'가 대히트를 쳤지만 후속곡이 나오지 않았습니다.'찬비'를 작사작곡한 것만 봐도 음악적 재능이 있는 사람인데 일이 잘 안 풀렸지요.흔히들 가수는 노래처럼 운명이 다가온다면서 차중락의 '낙엽따라 가버린 사랑'이나, 배호의 '마지막 잎새'를 거론하는 이들이 많지만 하수영은 자기 노래와는 무관하게 불귀의 객이 되었습니다.'아내에게 바치는 노래'로 이름을 알린 남자가 총각으로 생을 마감했으니까요.
이지연이나 윤정하 노래를 제대로 부르는 여자는 참 드뭅니다.괜히 이쁜 척하고 부르다가 분위기만 엉망 만드는 여자들이 많지요.하수영만큼 멋진 저음을 가진 남자도 드무니 그의 매력을 살려 '아내에게 바치는 노래'를 부르기도 힘듭니다.유현상 노래도 헤비메탈 시절보다는 트로트 가수 때 부른 '여자여"가 더 유명합니다만 역시 맛을 내서 부르기 힘든 노래입니다.그래도 내 목소리에 어울리는 노래는 '여자여'가 낫군요.재작년엔가 '세바퀴'에 유현상 씨가 나와서 애프터스쿨의 유이를 비롯한 여자출연자들을 앞에 두고 '여자여'를 부르는데 역시 가수는 다릅니다.여러분은 이 가수들의 어떤 노래를 애창곡으로 삼고 있는지?
***스물을 갓 남기며 사랑의 도피를 했던 이지연 씨는 2008년 이혼했습니다.이제 그녀도 마흔이 넘었군요.1970년 출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