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엽 씨가 고려대 총장 재직 시절,소설가 최일남 씨와 대담한 기사가 있습니다.역시 명사들의 회고담은 읽을수록 재미있습니다.이 기사는 1984년 신동아 2월호에 실렸는데 당시 대학생들, 대통령에 대한 평가, 평양 방문 때의 이야기가 특히 재미있습니다.일부 요약합니다. (*)안의 내용은 내가 풀이한 것입니다.

 

---시험제도가 이래가지고는 그런 상황이 되풀이될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학생이나  학부모와 마찬가지로 학교도 전혀 예측할 수가 없습니다.입시제도 자체도 OX식으로 되어있는데 보완이 되어야 합니다.학교자체에서 테스트할 기회가 없습니다.그러다 보니 학생들의 문장력도 형편없고, 판단력이 약합니다. 

---나는 한중일을 놓고 생각할 때 일본이 왜 우리보다 앞서나가느냐...그것은 골 오리엔테이션(goal orientation)의 경향이 강하다 이겁니다.어떤 분야에서나 그 분야에서 앞서가면 사회가 그것을 인정해주고 본인도 만족하는 것입니다.비즈니스가 되었건,  밥장사가 되었건 말입니다.그들이 우수해서가 아니라 도쿠가와 막부시대의 봉건제도가 깊은 관계가 있습니다.그런데 우리와 중국은 스테이터스 오리엔테이션(status orientation)이 되어서 인재가 한쪽으로만 몰립니다.벼슬하는 쪽으로 말입니다.상당히 고쳐나가고는 있지만... 

---5,16부터 그해 8월까지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박정희 장군이 대선출마하여 정식 대통령이 되기 전까지의 직함)고문을 석달 동안 했습니다...혁명세력이 낫세르 식의 반미주의를 내세우는 것 같았어요.우리는 미국과의 관계가 악화되면 생존이 불가능하다, 어떻게든 이 위기를 넘겨야겠다고 생각했어요....그래서 장형(*장준하를 가리킴.)과 의논하여 '사상계' 주최로 창경원에서 파티를 열었습니다.박정희 장군 등 혁명정부 수뇌부와 미국대사도 불렀습니다.나 말고 박관숙,서돈각,민병태,이수영 등이 참가했습니다.나중에 이정환 씨와 박동앙 등이 각각 재무장관과 농수산부장관으로 입각했는데, 이 분들은 사상계 고정필자로 장준하형과 내가 천거한 사람들입니다(*장준하도 5,16직후에는 박정희를 지지했음) 

---박대통령과 장준하 씨의 불화는 기본적인 생각의 차이도 있고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으나, 그중에서도 면회거부사건이 생각납니다.장형이 막사이사이상 (*필리핀 대통령 막사이사이를 기리는 뜻에서 만들어진 상. 60년대에서 70년대에 이 상은 우리나라에서는 노벨상에 버금가는 권위가 있었음)을 받게 되자, 떠나기 전에 박의장을 만나 인사나 하려고 면회를 신청했었습니다.허나 몇주일동안 소식도 없고 만나주지도 않았어요.그런데 미스코리아는 만나주는 거에요.장형이 화가 날밖에요.그런저런 일이 있는 뒤부터 사상계에서 군정을 비판하기 시작했습니다.이거 이 다음에 쓰려고 했던 건데, 미리 다 밝히는군요. 

---평양에 가보니(*1972년 7월 4일 남북공동선언 직후 남북적십자회담이 각각 서울과 평양에서 열리고 이때 김준엽은 남북적십자회담 자문위원으로 평양을 방문한다) 김일성 숭배가 대단하더군요. 말끝마다 태양이니 어버이니 하는 것이었습니다.가기 전엔 스몰 스탈린 정도로 생각했어요....스탈린에다 진시황, 일본의 천황(*1989년 히로히토 천황 사망 이전에는 일왕이란 단어는 우리나라에서 쓰지 않았음), 하느님까지 합한 것이 김일성이었습니다.하나 재미나는 것은 그때 함께 간 기자들인 이광표,송건호(*이때는 동아일보기자였음.1975년 동아투위사건으로 해직되었고, 1988년 한겨레 신문창간을 주도함),김용태 등이 판문점을 넘자마자 개새끼들이라고 욕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승만 박사가 건국 초에 좋은 일도 많이 했으나 친일파를 중용한 건 가장 큰 실수입니다...이박사가 친일파를 중용한 것은 김구선생과의 경쟁과도 관련이 있습니다.친일파들은 자기들을 정당화하기 위해 독립운동을 격하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은...정권을 잡은 방법 자체는 안 좋고, 민주주의 발전에는 마이너스를 가져왔으나, 우리 민족에게 자신감을 심어준 것은 큰 공으로 쳐야지요.그 당시의 경제학자들도 우리나라 경제가 도저히  일어설 수 없다는 것이 정설이었는데 그걸 뿌리치고 큰 경제개발을 하지 않았습니까.

---(최일남 씨가 김준엽 씨더러  곱게 늙는다고 말해주자) 허허허.내가 벌써 그런 걸 생각할 나이가 되었습니까.그것은 외관을 보고 하는 소리가 아닐 것입니다.인간으로 못할 짓을 하거나 부끄러운 일을 하면서 사는 사람이라면 외관이 아무리 고와도 곱게 늙었다고 할 수 있습니까. 

 ***6월 7일 김준엽 씨 별세...1920년 평북 강계 출생. 내가 중국근현대사 분야의 독서에 한참일 때 청나라 말기 역사를 알기 위해 그의 <중국최근세사>(일조각)를 참고서 외우듯  읽은 생각이 납니다.다행히 방대한 회고록을 남기고 가셨습니다.<장정> 전 5권 나남출판사.특히 학병으로 징집되었다가 장준하와 함께 탈출한 이야기가 드라마틱합니다.  장준하의 회고록인 <돌베개>에도 학병으로 일본군에 징집되었다가 탈출하는 과정이 자세히 나옵니다.

***요즘 문학평론가 김윤식 씨가 학병으로 징집된 장준하 김준엽 이병주 등이 남긴 기록을 연구하고 있습니다.그 성과가 <일제말기 한국인 학병세대의 체험적글쓰기론>(서울대 출판부 2007>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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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쉰P 2011-06-10 18: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장준하 평전에서 김준엽의 이야기를 접했어요. 그래도 우리나라에 대단한 사람이 있구나란 감탄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근데 친미주의자 성향이 있으셨고, 박정희에 대한 평가는 굉장히 후하게 줬네요. -.-
일본이 앞서가는 이유에 대해서는 참으로 맞는 말이란 생각이 듭니다. 그래도 우리나라에 존경 받을 만한 분이었는데 돌아가셨으니 참으로 안타깝네요. ^^
흠..노이에자이트님의 글은 항상 새로운 발견을 합니다. 마치 여자 아이돌 그룹은 전혀 모를 것 같은 이 글의 향기..ㅋㅋㅋ

노이에자이트 2011-06-10 21:12   좋아요 0 | URL
사상계 인맥과 박정희의 관계에 대해서 좀더 알아보라는 자극을 줄 겸 박정희 관련 발언을 소개했습니다.

김준엽 씨가 점잖은 분이지요.보수적이면서도 완고하진 않고...뉴라이트 운동에도 참여하지 않았고요...

아이돌 그룹에 대해 글을 쓰는 사람은 이런 글을 못 쓸 거라는 편견을 깨기 위해서...

루쉰P 2011-06-10 21:14   좋아요 0 | URL
전 그런 편견 옛날부터 가지지 않았어요. ㅋㅋ

노이에자이트 2011-06-11 15:19   좋아요 0 | URL
지극히 바람직합니다!

2011-06-11 00: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6-11 15: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꼬마요정 2011-06-11 02: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외모가 고와도 살아온 행적이 못돼먹으면 곱게 늙었다고 할 수 없다는 말이 가슴에 와 닿습니다. 이승만이 저지른 가장 큰 잘못은 김구 선생을 살해한 것과 친일파 등용, 한강 다리 끊고 도주, 보도 연맹, 3.15 부정선거.. 앗.. 가장 큰이라고 했는데 너무 많네요ㅜㅜ

노이에자이트 2011-06-11 15:12   좋아요 0 | URL
김구암살도 그렇고 해방 공간의 암살은 그 어느 하나 뚜렷이 밝혀진 것이 없어서 알쏭달쏭합니다.

우리 모두 곱게 늙읍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