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명한 이치로 받아들이는 전통적인 말씀이 있습니다.그 예가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말라는 말씀이지요.교권이라는 단어와 함께 늘 거론됩니다.또 어른들이 어린이나 청소년들에게 잔소리 할 때 단골로 등장하는 말씀이기도 합니다.야...이것들아...우리 땐 스승님 그림자도 안 밟았어...하고 시작하는 지당하신 말씀 !
그런데 세상에는 이런 당연하신 말씀의 기원을 탐구하는 독특한 사람들이 소수나마 있습니다.그리고 그런 독특한 사람들 덕에 우리는 당연한 듯이 여긴 말씀이 전혀 당연하지 않음을 알게 됩니다.인습이 마약이라면 이런 사람들의 탐구심은 각성제 노릇을 해주니 이 또한 고마운 사람들이지요.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말라는 지당한 말씀은 도대체 누가 한 말이지? 하고 의문을 가진 사나이가 있었던 것도 놀랄 일은 아닙니다.
우리나라에도 한시를 좋아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유명한 일본의 석학 요시카와 고지로는 중국사상사에도 일가견이 있어서 대중들을 위한 교양서를 내기도 했습니다.그는 특히 유교사상을 공부할 때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말라는 말은 어디에서 인용한 것인지 한 번 조사해 봤습니다.논어에 그 말이 나왔다기에 논어를 정독해 봤는데 어디를 봐도 그런 내용이 없었답니다.그래서 주변의 중국사상 전문가들에게 그 말의 출처가 무언지 아느냐고 물어보니 모두 모른다고 했습니다.
요상하기도 하다...그렇게 유명한 가르침인데 출전을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니...하고 고개를 갸웃거리는 요기카와에게 한줄기 빛을 던져 준 사건..."그건 중국 쪽 문헌에는 없고 에도 시대 데라코야 (우리나라 서당 같은 학교)의 교과서에 나오네요" 하고 누군가 알려주었습니다.아하...그렇구나...이거 의외로 역사가 짧네...에도 시대라면 17~19세기 인데...
여러분이 논어를 읽어본다면 공자와 제자 간 토론이 의외로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진행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한가지 문제가 있는데 번역입니다.중국어를 공부해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중국어는 존대말 반말의 구분이 거의 없는 거나 마찬가지입니다.선생님이나 형이라는 단어가 있지만 그렇다고 윗사람은 반말하고 아랫사람은 존대말 하는 체계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그러니 사제지간에도 평등하게 논쟁을 할 수 있었습니다.그런데 우리나라 논어 번역본은 공자는 반말로 하고 제자는 존대말로 하게 나와 있으니 중국어 특유의 자유로운 논쟁 분위기를 살릴 수가 없겠지요.
요시카와 고지로도 논어에 나오는 공자와 제자와의 관계는 엄한 위계질서가 아님을 강조하고 있습니다.제자가 이의제기도 자유롭게 할 수 있었지요.그러면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말라는 말은 유교의 본고장인 중국고대 유가사상을 담은 고전엔 없다는 결론이 나옵니다.그러면 우리나라에서 금과옥조처럼 받드는 그 말씀의 기원도 역시...?
소크라테스가 악법도 법이라고 말한 적이 없음이 우리나라에 알려진 지 20년 가까이 지났습니다.일단 한 번 지당하신 말씀이 뿌리내리면 아무리 그 뒤에 반증이 나와도 잘 물러나지 않습니다.지금도 악법도 법이니 지켜야 한다는 말을 하는 사람이 많습니다.그렇다면 요시카와 고지로가 "공자는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말아야 한다는 말을 한 적이 없다"고 증거를 들이댄들 무슨 별다른 효과가 생길 것 같지는 않습니다.세상엔 권위주의적인 사회분위기를 유지해야 더 좋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입니다.굳이 사회의 지배층이 아니라도!
자! 알라딘을 통해서 스승의 그림자도 밟아서는 안 된다는 말이 고전적인 유교사상에는 없음을 소개했습니다.이 사실이 널리 알려지는 데 얼마나 걸릴까요.그다지 큰 기대는 못하겠습니다.악법도 법이라는, 말도 안 되는 명제가 아직도 굳건히 살아있는 예로 봐서는.그러나 언젠가는...하는 기대를 품어봅니다.물론 "도대체 왜 이 따위 글을 써서 미풍양속을 깨뜨리느냐! "하고 일갈하고픈 사람들에겐 이런 글이 영 못마땅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