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가다가 국제경기에서 애국가를 잘못 방송해서 해당국 대표단이 항의한다던가 아나운서가 계속 국가명을 틀리게 발음해서 망신을 당하는 경우가 있습니다.실제로 남의 나라의 명칭이나 도시명을 혼동하는 경우는 많습니다.여기서 그런 지명을 몇 개 소개하기로 하겠습니다.
영화로 유명해진 도시는 그 나라의 수도로 아는 사람들이 많습니다.영화사의 고전인 험프리 보가트, 잉그리드 버그만 주연 '카사블랑카'가 있습니다.모로코에 있다는 것까지는 알지만 이 도시가 수도는 아니지요.모로코의 수도는 그 부근에 있는 라바트입니다.예전에 어떤 분은 미녀배우 그레이스 켈리를 좋아했는데 그녀가 시집간 나라인 모나코의 수도가 모로코에 있는지 알았다고 합니다.모나코는 프랑스에서 이탈리아로 가는 도중에 있는 작은 왕국으로 여기 가기 전에 나오는 칸은 영화제로 유명한 곳입니다.
남아공 월드컵이 열리자 한동안 남아공 열풍이 불었지만 정작 이 나라에서 유명한 도시는 수도가 아니지요.남아공 기후가 좋기 때문에 유럽 이주민들이 식민지 건설하면서 세운 요하네스버그, 케이프타운 등이 유명하고 수도인 프리토리아는 지명도가 덜한 편입니다.복싱을 좋아하는 이들은 홍수환이 밴텀급 챔피언이 되었던 도시 더반을 기억합니다.남아공의 휴양지로 알려져 있지요.
아프리카, 특히 사하라 이남의 아프리카 국가들을 아는 사람들은 많지 않습니다.심지어는 이 나라들이 아프리카어라는 단일 언어를 쓰고 있다고 여기는 이들도 있지요.방송을 통해서 가장 유명해진 곳은 세렝게티인데 이걸 국명으로 알고 있는 이들도 많습니다.하지만 세렝게티는 탄자니아라는 나라의 자연보호구역이지요.밀리터리 매니아들이 반드시 봐야 한다는 영화 '블랙호크 다운'이 배경인 모가디슈는 소말리아의 수도입니다.적도 이북의 동아프리카에 있습니다.죽음의 경주로 유명한 자동차 경주의 종점인 다카르는 서부 아프리카의 세네갈의 수도입니다.이 나라는 월드컵에 가끔 나오기 때문에 알려진 편입니다.
냉전이 끝나고 나서 수도가 달라진 나라들이 있습니다.베트남 하면 사이공이 동양의 파리로 알려져 있지만 이젠 그 명칭은 호치민으로 바뀌고 수도도 하노이로 옮겼지요.독일도 예전 냉전 시대 때 동,서독이 갈려 있을 땐 서독은 본, 동독은 베를린이었다가 통일 이후 베를린으로 수도가 정해졌습니다.하지만 냉전 시대 때도 서독 축구는 차범근 덕에 유명했기 때문에 프랑크푸르트가 수도라고 알고 있는 이들도 꽤 있었다고 합니다.
국사시간에 헤이그 밀사 사건이 나오는데, 선생님은 이 도시가 네덜란드에 있다는 것을 알려주었지요.그래서 네덜란드 수도인줄 알고 있다가 나중에야 네덜란드 수도는 암스테르담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스위스에서도 취리히나 제네바의 지명도가 높은 편입니다.전쟁영화를 보면 '이건 제네바협정 위반이오!' 하고 포로들이 항의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 덕에 제네바라는 지명이 많이 알려졌지요.하지만 스위스 수도는 베른입니다.그리고 어떤 이들은 알프스산을 아무리 찾아도 없다고 하던데 알프스 산맥은 있지만 알프스 산은 없지요.그리고 알프스 산맥의 최고봉인 몽블랑도 스위스가 아닌 프랑스에 있습니다.
냉전 이후 유럽에서 가장 큰 변동을 보인 곳은 옛 공산권입니다.특히 유고내전 이후 수많은 국가로 갈라진 발칸반도의 국명은 운동경기 중계하는 아나운서들에겐 공포의 대상이지요.국명이 길기도 하고 혼동되는 나라들도 있으니까요.중학교 시절 어떤 선생님은 탁구를 좋아했는데 잊을 만하면 이애리사 선수가 세계탁구대회에서 우승한 사라예보라는 도시를 말했습니다.유고슬라비아에 내전이 일어나기 전 나는 이곳이 유고슬라비아의 수도인줄 알았습니다.나중에 지도를 찾아보고난 뒤에야 유고슬라비아 수도가 베오그라드라는 걸 알게 되었지요.유고슬라비아가 없어진 지금은 사라예보는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수도이고, 베오그라드는 세르비아의 수도가 되었습니다.세르비아는 2006년 월드컵에 출전할 때만 해도 세르비아 몬테네그로라는 국명이었지만 2007년에 몬테네그로가 독립하여 국명이 좀 짧아졌습니다.
체코슬로바키아는 동구공산주의가 몰락하면서 체코와 슬로바키아로 분리되었습니다.언어도 각각 다르지요.아무래도 슬로바키아보다 체코의 지명도가 더 높아서인지 슬로바키아를 슬로베니아로 혼동하는 이들이 많습니다.이번 월드컵에서도 피파집행위원회가 이 두나라를 혼동하여 당사국의 항의가 있었고 우리나라 아나운서는 중계 도중 슬로베니아를 슬로바키아라고 하기도 했습니다.슬로베니아는 유고내전 후 분리독립한 나라이고 최근 국내에도 알려지기 시작한 슬라보예 지젝이 여기 출신이기도 하지요.
우리는 알프스 하면 스위스를 떠올립니다만 실상 알프스 산맥은 독일 이탈리아 프랑스 스위스 리히텐쉬타인 오스트리아 등 여러나라에 걸쳐 있습니다.또 그 알프스 산맥과 떨어진 발칸반도의 크로아티아의 달마티아 해안을 끼고 디나르 알프스 산맥이 있습니다.'달마티안'라는 영화로 유명해진 달마티안 견종의 원산지입니다.이 영화 때문에 우리나라 어린이들도 얼룩덜룩한 개는 전부 달마티안이라고 했다는 일화가 있지요.
미국 수도를 뉴욕이라고 하는 이들도 많습니다.뉴욕이 워싱턴보다 더 크기도 하거니와 우리나라 일부 연예인들과 패션디자이너들이 뉴요커니 뭐니 하면서 뉴욕사람들은 모두 '섹스 앤 시티'에 나오는 주인공 처럼 산다는 환상을 심어주기도 했지요.하지만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액션영화에 나오는 뉴욕, 특히 빈민가는 범죄의 온상으로 나왔고,그런 장면을 보면서 어린 마음에, 뉴욕에선 날마다 범죄자들의 총격전이 벌어지는 줄 알았습니다.어쨌건 미국 수도는 워싱턴D.C.입니다(수도 워싱턴은 할인을 잘해줘서 워싱턴D.C.라고 한다는 우스개가 있지만 영어권에서는 discount의 약자를 DC로 표기하지 않음.대표적인 콩글리시임).워싱턴주는 서부에 있습니다.수도 워싱턴은 동부에 있고...워싱턴 주의 주도가 시애틀인데 여기는 불면증 걸린 사람들이 많다고 아는 이들이 있다고 합니다.영화 '시애틀의 잠못 이루는 밤' 때문이라네요.하지만 시애틀은 미국에서 선정하는 살기 좋은 도시에 들어간다고 하니 잠도 잘온다고 합니다. 또 올림픽이 열린 몬트리올이 캐나다의 수도인줄 아는 이들이 많습니다만 사실은 오타와가 수도입니다.
오스트레일리아는 우리나라 관광객들도 많이 가고 유학생들도 많이 있는 곳인데 여기 수도를 시드니나 멜버른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습니다.아무래도 여행지로 많이 가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만 수도는 캔버라입니다.싱거운 개그 중에 아무리 농사를 지어도 안되는 곳이 시드니라고 합니다.다 시들어서...
브라질에도 리우데자네이로와 상파울로라는 대도시가 있어서 이 둘 중에 한 곳이 수도라고 여기는 이들이 많지요.하지만 수도는 브라질리아입니다.브라질은 라틴 아메리카 국가 중 포르투갈어를 쓰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요.라틴 아메리카의 다른 나라들은 스페인어를 씁니다.한때 미국인들이 얼마나 국제상식이 없는가를 알려주는 동영상에는 라틴아메리카는 무슨 언어를 씁니까 하는 질문에 '라틴어를 씁니다'하고 대답하는 장면이 있었습니다.라틴 아메리카 사람들이 모두 모여서 하필 그 어려운 라틴어를 쓰자고 합의한 적도 없는데...브라질 빼고는 스페인어를 쓰지요.
이렇게 글을 쓰고는 있지만 나는 해외여행을 해본 적이 없습니다.하다못해 북한 개성의 박연폭포나 고성의 금강산이라도 가볼까 했는데 이젠 그것도 힘들게 되었습니다.그냥 집에서 지도책이나 보고 인터넷에 올라온 여행기나 읽으면서 대리만족해야겠습니다.여러분도 혹시 헛갈렸던 지명이 있으면 소개해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