얽히고 설킨 한반도 주변정세를 이토록 쉽게 전달할 수 있을까 하며 경탄한 적이 있습니다.리영희의 짧은 글 '현해탄'. 군사니 외교안보니 하는 글엔 머리부터 지끈거린다는 사람들도 쉽게 읽고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하는 글입니다.그 내용을 소개하면... 

    1970년 경 일본의 군사대국화가 진행되는 데 대해 한국인들이 염려하던 때. 리영희는 두 부류의 일본인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 중 한명은 평화주의 성향의 일본인 기자요, 한 명은 우익 성향. 먼저 평화주의자와 편지로 대화한 내용을 소개합니다. 

     일본인 기자: 부관 연락선의 재개통을 한일양국간 우호관계의 상징으로 보고 기뻐하는 한국인은 극히 소수에 지나지 않음을 알고 돌아왔습니다.확실히 일본은 대부분의 한국인이 두려워할 만큼 급속히 군사력을 강화하고 있습니다.그러나 나와 많은 일본인이 이에 반대하고 있다는 사실도 알아 주십시오. 만일 그 만화가 예언한 것처럼 일본군의 탱크가 부산으로 일본의 기지를 떠나게 될 때에는 나는 모든 귀한 것을 버리고 그 탱크가 굴러가는 신바시(잔교)위에 나가 누울 것입니다. 

     리영희:당신이 신바시에 나가 누울 필요도 없고 일본군의 탱크가 올 필요도 없는 관계를 이룩하기 위해 서로 노력합시다. 

# 여기서 말한 그 만화라는 것은 당시 일본 유력신문에 나온 네컷 시사만화의 내용. 관부연락선이 재개통하자 처음엔 하오리,히까마 차림과 평복차림의 일본관광객이 배에 오르고, 그 다음엔 찝차가, 맨 마지막엔 일장기를 꼽은 탱크가 배에 오른다는 내용.

   그 다음 소개한 일본인...한국에 처음 온다는 일본인 교수.무교동 술집에서 한국인 지식인들과 이야기 합니다.일본 교수는 한국의 경제발전을 칭찬하고....그와 이야기하는 한국인들은 일본이 경제는 물론 군사면에서도 한국의 후견인 노릇을 하는 것이 아닌가 하면서 염려하는데, 그 일본 교수가 거북스럽다는 듯이 한마디 합니다. 

  일본인 교수: 그런 두려움을 품는 여러분 마음은 이해할 수 있습니다. 또 그런 가능성이 절대로 없을 거라고는 일본 정부의 견해와 과히 틀리지 않는 나의 입장에서도 단언할 수 없습니다.하지만 내가 보는 바로는 한국에 대한 일본의 군사적 역할이 본격화된다면 그것은 일본 쪽에서 그러고 싶어서라기 보다는 오히려 한국쪽에서 일본군대를 불러들이려 하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어떻습니까.여러분의 견해를 듣고 싶습니다. 

  일본 쪽만을 비난하고 있던 술자리의 한국인들은 제법 지식인을 자처하고 있는 사람들이었지만 이 질문에 대답을 못했다.......이상 <전환시대의 논리>148~149P 에서 

   지난 10월 13일에서 14일까지 부산 인근해역에서 한국주도로 미국,일본,프랑스,캐나다,호주 군대가 참여하는 PSI(대량살상무기확산방지구상. 사실상 이는 대량살상무기를 실은것으로 의심되는 북한선박을 해상에서 정지시켜 제압하는 것이 주목적.미국주도로 2003년부터 실시되었고 참여정부는 남북관계 때문에 참가하지 않았다가 이명박 정부 들어서 작년 5월에 참가했음)훈련이 실시되었습니다.여기엔 일본 자위대의 구축함 두 척이 참석했는데 해방 이후 일본 함대가 한국해역에 들어온 것은 처음입니다.위에 소개한 보수적인 일본인 교수의 말이 맞습니다.이 구축함들은 일본이 강제로 침략해 들어온 것이 아닙니다.북한을 견제하기 위한 훈련에 한국정부의 요청으로 온 것이니까요.

   나는 일본에 대해서 객관적인 지식을 얻고자 하는 이들에게 리영희의 책을 권합니다.일본 깎아내리기에 혈안이 된 흔하디 흔한 반일서적  한 트럭 분량을 읽는 것보다 낫습니다.모든 일본인을 적대시하는 맹목적인 반일주의를 극복하고 상당히 껄끄러운 진실을 과감히 드러내기 때문이기도 하고요.그러니 ...말로만 리영희 리영희 했던 분들이여...직접 책을 들고 읽으시라! 읽으시라! 읽으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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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0-12-05 2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 갑자기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가 생각나네요.그 책과 현 상황은 정 반대네요ㅜ.ㅜ

노이에자이트 2010-12-05 23:43   좋아요 0 | URL
평소 반일을 외치다가도 북한을 포위하기 위해서는 한미일 삼각공조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일본의 군사력도 환영하니까요.

루쉰P 2010-12-06 19: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천에 가서 있다가 리영희 교수님의 타계 소식을 듣고 얼마나 놀랐는지 모릅니다. 한겨레 신문에서 알바하던 시절 그곳의 논설위원이 리영희 교수에게 편지를 붙여달라는 심부름을 제게 시켰는데 리영희 교수님의 주소를 보고 한 번 편지를 쓸까 말까 고민했던 기억이 나네요. 한국의 실정에 대해 전혀 모르던 20대 후반 한겨레 신문사의 도서관에서 알바가 끝나면 쳐 박혀 앉아서 리영희 교수님의 책과 강준만 교수님의 책을 읽으며 국제적 시야를 알아 갔던 기억이 참 많이 남습니다. 개인적으로 리영희 교수님의 책 중 '중국백서'(?)라는 미국 정부의 고관이 왜 중국혁명이 성공했는가에 대해 분석한 책을 번역하신 책을 가장 좋아하고 가슴 깊이 읽었던 기억이 나네요. 리영희 교수님의 '대화'도 정말 가슴 깊이 느꼈구요. 제가 제일 존경하는 지식인 정말 지식인 이셨는데 돌아 가셨다니 애석함이 한도 끝도 없습니다. 창비에서 나온 전집도 빨리 사야 겠다는 생각 밖에 없습니다.

노이에자이트 2010-12-06 21:25   좋아요 0 | URL
<중국백서>는 미국 국무성에서 중국본토가 공산당에게 장악될 확률이 높아지자 모든 책임은 장개석과 국민당에 있다는 시각으로 펴낸 책인데 그래도 사료적 가치가 꽤 높아서 많이 인용되지요.리영희 님이 해직 중에 번역한 책이라고 합니다.앞부분은 빼고 국민당과 공산당의 내전 위주로 번역했습니다.

루쉰P 2010-12-06 19: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개인적으로 한국에서 노신 선생을 주목하게 만든 것도 리영희 교수님이셨죠. 하여튼 어떻게 주저리 주저리 쓴 다 한들 아쉬운 마음이 사라질까요. 다만 그런 시야를 가진 지식인이 돌아가셨다는 것에 대해 참 애석할 따름입니다.

노이에자이트 2010-12-06 21:26   좋아요 0 | URL
예.노신과 호지명에 대한 언급이 많았지요.

黑海 2010-12-08 15: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노이에자이트 님 객관적인 지식이란 없습니다. 지식 자체가 이미 주관적인 것입니다. 이건 영어 단어를 떠올려 보시기 바랍니다. 사실과 지식은 혼동되어 쓰이는 경우가 많지만 같은 게 아닙니다. 주관적인 것과 자의적인 것은 같은 의미로 쓰는 경우가 많지만 구별되어야 하는 것이죠.

객관적인 지식이란 말이 가능하려면 "인식과 대상의 일치"가 가능해야 합니다. 그러나 인식과 대상이 일치한다는, 즉 그것이 객관적인 인식이라는 것을 보증해줄 수 있는 기준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습니다.

객관적인 인식이 어떻게 가능하냐고 물으면 많은 사람들이 끝도 없이 방대한 사실을 나열하면서 그것을 "방증"하려는 태도를 보이지요. 방대한 사실은 그것이 객관적인 인식이라는 또는 그것이 진리인지 아닌지 판명해주는 기준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런 맥락에서 지식은 곧 권력입니다. 그것이 어떤 지식이든 그 지식은 지식을 소비하는 사람의 사유를 일정한 범주로 통제하고 지배하는 것이죠. 지식은 무엇인가를 알게 해주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러한 지식 또는 인식의 울타리 안으로 사람을 가두고 마는 것입니다.

또한 언어 자체갸 사실 모호한 의미를 지니고 있죠. 기표와 기의가 일치하지 않기 때문에 리영희 씨 책을 읽는다고 해도 "틀리게"가 아니라 "다르게" 이해될 수밖에 없고 또 다르게 이해해야 합니다. 그 과정을 통해 "저자의 의도의 의도"까지 또는 이데올로기까지 읽어낼 수 있다면 더 좋겠지요.

흑해 2010-12-08 15:56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가령 리영희 씨는 유럽에서 만들어진 "文明" 이라는 이데올로기적 담론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문명과 야만이라는 이분법을 넘어서지 못하고 오히려 그 담론을 내면화하신 분이죠. 의심나면 한 번 리영희 선생님의 글들을 읽어 보시죠.

이러한 이데올로기가 예전부터 없었던 것이 아니라 안 보려고 하니까 안 보이는 것 뿐이죠.

그런데 그 분의 책을 읽다보면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한국인들만큼 획일적으로 생각하고 획일적인 방식으로 살아나가는 사람들은 세계적으로 드물다는 생각이 드는 군요.

옷차림만 봐도 남녀노소 금세 유행이 변하고 어처구니 없을 정도로 비슷하거나 똑같은 모습입니다. 어떨 때는 군복 차림 일색, 어떨 때는 짦은 치마로 천하통일. 이렇게 이상한 나라는 드물답니다.

만약 한국이 파시즘 국가가 된다면 역사상 최강의 파시즘 국가가 될 겁니다. 연구해볼 가치가 있는 주제라고 생각합니다.

박경리나 조정래는 말할 것도 없고 리영희 씨도 어쩔 수 없이 포함되겠지만 제가 보기에는 민족주의자나 근대주의자도 결국에는 유럽중심주의자라고 봅니다. 정치적인 입장은 다양할 수 있지만 그 인식이나 논리의 차원에서 유럽중심주의를 변형된 형태로 관철시키는 거라고 봅니다.

주한미군이 이미 존재하는 상황에서 일본군까지 들어온 게 그렇게 대단한 일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주한미군은 외국군이 아닌가요?

노이에자이트 님은 어떻게 보시나요? 가령 북한이 무너지고 중국이 분열되어 있는 상황이 온다고 해서 과연 주한미군이 순순히 물러날까요?

한국이나 일본이나 내셔널리즘에 함몰되어 있는 한 힘든 일이지요. 국가라는 것 자체를 집요하게 물고 늘어질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마지막으로 사료가 없어도 사실이 무엇인지 알 수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가령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에 대한 기록 중에서 이성계가 위화도에 갔다는 기록만 있고 어떻게 돌아왔는지 대한 기록이 없다고 가정해 볼까요?

만약 그렇다면 우리는 그 사료가 없기 때문에 사실을 알 수 없습니까? 사료가 없어도 우리는 그 정황을 상상하는 게 가능합니다.

노이에자이트 님이 어떻게 생겼는지 볼 수 없어도 우리는 노이에자이트 님이 컴퓨터로 글을 쓰는 모습을 상상할 수 있습니다. 우리 중에 노이에자이트 님이 글을 쓰는 모습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하지만 노이에자이트 님에 대한 이러한 "想像"이 사실이 아닐 가능성은 희박합니다.

사료가 없다고 해도 어떠한 사실도 알아낼 수 없는 건 아닙니다. 이성계가 위화도에 갔다. 그 후에 이성계에 의해 조선 왕조가 세워졌다. 이 두 가지만 알고 있어도 우리는 이성계가 위화도에서 회군했다는 사실을 "상상"하는 게 가능합니다.

실증주의자는 위화도(현재 위화도는 존재하지 않는다)에 직접 가야만 위화도를 대해 뭐라도 얘기할 수 있는 사람이죠.

그러나 위화도에 직접 가지 않아도 우리는 "상상"을 통해서 위화도 회군에 대해 알 수 있습니다.

중국이나 일본에 대한 방대한 자료가 있어야만 무엇을 얘기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상상"입니다.

물론 "상상"은 망상이 될 수도 있죠. 그러나 상상에도 수준이 존재합니다. 따져가면서 "상상"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다릅니다.

노이에자이트 2010-12-08 16: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글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우상을 파괴하면서 또다른 우상을 만드는 것은 경계해야겠지요.
리영희 씨가 탈민족주의에 대하여 학술적인 글을 남긴 것은 아닙니다만 워낙 민족주의 성향이 강한 이 나라에서 그래도 박경리 씨나 조정래 씨보다는 좀 냉정하게 민족정서와 거리를 두려고 했던 자세는 인정하려고 합니다.
한국인이 만들어낸 획일성이야 더 말할 나위가 없지요.넓은 의미의 개인주의 근대적 인간이 뿌리를 내리지 못했으니까요.진보를 자칭하는 이들도 인습의 노예인 경우가 많습니다.

黑海 2010-12-09 15:23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정말로 개인주의 근대적 인간이 뿌리를 내렸는가와 상관없이 "개인주의 근대적 인간"이라는 담론은 자본주의와 관계없는 또는 자본주의를 만드는데 방해되는 "공동체"들을 거론할 가치조차 없는 것으로 생각하게 만들거나 파괴 및 삭제하는데 필수적인 구성 요소라고 보여집니다.

"개인주의 근대적 인간"이라는 담론은 자본주의의 핵심적 구성요소 아닐까요?

정말로 그런 인간이 존재하느냐? 근대적인 개인주의 사회가 진짜로 현실에 존재하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고 봅니다. "개인주의 근대적 인간"을 존재하는 사회로서 유럽이나 한국을 상상하게 만드는 게 문제의 핵심이죠.

그런 "상상"이 가능해야 자본주의에 방해되는 "공동체"를 파괴하거나 무력화시키고 사람들의 논의나 토론에서 "공동체" 가 거론되는 것 자체를 막을 수 있겠죠.

근대적 자본주의와 유럽중심주의를 서로 떼어놓고 보지 않는다면

그런 의미에서 한국의 "민족적 시민"들은 "개인주의 근대적 인간" 자체가 아니라 그 담론 자체에 철저히 종속당한 존재들이라고 봅니다. 즉 민족적 시민 자체가 이미 일종의 "식민주의자"인 것이죠.

한국의 민족적 시민들이 공동체를 거론하지 않은면 않을수록 식민주의의 지배가 그만큼 철저했다는 의미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저는 근대가 유럽중심주의 또는 식민주의의 다른 이름이 아닐까 합니다.

흑해 2010-12-09 15: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역사학은 오늘의 현실을 이야기하지 않으면서 과거에 눈을 돌리게 하는 게 적합한 학문이 아닐까 합니다. 그런 식으로 과거를 이야기하면서 스스로를 "진보적인" 존재로 또는 "보수적인" 존재로 다른 사람들에게 각인시키기에 적합한 학문이 아닐까요? 그런 식으로 진보적으로 보수적으로 스스로를 포장하면서 과거를 팔아먹을 수 있는 학문.

한마디로 현실에서 도피하면서 진보적으로 보수적으로 과거를 팔아먹을 수 있는 학문이 역사학이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여기 한겨레 신문 기사에 그런 사람들의 이름이 실려 있습니다.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452410.html

여기에 이름 올린 사람들을 보니 역겹습니다.

무슨 장례의원, 고문, 재정, 총무····

우리나라 민주화운동을 혼자서 다 했다고 착각하는 인간들이 개나 소나 거기에 다 들어가 있습니다.

아이고! 개나 소나 다 거기에 들어가야 한다 이거죠.

한겨레 신문이 그렇게 지네들 기준으로 다 해서 집어 넣었습니다.

한겨레 신문은 평소에 안 보지만 이 신문은 어쩌다 볼 때마다 저를 열받게 만드는 일이 많군요. 아예 보지도 말까 합니다.

이 사람들이 리영희 씨를 팔아먹는 사람들이고 자기 과거 팔아먹는, 역사 팔아먹는 인간들이죠.

혼자 흥분해서 죄송합니다. 열받아서 이 글을 올립니다.


노이에자이트 2010-12-10 14: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그렇군요.

파고세운닥나무 2010-12-16 18: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개인적으로 리영희의 책 가운데 자전적 에세이인 <역정>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삶의 이력들이 너무도 진솔하게 고백되는 걸 보며 꽤 놀랐습니다. 기생 앞에서 보인 추태를 고백하며 자신의 용렬함을 반성하던데, 그 반성하는 모습도 우리의 지식인 사회에선 꽤 특유하다는 생각을 했구요.
또 자신을 철저하게 남한 사회의 이방인으로서 자기매김하는 모습도 기억에 남습니다. '말갈'이라는 호가 정말 어울립니다.
혹자가 한국의 지사적 언론인의 물줄기를 신채호-송건호-리영희로 자리매김하던데 말이죠. 송건호와 리영희는 꽤 다르다는 생각을 합니다. 기질면에서도 그렇구요. 송건호는 젊은 시절 소설가를 꿈 꿨죠. 리영희는 고위 관료를 꿈 꿨구요.
리영희가 지사적 언론인이라는 말은 더 어울리죠. 근데 두 사람이 지금은 같은 곳에서 쉬고 있네요.

노이에자이트 2010-12-17 17:15   좋아요 0 | URL
<역정> 이전에 <분단을 넘어서>가 있었죠.이야기가 많이 중복됩니다.<대화>에서도 나오는 이야기가 있지요.
일제시대사와 한국현대사 공부할 때 송건호 씨 책들을 봤죠.인지도에서는 리영희 씨보다 좀 떨어지지만 저는 송건호 쪽을 먼저 읽었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