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렵고 난해한 글이나 말로 사람들을 괴롭히는 이들이 있습니다.말과 글이 누군가와 소통하려는 도구가 아닌, 자기 지식을 과시하기 위해 사용될 때가 있습니다.그런 사람들이 싫고 그런 사람들이 쓴 번들번들한 글이 점점 싫어집니다.그냥 평범한 사람들이 다 알아먹을 수 있는 쉬운 말이 더 그립습니다. 

   꽤 오래전, 어떤 늙수구레한 아저씨들끼리 하는 이야기 중 지금도 기억하는 말이 있어요." 사람이란 어릴 땐 어른한테서 배우고, 나이를 먹으면 어린 사람한테 배우면서 사는 거여..." 전혀 어려운 말도 없고 지극히 옳은 말이지요. 그러면서 일생은 배우면서 사는 거라고...하지만 상당수 사람들은 어려선 어른 말을 안 듣고, 늙어선 젊은이 말을 안 들으면서 제 고집대로만 살다가 죽는 경우를 많이 보았습니다. 

  <모리와 함께 한 일요일>의 저자 미치 앨봄은 아이티에 구호활동하러 가서 만난 한 이이티 소년의 일화를 들려줍니다.재난을 당했는데도 소년은 늘 환한 얼굴이라서 앨봄이 왜 그리 행복해 하느냐고 물었습니다.그 소년 왈, "그래도 나는 살아있으니 고맙죠..." 앨봄은 그 소년이 자기에겐 스승과 같은 가르침을 주었다고 말했습니다. 

  어찌 보면 그런 어린 소년에게 배울 수 있는 마음을 가진 앨봄도 행복한 사람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누구에게도 배우려고 하지 않는 사람이 가장 불행한 사람이듯이.


댓글(12)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비로그인 2010-10-03 0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누구에게서든 배울 것이 있는 사람은...정말 행복한 사람이네요?!^^

노이에자이트 2010-10-03 21:00   좋아요 0 | URL
그렇겠지요.

카스피 2010-10-03 23: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노이에자이트님의 어려선 어른 말을 안 듣고, 늙어선 젊은이 말을 안 들으면서 제 고집대로만 살다가 죽는 경우를 많이 보았습니다라는 말이 가슴에 콕 와닿는 것 같네요.저 역시 그러 사람중의 하나더군요 ㅜ.ㅜ

노이에자이트 2010-10-04 13:04   좋아요 0 | URL
아이고 설마요...

쟈니 2010-10-05 11: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잘 아는 사람들은 쉽게 이야기하죠... 저도 그런 사람들이 부럽고, 그렇게 글을 쓰려고 노력합니다.. 누구에게서나 배울 수 있는 사람은 누구에게도 가르침을 줄 수 있을 거라 생각듭니다.

노이에자이트 2010-10-05 16:20   좋아요 0 | URL
그렇습니다.늘 남을 가르치려드는 사람일수록 자신은 남에게 배우려고 안 하는 법이죠.

순오기 2010-10-07 18: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수님도 누구나 알아듣는 쉬운 말로 복음을 전하셨는데, 우리나라 교회에선 너무 어려운 말로 전하지요.
어릴땐 어른의 말을 듣고 나이 먹어선 아이들의 말을 듣고... 새겨둡니다.

노이에자이트 2010-10-07 16:34   좋아요 0 | URL
아무래도 쉬우면서도 깊이 있는 전달을 한다는 게 쉽지가 않아서요...

흑해 2010-10-06 17: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저는 그 소년의 일화를 듣고서 당황했는데 다른 분들은 반응이 좋으시네요. 오히려 아이티에 재난이 없는 상황에서 소년이 행복함을 느꼈다면 모를까 소년 본인을 포함해서 수많은 아이티 사람들이 고통을 당하는 상황에서 저런 말을 하는 것을 과연 저자처럼 받아들여야 하는 건지?

저자의 의도는 그런 극한 상황에서도 삶의 긍정적인 면을 찾아내는 소년에게 감동받았다는 얘기이지만 저자와 소년 둘 다 사회적인 맥락보다 개인적인 맥락을 더 강조한 것은 아닐까요? 그것도 소년이 다른 사람의 죽음 또는 불행을 보면서 그렇게 말했다는 것까지 감안하면 전 마냥 좋게만 받아들일 수는 없더군요. 제가 너무 예민하게 반응했나요? 그런 상황이 아니었으면 저자의 말에 박수를 쳤을텐데 안타깝습니다.

흑해 2010-10-07 14:44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노이에자이트 님이 말씀하시는 핵심적인 얘기는 그게 아닌데 그냥 사례를 든 것을 가지고 꼬투리를 잡는 형국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저자가 말하는 대로 어떤 것을 이해해야 하는 건 아니니까 이런 식으로도 생각해 볼 수 있다고 봅니다.

다른 얘기지만 올해 노벨상은 시인 아도니스가 받았으면 하는 게 개인적인 바람입니다.

이름 2010-10-07 08: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소년이 살아났다는 사실에 행복한 심리적 반응을 보이는 것은 자연스럽다고 봅니다. 그렇지만 그런 소년에게서 무엇을 배웠다는 저자는 이상해요. 무엇을 배웠다는 겁니까?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고 우연에 의해서 살아났다는 사실이 행복하다는 것, 마찬가지의 우연으로 저자가 미국에서 태어나 재앙을 피해 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어 행복하다는 것? 이런 것은 배움의 대상이 아니지요. 나는 운이 좋구나 하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는 것이 배움이라니요. 마찬가지로 세대간 배운다는 것은 서로 존중하고 인격체로 대우하고 상호관계하는 가운데 죽는 날까지 서로 배우고 가르치고 가는 거가 맞겠지요. 나이든 사람이 엉텅이면 그들에게서 배우는 아이들이 엉터리가 되고 젊은이들이 엉터리면 나이든 사람들이 그들의 말을 들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비유는 맥락이 없으면 이처럼 논리를 벗어나기 때문에 항상 주의를 해야겠지요.

노이에자이트 2010-10-07 17: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치 앨봄에게 소년이 한 이야기는 그게 아닌데...흑해 님과 이름 님이 오해하는 것 같군요.소년은 지진에서 살아나서 다행이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아이티에 앨봄이 갔던 것은 지진이 난 뒤 한참 지나서고,그곳 어린이들이 절대빈곤 하에서 재난까지 당했는데도 늘 밝은 얼굴이라서 그 이유를 물어본 거예요.그러니 대답하기를 살아있다는 것 자체가 행복하다 그겁니다.지진으로 죽은 사람도 많은데 나는 살아서 다행이라는 이야기가 아니라는 거죠.가난한 나라 사람들이 행복하다고 말하는 비율이 높다는 일화와 비슷한 거라고 생각하면 됩니다.살아있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즐거우냐 그 이야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