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승은 순우리말이고 동물은 한자어라는 차이 외에 이 두 단어가 풍기는 느낌이 또 다릅니다."저는 동물을 좋아해요"와 "저는  짐승을 좋아해요"의 차이가 뭘까요.전자에 비해 후자는 왠지 나이먹은 사람들의 용법같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실제로 시골사람들은 "짐승을 이뻐라 한다"는 말을 할 때가 있습니다.그래서 요즘은 잘 안 쓰는 표현을 예로 들어서 짐승이란 단어가 들어가는 단어를 알리고자 합니다.

  저는 40년 전의 아주 오래된 번역서들을 읽는 묘한 취미가 있습니다.60년대나 70년대 초만 해도 지금보다 우리말의 순수함,토속성이 비교적 살아 있던 시대였고 이 당시 번역어들을 보면 우리말을 살리려는 노력이 지금보다 더 많은 느낌을 받습니다.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단어들입니다.포유류라는 한자어를  우리말로 젖빨이 짐승이라 했습니다.정확한 표현이지요.실제로 포유류가 무슨 뜻인지 한자를 하나 하나 지적하면서 설명할 수 있는 이는 드뭅니다.그런데 젖빨이 동물이라 하면 아주 정확히 뜻을 감지할 수 있지요. 

  그러면 조류는? 날짐승. 네발달린 동물은? 길짐승입니다.우리가 한자어로 야생동물이라고 뭉뚱그립니다만 이것도 사는 장소에 따라 산짐승,들짐승으로 구별합니다.단순히 짐승=동물이라고 아는 것보다 훨씬 더 자세히 알 수 있지요.그 중에서도 최고의 절정은 양서류의 순우리말입니다.양서류의 원래 뜻은 물과 육지 양쪽에서 살 수 있다는 뜻에서 양서류인데 이 단어의 순우리말이 물뭍짐승입니다.뭍이 육지의 순우리말이지요.이렇게 되니 동물들의 사는 모습까지 정확히 알 수 있습니다.저는 언어 민족주의에 반대하지만 이렇게 글의 의미 자체를 명확히 알 수 있는 장점이 있기 때문에 예스런 표현이 실용성에서 도움이 될 수도 있음을 소개하는 것입니다.

  어제 시골에 갔다 왔습니다.뒷산에 가니 예전에 비해 까투리(암꿩)가 많이 보입니다.이 친구들은 사람이 가까이 가면 풀섶에서 소리를 내며 하늘로 날아 오릅니다.아쉽게도 장끼(수꿩)를 보지는 못했습니다.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깃털을 가진 새 중의 하나인데 그 좋은 구경을 못했군요.한가지 재밌는 것은 꿩의 새끼를 꺼병이라고 한다는 것입니다.얼마전 고인이 된 길창덕 씨의 만화주인공 꺼벙이가 꺼병이와 관계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마을에 닿자 마자 입구의 동물농장에서 전에는 못들어본 소리가 납니다.아하...칠면조로군.그리고 바로 확인했습니다.저 집은 올해는 칠면조를 기르는 모양이로군...예전엔 거위 소리만 요란했지요.거위들은 낯선 사람을 보면 소리를 크게 질러서 주인이 밖을 내다보게 되지요.이제 그 농장은 칠면조 소리 때문에 거위 소리가 묻히게 생겼습니다. 

  저는 동물이나 새의 발자국만 보면 그  주인공을 알아맞히는 기술을 익히고 싶습니다.산속에서 식용식물과 독초를 구분하는 능력도 갖추고 싶구요.지금도 제 능력은 보통 도시사람보다는 훨씬 낫습니다만 이런 솜씨로는 아직까지 야생에 파묻혀 살았다는 그리즐리 아담스엔 훨씬 못미치지요.나이가 들면 산 모양만 보고 어떤 어떤 동물이 살고 어떤 식물이 있는지 단번에 맞힐 수 있는 달인이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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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0-05-09 17: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칠면조의 길고 쭈글쭈글한 목은 굉장히 징그럽죠. 거위는 상당히 호전적이고요.
가끔 다큐 보면 배설물이나 발자국 크기 같은 것으로 추리하는 걸 보면 재밌어요. 같은 지식을 갖고 누구는 밀렵을 하고 누구는 보호를 하는 걸 보면 선과 악의 대결을 보는 것 같기도 하고요.

노이에자이트 2010-05-09 18:01   좋아요 1 | URL
하하하...칠면조가 좀 요상하게 생기긴 했죠.거위는 낯선 사람 따라 다니면서 짖어대고...
제가 동물 발자국만 보고 알아맞히는 능력을 공부하려고 해요.어떤 사람은 개짖는 소리만 듣고 품종을 알아맞히더군요.밀렵꾼들에게 고용된 이들은 어느 골짜기를 먼 데서 바라보고 저기 멧돼지가 있다고 알아맞힌답니다.

쟈니 2010-05-09 2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물짐승.. 언젠가 친구랑, 바닷속 생물에 대해 '물고기'라고 말하는게 적당하지 않다는 이야기를 했어요. 왜 모두 '고기'라고 묶는지.. 이제 물짐승이란 말을 써야겠군요.

노이에자이트 2010-05-09 21:40   좋아요 0 | URL
물짐승이라...허허...또 새로운 것을 알게 되었군요.그런데 저는 물에서 사는 포유류라는 뜻으로 알았습니다.

blanca 2010-05-10 1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뭍불짐승^^;; 의외로 그런 표현들이 많이 죽었더라구요. 너나들이 이런 것도. 순우리말에 저도 관심이 많은데 활용을 잘 안하게 되더라구요. 저는 꽃이름 보고 다 대번에 맞추고 싶다는 욕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욕망만 가지고 있을뿐 실천은 없지요. 칠면조 소리는 어떨까. 궁금해지네요.

노이에자이트 2010-05-10 16:10   좋아요 0 | URL
뭍불짐승? 오타겠지요? 우리말 표현력을 높이기 위해선 아무래도 좀 오래된 한국단편을 읽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그렇다고 사람들이 안 쓰는 단어를 굳이 과시하듯 쓰는 것도 비호감이지요.여하튼 언어란 사람과 대화하는 도구니까요.

칠면조를 안 보신 분이 의외로 많나봐요.이상하게 생겼다고 하는 사람들도 많은데...소리가 좀 희한하지요.

2010-05-10 13: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5-10 16: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흑해 2010-05-10 14: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저는 그런 말들을 살리는 데 반대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장려하고 싶습니다. 다만 하나의 말을 살리면서 굳이 다른 말을 "삭제"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는가를 문제 삼고 싶습니다. 표준어 정책이나 방송국에서 강조하는 "바른 말 고운 말" 같은 것들도 문제가 많다고 봅니다.

그 "바른 말 고운 말"에 해당되지 않는 것들은 사라지는 게 마땅한 걸까요? 실용성의 차원을 강조하셨지만 중국의 소수민족으로 분류되는 사람들 중에는 한자보다 더 어렵고 불편하다고 간주되는 문자를 사용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노이에자이트 님이 더 자세히 아시겠지요.

그런 것들이 과연 사라져야 하는 걸까요? 전 세계에 존재했던 약 6800 개 언어 중에 절반 정도가 이미 사라졌거나 사라지고 있는 중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표준적인 것을 좋아하는 근대 사회의 찬란한 업적이지요. 그런 언어들(말이나 문자) 중에는 우리가 보기에 불편하거나 실용적이지 않은 것들이 많습니다.

언어라는 것은 그 나름의 고유한 역사와 문화가 담겨져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이 없어진다는 것은 하나의 세계가 없어지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실용적이지 않은 것은 없어지는 게 마땅하다는 생각이 팽배해지고 있는 요즘의 세상이지만 그 생각 자체가 이미 폭력적인 것이죠. "영어 광풍(狂風)"의 논리가 바로 그것입니다.

저는 흑해(黑海)를 "검은 바다"라고 쓰지 말자고 주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표현들을 모두 살리자는 견해를 취하고 있는 겁니다. 오히려 실용적인 태도가 아니라 사람들에게 불편함을 감수하면서 살아갈 것을 강조하고 있는 겁니다.

지금의 세태를 보면 이런 주장들이 먹혀들지 않을 거라는 건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실용성과 편리함을 추구하는 언어 태도가 수많은 언어들을 삭제시키고 있는 추세를 어떻게 막겠습니까? "잉글랜드 말"의 헤게모니나 표준어 중심의 헤게모니를 무너뜨리지 않는 한 불가능하겠죠.

순우리말의 "純"도 한자어입니다. 그리고 순수한 것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른바 "순우리말"이란 것도 어떤 "순수한 것"이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이데올로기의 일종이라고 생각합니다.

고유한 우리말(표준어만이 아니라 방언들까지)을 살리는 데 저는 찬성합니다. 하지만 되묻고 싶습니다. "순수한 말"이라는 게 과연 이 세상에 존재할까요? 고유하다는 것과 순수하다는 것은 서로 다른 표현입니다. 고유한 것은 존재하지만 순수한 것은 없습니다.

"순"우리말이라는 표현은 "순수한 것이 존재한다"는 사고방식이 작동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 말을 쓰는 분들이 일일이 따져가며 그 말을 쓰지는 않겠지요. 그러나 따지고 들어가면 그런 식으로 사람들이 생각하게 만들려고 만든 말입니다.

노이에자이트 2010-05-10 16:08   좋아요 0 | URL
저는 시골촌로들이 쓰는 일본어 흔적이 남은 단어들을 일제잔재니 뭐니 하면서 못쓰게 하는 것에 반대합니다.예를 들어 다라이를 굳이 양동이로 바꿔말해야 한다던가 그런 것입니다.
저는 실용성 외에 어휘력을 늘리기 위해서라도 한자어나 영어를 우리말 표현으로 바꾸어 보라는 권유를 많이 하는 편입니다.사실 일본인들이 서양의 근대과학 철학 용어를 원어 그대로 썼다면 얼마나 불편했겠습니까.외국의 문물을 수용할 때 거기에 맞는 번역어 하나를 선택하는 고심의 과정에서 문화도 발달하고 그런 것입니다.요즘은 번역어를 고안할 생각을 안 하고 원어를 그냥 쓰는 추세더군요.그게 사실 사고의 빈곤함을 드러내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