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초동학생들이 한자급수시험을 많이 준비하고 있습니다.영어도 벅찬데 한자까지 공부하는 처지가 안되어 보이긴 합니다만...요즘은 디지털 기기에 대해서 부모가 자식에게 배우는 시대라고 하는데 이러다간 한자도 자식들에게 배워야 하는 시대가 올지도 모르겠습니다.사실 요즘 초등학생의 부모세대는 한자문맹에 가까운 사람들이 거의 대부분이지요.
한자를 언제 배워야 하느냐 어느 수준까지 배워야 하느냐의 문제는 우리나라가 해방된 뒤부터 계속되는 논쟁입니다.어린이,청소년들 그리고 20대들까지 '나이가 지긋한 중년 이상들은 한자를 그래도 어느 정도 알고 있을 거야' 하고 생각하겠지만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지요.현재 50대 중반부터 말에 해당하는 사람들은 이른바 한자교육 사각지대에서 교육받은 세대입니다.60년대 말,북한과의 체제경쟁에 여념이 없던 시기,주체성을 강조한다면서 민족주의 사관이니 민족주체성이니 하면서 민족교육을 강조하던 때, 한자를 초중고교 교과서에서 싹 없애버린 시절이 몇 년간 있었습니다.이 시절엔 대학교육을 받은 사람이 거의 없었고 잘해야 고졸에서 끝난 시절이었지요.
이 당시 한자문맹이라는 말이 생기기 시작했는데 이들이 고교를 졸업하고 대학생이 된 1969년이 되니 한바탕 난리가 났습니다.나중에는 흔한 이야기가 되었습니다만 "대학생이 신문한자를 못읽는다.어거 어쩌면 좋으냐..."하는 기성세대의 한탄이 시작된 것입니다.그때도 대학생이 드물었는데 그보다 이전 시대에 고을 하나에 대학생 한 명 나오던 시절에 대학물을 먹은 사람들이 보기엔 대학생이 신문한자를 못 읽는다는 것은 정말로 통탄할 일이었는지도 모르지요.고교를 졸업하고 바로 직장에 뛰어든 이들도 서류를 못읽는 신입사원이 들어왔네 어쩌네...하는 선배직원들의 눈총이 따가왔습니다.
80년대가 되어 대학생 수가 좀 많아지기 시작하자(물론 지금보다는 훨씬 적은 비율임) 이때 쯤 되면 신문한자 못읽는 대학생 이야기는 이제 더 이상 신기한 이야기가 아니게 되었습니다.이 세대의 부모세대는 저학력층이 워낙 많아서 한자를 못읽고 그 자식세대는 이제 고학력이면서도 한자를 못읽는 세대가 되어버린 것입니다.그 사람들의 자식세대인 현재의 청소년은 이제 서서히 한자를 아는 세대가 생기기 시작하는 것이지요.한자급수를 높여야 하는 사교육 전성시대의 부산물이긴 하지만요.
제 나이 또래들 역시 한자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이 많습니다.제가 세로줄에 국한문 혼용으로 된 책을 읽는 것을 부러워하는 이들도 많지요.어떻게 하면 그런 책을 읽을 수 있느냐 한자를 잘알기 위한 좋은 교재가 없겠느냐고 문의해 오는 이들도 있습니다.제 대답은 글쎄요...입니다.제가 어려서 서당에 다닌 것도 아니고, 무슨 교재를 열심히 공부해서 한자를 익힌 것은 아니라서 추천해주기가 좀 그렇습니다.부족한 돈 사정도 있고 해서 대학생 때 삼성미술문고(미술서적 전문출판사가 아니라 일반 인문사회과학 서적을 많이 낸 문고판)나 박영문고를 많이 봤는데 이 책들이 국한문 혼용입니다.특히 삼성문고는 세로줄에 조사 빼곤 전부 한자였지요.그런 책을 읽기 위해서 늘 가방에 작은 옥편을 넣고 다니면서 모르는 한자를 찾다가 한자에 익숙해진 것이지 따로 시간을 내서 한자교재를 본 것은 없습니다.그 버릇 때문에 지금도 머리맡에 국어사전과 옥편을 몇 권 놓고 수시로 찾아보는 버릇이 생겼지요.
한자를 술술 읽는다거나 또 손글씨로 쑥쑥 써나가면 좀 멋있게 보이는 것도 사실입니다.한자 이야기만 나오면 정색하면서 "한자를 모르는 것들이 어따대고..."하는 투로 나오는 사람들도 있고 한겨레 신문이 한글 전용을 쓰니까 "좌빨들이 한자교육을 방해한다"고 하는 어이없는 주장을 하는 사람이 있지만 (실제로 김정강,조갑제 씨등은 그런 주장을 합니다)원래 한글전용을 처음 시도한 대통령은 박정희입니다.여하튼 저는 한자를 모를 수도 있지 않나 하면서 그다지 큰 문제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물론 동아시아 역사를 공부하려면 아무래도 한자는 필수적이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라면 굳이 전국민이 한자를 배워야 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어떤 지식이나 다 마찬가지겠지만 자기가 좀 안다고, 모르는 사람을 무시하면 그런 인간이야말로 비호감이 되는 것입니다.한자 좀 안다고 모르는 사람을 무안 주고 심지어 전통문화를 모르게 되니 애국심이 없다는 결론으로까지 나아가면 막가자는 것이지요.
물론 한자를 알면 편하긴 편합니다.주머니 사정 상 헌책방을 이용하는 편인데 허름하고 한자가 빽빽한 60년대의 학술서적도 읽을 수 있으니 좋지요.하지만 한자를 모르더라도 탄탄한 독서력을 갖춘 이들을 종종 보기 때문에 그런 사람들이 한자에 대해서 너무 강박관념을 가지지 않으면 좋겠습니다.물론 자식들이 한자학원에 다니면서 한자에 대해 질문하기 시작하니 어떻게 하든 체면이 안 깎일 정도의 실력은갖춰야 하지 않느냐 하는 생각을 가진다면 어쩔 수 없구요.
한자에 익숙해지기 위해서는 우선은 중고등학교 국어교과서에 실린 한자 정도(이것도 은근히 어려움)를 옥편에서 찾아보는 연습을 먼저 하는 게 좋겠습니다.옥편찾기가 어려워서 한자를 못찾겠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한자도 외국어라고 여기고 공부해야 한다면 한자사전인 옥편을 찾기 귀찮아 해서야 손 안대고 코 풀려고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지요.그러다가 호기심이 생기면 평소 사람들이 무심코 쓰는 단어에 대해서도 한자로는 어떻게 되어있나 호기심이 생기고 그러다 보면 흥미가 더 생겨 읽을 수 있는 한자도 늘어나게 됩니다.물론 이 모든 것도 어느 정도의 땀과 시간을 필요로 하는 것은 말할 나위가 없지요.
그리고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한자를 익혀서 좀 알게 되었다고 모르는 사람을 무안주거나 하지 마시길.어떻게 보면 한자를 아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남을 무시하고 무안주면서 쾌감을 느끼는 사디스트가 되지 않는 것입니다.그리고 저는 애초에 초등학생 영어교육도 그다지 찬성하는 편이 아니었습니다.초등학생 때부터 학원을 4개 5개 씩이나 다녀선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중고등학생도 마찬가지입니다.체육시간을 더 늘려 체력도 기르고 해야 합니다.한자교육도 그 다음 이야기라고 봅니다.
혹시 한자공부를 시작하셨다면 열심히 해서 목표한 만큼 달성하시고 한자 모르는 분들은 너무 신경 쓰지 말고 자기가 잘하는 것에 열중하면 됩니다.뭐든지 강박관념과 열등감은 건강까지 해치게 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