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에 일어난 폴란드 대통령 카친스키의 유고소식을 다루는 우리나라 외신들은 카틴 숲의 학살 사건을 위주로 폴란드의 비극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폴란드가 당했던 수난을 이야기하며 우리나라의 역사와 비슷하다는 소감을 밝히는 한국인들도 많이 있습니다.메이지 시대의 일본 지식인들은 유럽으로 유학가서 폴란드의 처지를 듣고 우는 사람이 많았다는 일화도 있습니다.카틴 숲에서 폴란드 장교들이 학살당한 1940년 봄은 독일과 소련이 불가침 조약을 맺고 있던 시절이었습니다(1941년 6월 이 조약을 깨고 독일이 소련을 침공하게 되지요).불가침 조약의 결과 1939년 9월 독일군은 폴란드를 침공하게 되고  2차 세계대전이 시작됩니다만 이때까지의 독일 폴란드 소련과의 얽히고 설킨 관계는 정말 어지러울 정도입니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폴란드는 독립을 하게 됩니다.100년 이상을 독일 러시아 오스트리아에 분할 당한 상태였던 폴란드로서는 새로운 출발을 하게 된 것이지요.하지만 억눌렸던 민족주의가 폭발하면서 폴란드는 패권주의의 방향으로 폭주하게 됩니다.오랫동안 폴란드는 발트해와 체코슬로바키아 그리고 서부 우크라이나와 서부 벨로루시는 자기 영토라고 주장해 왔고 이 곳을 점령할 기회를 노리고 있었던 것입니다.1차대전이 끝나고 기존의 세력권이 재편되면서 그 공백기간에 폴란드는 팽창의 기회를 잡게 됩니다. 

  1920년 5월 피우스드스키 장군이 지휘하는 폴란드군은 우크라이나로 진격하여 키예프를 점령합니다.폴란드로서는 제정러시아가 무너지고 새로 생긴 소비에트 러시아가 내전과 서방강대국의 간섭전쟁으로 정신이 없을 때 자신들의 영토적인 야심을 달성해 보겠다는 계획을 실천에 옮긴 것이지요.하지만 폴란드군은 우크라이나의 저항에 부딪혀 고전합니다.폴란드는 제정러시아와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제국의 지배를 받을 때에도 우크라이나 서부와 벨로루시 서부에서는 어느 정도의 자치를 누리며 지배자로 군림했는데 이때 폴란드 지주들이 특히 우크라이나의 소작인들에게 가혹하게 굴었고 그래서 우크라이나로서는 다시 폴란드의 지배하에 들어가서는 무슨 욕을 볼지 몰라 저항했던 것입니다.그틈을 타서 소비에트 군이 폴란드군을 밀어내기 시작했고 결국 6월에 폴란드군은 키예프에서 물러납니다.이후의 폴란드와 소비에트 러시아 간의 전쟁은 프랑스의 지원을 받은 폴란드에 유리하게 돌아가 폴란드는 리가조약으로 1921년 서부 우크라이나와 서부 벨로루시를 얻게 됩니다.물론 그곳 주민들의 의사는 전혀 물어보지 않았습니다. 

  이와 비슷한 시기인 1920년 10월.폴란드는 역사적으로 폴란드 영토라면서 발트해의 전략적 요충지인 리투아니아의 빌뉴스를 점령합니다.이로써 폴란드와 리투아니아의 오래된 갈등이 또다시 시작된 것이지요. 

  폴란드는  소비에트 러시아와의 전쟁으로 영웅이 된 피우스드스키 장군이 1926년에 지도자가 된 뒤로 철저한 반공국가로 사실상 유사 파시즘 체제를 수립합니다.피우스드스키는 폴란드 민족주의의 전통인 반러시아 정서를 이용하여 반소친독 외교를 펼칩니다.이 노선은 그가 죽은 뒤에도 계속되지요.나치독일의 힘을 빌려 중부유럽의 패권을 잡으려는 폴란드의 야심은 1938년 독일이 체코슬로바키아를 병합하자 절정에 달합니다.전통적으로 체코슬로바키아의 테센 지역을 탐내던 폴란드는 독일의 전리품 잔치에 끼어들어 체코 땅 일부를 탈취합니다.이 당시 폴란드의 약탈행위는 인근 유럽국가들에게 매우 안 좋은 인상을 주었습니다.그래서 "폴란드는 강대국의 지배를 받을 때는 용감하게 저항하지만 조금 여유가 생기면 안 좋은 모습을 보여준다"는 평가를 받게 됩니다. 

  이후 역사는 다 아는 바대로입니다.독일의 힘을 빌려 체코슬로바키아 나눠먹기에 끼여든 바로 이듬해 폴란드는 80만 대군이 별로 힘도 못써보고 독일의 기갑부대에 무너지고 맙니다.소련은 서부 우크라이나와 서부 벨로루시를 점령합니다.폴란드의 지배층은 런던에 망명정부를 꾸리지요.독일이 소련을 침공하자 망명정부는 폴란드군을 연합군의 일원으로 편입합니다.연합국의 수뇌부들도 아직 폴란드군이 필요하다고 여기고 있었기 때문에 소련과 이라크에서 폴란드군을 주둔하게 하지요.하지만 런던망명정부는 전통적인 폴란드 우익이었기 때문에 영토적 야심은 여전해서 소련과의 협조는 매끄럽지 못했습니다.결국 폴란드군은 이라크의 키루크크 모술 지역에 대규모로 주둔하게 됩니다.폴란드군은 연합군 중에서도 소련 미국 중국 영국 다음으로 많은 숫자였고 특히 이탈리아 전선에서 매우 인상적인 전투를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대독항전 중에 런던 망명정부와는 별도로 폴란드 좌익들이 결성되어 폴란드 내에서 빨치산 활동을 하게 됩니다.이들은 여러 모로 런던망명정부와 갈등하게 되지요.망명정부는 이 시기에도 여전히 중부유럽의 강대국이 되어야 한다는 야심을 버리지 않고 서부 우크라이나,서부 벨로루시,체코 일부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합니다.역시 같은 망명정부 처지였던 체코슬로바키아인들과도 갈등하게 됩니다.  

   런던 망명정부는 독일이 소련과의 전쟁에서 패색이 짙어지자 전쟁이후를 생각하여 폴란드 국내에서 대규모 항전을 계획합니다.대한민국 임시정부가 계획했던 국내진공작전같은 것입니다.폴란드 국내의 세력들과 연락한 끝에 1944년 8월부터 독일군에 대한 대대적인 게릴라 공세를 펼치기 시작합니다.그 유명한 바르샤바 봉기입니다.하지만 이 당시 독일군은 아직 여력이 있어서 폴란드로 진격하는 소련군을 막아낸 뒤 봉기군에게 무자비한 진압을 시작합니다.이 당시 독일의 압도적인 무력에 용감히 맞서 싸우던 폴란드인은 많은 찬탄을 받지만 결국 독일군에 항복하고 맙니다. 

  바르샤바 봉기는 소련군의 영향이 폴란드에 미치기 전에 미리 선수를 쳐야겠다는 폴란드 망명정부의 계산이 있었지만 시기상 아주 좋지 않았습니다.독일은 아직 그 정도 봉기는 진압할 힘은 있었던 것이지요.게다가 소련은 비스툴라 강 전투에서 고전하다가 겨우 독일군을 물리치는데 이때 소련 수상 스탈린은  영국의 비행기가 바르샤바 봉기군에게 물자를 제공하지 못하게  활주로 이용을 못하게 해버립니다.이 일로 폴란드인들의 대 러시아 감정은 또다시 부글부글 끓어오르게 됩니다. 

  이제 폴란드는 리투아니아,서부 우크라이나,서부 벨로루시,체코의 테센 지역을 다시 무력으로 탈취한다거나 하는 생각을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하지만 위에서 언급한 대로 폴란드의 민족주의를 보면 강대국에 저항한다는 명분으로 내세우는 저항적 민족주의가 언제든지 패권주의로 변할 수도 있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폴란드 사를 전공하는 한양대 교수 임지현이 민족주의에 대해서 그 위험성을 강조하는 것도 어찌보면 이해할 수 있습니다.

   내 나라의 역사를 깊이 알기 위해서라도 외국의 역사를 알아야 하며 외국의 역사를 깊이 알기 위해서라도 내 나라의 역사를 알아야 합니다.폴란드의 역사를 알기 전에는 저 역시 막연히 약소국 폴란드...하는 식의 고정관념만 갖고 있었습니다.하지만 좀 더 깊이 들어가니 더 중요한 것을 배우게 되었습니다.그래서 부족한 지식이나마 여기에 밝혀 공유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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率路 2010-04-15 0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그저 강대국 사이에 끼여서 사연많은(?)역사를 지닌 나라정도로만 생각했는데, 은근 드라마틱하네요. 아일랜드의 사례도 그렇고, 식민지배를 받은 나라에서 좌파의 입지란 어떠해야하고 어떠할 수 있는지도 조금 생각이 들고. 하여간 복잡하네요-_-;;;

노이에자이트 2010-04-15 16:31   좋아요 0 | URL
2차대전 때 런던의 폴란드 망명정부와 폴란드 국내 좌파 항독단체들 간의 마찰도 읽다 보면 복잡해서 정신이 오락가락할 정도입니다.

쟈니 2010-04-15 1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겉으로 보여지고, 언론에서 다뤄지는 것과 역사와는 다른점이 많군요.. 저는 이번 폴란드 대통령이 매우 보수적인 성향이라는 것 정도, 친미적 성향 정도로만 알고 있었습니다.

노이에자이트 2010-04-15 16:31   좋아요 0 | URL
폴란드 공산정권 말기의 자유노조운동에도 여러가지 복잡한 사연이 많지요.카친스키도 자유노조 출신입니다.

비로그인 2010-04-16 0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약자라고 선은 아니네요. 누구든지 숨겨둔 발톱이 있는 것 처럼요.

노이에자이트 2010-04-16 16:10   좋아요 0 | URL
정확한 지적입니다.국가가 아니고 개인들 간에는 더 뼈저리게 느끼는 사실이죠.사회적 약자가 개인적으로는 아주 악인인 경우가 있습니다.

흑해 2010-04-16 17: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저는 민족주의 자체가 이미 패권주의의 형태를 띠고 있다고 봅니다. 흔히 얘기하듯이 내부적으로는 차이를 억압하면서 구성원들을 동질화시키고 외부에 대해서는 배타적이죠. 그거 자체가 식민주의의 파생물이라는 주장도 있구요. 어쨌든 사실상 종교나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합니다.

노이에자이트 님에게는 많은 것을 배우고 그 식견에 항상 감탄하게 됩니다만 제가 보기에 임지현은 민족주의를 비판하면서 동시에 변형된 형태의 "민족주의"나 "국가주의"라는 상상을 사람들에게 불어넣고 있는 게 아닌지 의심스럽습니다.

왜냐하면 민족주의를 비판하면서도 폴란드 "국가의 역사"를 얘기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부정적으로 얘기하는 것뿐이지 결국은 "국가의 역사"가 아니냐는 거죠. 변경사를 얘기해도 그렇고 "동아시아"를 얘기하는 경우도 그렇습니다.

제가 보기에 동아시아론 같은 것들은 확장된 형태의 "국가 개념"이고 변경을 얘기하면서도 여전히 국가라는 상상이 출현한다고 할까요? "국사의 해체"를 주장하기도 했습니다만 국가권력이 엄연히 작동하고 있다고 본다면 좀 엉뚱하기까지 합니다. 그게 가능하려면 현실에서 작동하는 국가권력을 무너뜨려야 하지 않나요?

국가라는 상상이 작동하지 않는 방식으로 담론을 전개하거나 그게 안 된다면 "국가"라는 개념 자체를 집요하게 물고 늘어져서 거기에 균열을 내는 방식을 취하든가 해야 할 거 같은데
그냥 다소 변형된 형태로 "국가"를 중심에 두고 얘기한다고 할까요.

사회적 약자가 개인적으로 악인이라... 저도 그다지 선인 같지는 않은데... 제가 노이에자이트 님에게 악인으로 평가받지 않기를 희망합니다.~~

노이에자이트 2010-04-16 17:51   좋아요 0 | URL
임지현에 대해서 좀 더 공부해보겠습니다.변경사에 대해서는 임지현의 특징이 잘 나타난다고 해서 흡수해보려고 합니다.다른 이론가들의 글도 더 읽어야겠지요.

저는 선인입니다.흑해 님도 현재까지는 악인이라는 증거는 없습니다.안심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