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역사박물관 건립을 둘러싸고 건립추진위 측과 광복회 측이 또 갈등을 빚었습니다.건국한 해가 1919년 임정수립 때냐, 1948년 대한민국 정부수립 때냐 하는 문제지요.이제 이 문제는 잠잠해질 줄 알았는데 또 벌어졌습니다.이번에도 양측이 대충 수습하는 것 같습니다만 언제 또 터질지 모르겠군요.여하튼 이런 일은 참 이상합니다.원래 임정을 찬양하는 것은 보수세력이 먼저였거든요.임정연구로 유명한 이현희는 이승만과 박정희를 호의적으로 평한 전기를 쓰기도 한 인물입니다.예전 군사정권 때도 자신들의 정권의 정통성을 임정에서 끌어온 정도입니다. 

  현정부의 임정 폄하가 논란의 중심에 서 있습니다만 1980년대 민중사학이 한참 위력을 떨치기 시작해 90년대까지만 해도 임정이 독립운동에 끼친 정도에 대해서는 그다지 높게 보지 않았던 분위기가 강했습니다.아무래도 민중이 강조되다 보니 사회주의 운동사를 더 비중있게 취급했지요.임정의 광복군에 대해서도 그게 무슨 군대냐 하는 식의 비아냥도 많았습니다.그러다면 사회주의 운동세력 중 어느 쪽을 정통으로 보느냐 하는 문제는 굉장히 민감하지요.남로당이냐 북로당이냐 어디를 정통으로 보느냐 하는 겁니다.녹색평론에 실은 작가 김성동의 글에는 광복군은 중요하지 않았다,진짜 독립운동의 전통은 조선공산당-남로당이라고 솔직히 지적하는 내용이 있지요. 

  요즘엔 예전과 다르게 보수진영 일부가 건국60주년 행사를 하면서 임정을 폄하하고 있습니다만 사회주의  운동을 정통으로 보는 사람들 역시  임정폄하를 했다는 데에 이르러서는 묘한 생각이 듭니다.그런데 현 정부를 비판하면서 정부수립이지,건국은 아니라는 논리를 세우는 것도 이상합니다.애초에 이 건국이나 정부수립은 그냥 구분하지 않고 쓴 단어들입니다.이번 정권이 들어서면서부터 건국이 1919년이냐 1948년이냐 정색하고 티격태격했지,예전에는 건국하면 다 1948년 정부수립을 가리켰습니다.건국 60주년 기념행사를 주도했던 측이 말했듯 김대중 정부 때도 건국이라는 말을 썼습니다.외환위기 직후의 경제살리기 운동 때 '제 2의 건국'이라는 표현을 썼고 그때의 건국은 1948년의 정부수립을 가리켰습니다. 

   저는 지금도 건국이래 처음이오,하는 농담을 합니다.이것 역시 1948년을 가리키는 것이지 1919년을 가리키는 게 아닙니다.만약 건국기점은 1919년으로 잡은 것입니까? 하고 누가 정색하고 묻는다면 "아따.그 냥반 되게 따지는구만" 할 것입니다.그만큼 큰  쟁점사항이 안되었다는 겁니다.이번 친일파 인명사전 편찬에도 자문했던 동국대 교수 한상범의 1980년대 글에도 건국 이래...라는 말이 나오는데 역시 정부수립 이후라는 뜻입니다.또 박정희-김대중 후보가 맞붙었던 1971년 대선 때 박정희 후보를 아부하던 모모 인사에 대해 당시 김대중 후보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저 양반은 이승만 박사에겐 건국이래 영웅이라고 하더니,박정희 씨(당시엔 '씨'라는 호칭이 지금보다 더 높임말이었음)가 대통령이 되니 단국이래 영웅이라 하더라.내가 대통령이 되면 천지개벽 이래 영웅이라 할 것인가?"  여기서 말하는 건국도 정부수립을 말하는 것입니다.

   여하튼 그리 큰 구분 않고 쓰던 용어가 2008년부터 이상한 쟁점이 되어버렸습니다.그런데 인터넷상에서 이런 건국이냐 정부수립이냐 논란에 대한 기사를 보면 그 댓글에서 잘못된 고정관념이 많이 퍼진 것을 보게 됩니다.특히 독립운동사와 해방정국의 역사에 대해 잘 모르는 이들, 그중에서도 얼치기 진보라고나 해야 할까요,그런 부류는 이승만과 김구가 완전히 대립되는 인물이라고 생각하고 글을 쓰는 이들이 참 많더군요.이들이 내세우는 도식은 김구=임정,이승만=친미주의 입니다. 

    임정은 상해임정 시절보다 중경임정(중경임정은 뭐냐고 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음.일본이 본격적으로 만주를 넘어 중국본토로 잠식해 들어오자  임시정부를, 상해에서 내륙의 사천성 중경으로 옮겼음)때 대외적으로 더 많이 알려졌습니다.태평양 전쟁이 발발하자 임시정부 지도자들은 중경에 있는 김구 외에 이승만이 미국 쪽에서 임정의 이름을 걸고,미국조야에서 임정승인운동을 합니다.중국에서는 조소앙이 중경주재 미국대사 등을 만나서 운동을 하지요.이승만은 미국인사들과 접촉해서 광복군 지원운동을 해달라고 하기도 합니다.현대사를 좀 자세히 가르치는 선생님을 만났다면 고교시절 "미국 OSS(CIA의 전신)가 광복군을 훈련했다" 운운하는 내용을 들었을텐데 이승만이 접촉했던 OSS측 인사가 굿펠로이고 굿펠로와는 해방 이후에도 관련을 맺지요.이승만과 김구는 반탁운동에도 손을 잡았고 심지어 김규식-여운형이 좌우합작운동을 하던 중에도 이승만-김구 제휴는 계속 이어졌습니다.1947년 말 장덕수가 암살당하면서 결별하기 전까지 둘의 제휴는 어어진 것입니다. 

   재밌는 것은 태평양 전쟁 당시 미국 루스벨트 행정부의 인사들이 한국의 독립운동에 대해 쓴 보고서 같은 걸 보면 "파벌이 심하고 서로 자기가 진짜 대표라고 한다.중경의 임정도 그 무장세력은 보잘 것 없다"고 되어 있습니다.이렇게 보면 임정의 실력을 별볼일 없다고 평하는 이는 사회주의 세력 외에 미국을 비롯한 연합국측이 됩니다.연합국 측의 이런 논리는 "이렇게 한국을 대표하는 정치세력이 없으니 전쟁이 끝나면 불가피하게 연합국이 공동으로 한국을 당분간 관리하지 않으면 대단한 혼란이 올 것이다"로 귀결됩니다.그 산물이 신탁통치지요. 

   역사논쟁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논쟁을 하고 있는 시기가 언제인지 아는 것도 대단히 중요합니다.한때는 쟁점이 안되는 것도 다른 시기엔 민감한 문제로 변하기도 합니다.시기에 따라 어느 인물이나 정파에 대한 평가가 달라지기도 합니다.위에 예를 든 것처럼 1980~90년대엔 임정을 둘러싼 쟁점이 지금과는 많이 달랐지요.그떄는 민중을 중시하는 이들이 임정을 저평가했습니다.오히려 체제 측이 임정의 법통에 매달렸지요.요즘과는 분위기가 달랐던 것입니다.2008년의 건국기점 논란에서 가장 마음이 불편했던 이들 중 한명이 보훈처장 김양(백범 김구의 손자)이었을 겁니다.2009년에는 좀 잠잠했다 싶었는데 올해 초 역사박물관 건립을 추진하는 인사들이 또 이렇게 나오니 지금도 마음이 좀 그렇겠지요.하기야 아버지인 김신(김구의 아들)도 박정희 시절, 장관도 하고 대만 (당시는 장개석 총통시대로 자유중국이라 했음)대사도 지냈으니 특별히 새삼스런 것도 없겠지만요.


댓글(6) 먼댓글(0) 좋아요(2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스트레인지러브 2010-03-21 2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떤 편에도 치우치려고 하지 않고 쓰신 좋은 글 감사합니다
요새 임정 같은 데 좀 관심 있다는 사람들은 이승만과 김구를 완전 대립되는 주체로 간주하던데... 이승만은 친일파 득세를 방조한 숭미주의자고 김구는 "민족영웅"이란 해방 후 이미지(와 요즘 세대 사이에 퍼진 이미지)에서 소급, 이승만은 임정 팽개쳐놓고 미국에만 붙어산 작자고 김구가 힘들게 임정 이끌었다. 고 하던 것 같은데,
이걸보니 "꼭 그런 건" 아니네요. 그리고, 정말 영원한 쟁점이 없네요. 과거에는 우파진영이 임정 떠받들고 좌파진영이 반박했다면, 이제는 건국절 이슈로 인해서 우파가 임정 폄하하고 좌파가 임정을 떠받드는군요...
우파가 대한민국 건국주체인 이승만 띄우기 시도하니까 좌파진영에서는 "논란의 여지가 없는 독립영웅"인 김구 선생을 옹호해서 맞서고(그닥 김구선생도 좌파는 아닌데), 시기에 따라 어느 인물이나 정파에 대한 평가가 참 극심하게 달라지는 건 확실한 거 같네요.

노이에자이트 2010-03-21 22:17   좋아요 0 | URL
30~40년 전 책들도 꽤 있기 때문에 당시 쟁점과 지금 쟁점을 비교해 보면 재미있는 점이 많이 있습니다.지금도 우파 내에서 임정을 원래 떠받들던 사람들은 광복절이 아니라 건국절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보고 좀 이상한 감이 들기도 할 겁니다.

당파성을 지나치게 앞세우면 아전인수 격인 해석을 하기 쉽기 때문에 그럴 때는 좀 거리를 두고 예전에는 어떤 주장이 있었나 살피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흑해 2010-03-22 12: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실제로 일어나지 않았던 일이기는 합니다만 김구가 이승만을 암살하는 식으로 사태가 전개될 수도 있지 않았나요? 누가 선제공격을 하느냐의 문제가 아닐지? 어떻게 보면 여운형의 이름이 들어가야 할 대목에서 김구가 삽입되는 느낌도 듭니다.

다른 질문이기는 합니다만 그런 식으로 "정통"을 따지는 게 의미가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어떤 것을 "정통"으로 삼는 것은 다른 것을 "이단"으로 간주하겠다는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혼자서 "정통"이 될 수 있나요? 최고가 있다는 것은 최악이 있다는 의미 아니겠습니까? 사회주의가 아닌 것은 가치가 없다라는 식으로 논의가 전개되는 것도 문제는 있습니다. 그런 것보다는 각각의 차이들을 따져보는 게 좋겠죠. 그것을 진리라고 주장하면서 어떤 이익을 얻으려고 하는지도 아울러 가늠해 봐야 겠죠.

김구와 이승만의 대립구도를 받아들이는 것 자체가 이미 누군가에게 말려 들어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어느 쪽을 강조하든지 국가주의 안으로 쏠려들어가는 게 아닌지요. 게임의 규칙을 정할 수 있는 권리를 박탈당하는 느낌이랄까요? 요즘의 한국사는 점점 "행정국가"의 역사를 다루는 듯한 경향이 강해지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 것을 보면 역사학의 경계지점에서 다른 학문과 접촉해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역사학은 결국에는 서로 다른 세력들이 힘겨루기를 하는 "운동장" 같은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어떤 사회집단이 과거를 언어로 재구성해서 다른 사회집단에게 그것을 "진리"로 믿도록 강요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입니다. 꼭 한반도만이 아니라 세계 전체가 그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히틀러는 합법적이지 않았다라? 하긴 그런 사실적 근거도 있는 것처럼 보이긴 해요. 하지만 합법적으로도 얼마든지 독재를 할 수 있지 않나요? 종교개혁 얘기만 하면 나오곤 하는 주네브의 칼뱅 같은 사람을 비롯해서 조사해 보면 많지 않나요. 합법성의 함정이라는 게 있다고 봅니다.

김구 대 이승만 보다는 "토마스 뮌처 VS 마르틴 루터"가 역사의 라이벌로 더 어울리지 않나요? 서로 출발점은 같았지만 "농민을 목매달아 죽이라는" 루터와 농민들의 편에 서서 결국은 죽음을 맞이 했던 토마스 뮌처가 역사의 라이벌로는 더 어울립니다. 누가 역사의 승자이며 누가 배제된 사람인지가 뚜렷해서 나름대로 흥미로운 구도라고 생각합니다.

좋은 말씀 잘 들었습니다. 제 생각이 어떻든 앞으로도 많은 가르침을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노이에자이트 2010-03-23 17:28   좋아요 0 | URL
정통 이단을 따지다가 피바람을 불러온 인류역사지만 그 버릇을 못고친 사람이 많지요.

마루야마 마사오는 히틀러가 합법적으로 집권했다는 주장을 하는 사람이 하도 많아서 역사적 사실을 알려야겠다는 생각으로 각주처리로 그 문제를 다뤘습니다.

역사의 라이벌 류의 저술들이 많지요.흥미진진해서 대중들의 취향에도 맞고...우리나라에도 한국신학연구소에서 뮌처의 전기가 번역되었을 겁니다.

제 글에서 도움을 얻었다니 기쁩니다.

Tomek 2010-03-23 09: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진경 씨가 쓴 『역사의 공간』이 떠오르네요. 정말로 공인된 역사란 존재할 수 없고, 누가 권력을 쥐느냐에 따라 역사의 줄기가 바뀐다는 말. 그렇기때문에 역사에서 사라진, 소수의 역사를 새로 편찬해야한다는 말이 떠올랐습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

노이에자이트 2010-03-23 17:31   좋아요 0 | URL
이진경의 그 책에선 왜구에 한국인도 있었다고 나오던데 오늘 끝난 한일 공동역사 연구위원회는 그런 일 없다고 합의를 봤다네요.

에드워드 카는 역사책을 읽을 때 저자는 물론 그 책을 쓴 때도 눈여겨 보라고 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