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역사비평 2002년 여름호에 실린 김민철 시론 '지금 친일파 청산을 거론하는 이유'의 마지막 부분을 인용한 것입니다.필자는 당시 '친일인명사전 편찬위원회'의 편찬위원이었습니다. 

----최근 몇 년간 이승만 흉상 건립과 김활란상 제정,홍난파 기념관,이은상 문학관 건립,그리고 박정희 기념관 건립 등을 둘러싼 대립과 논쟁에 직접,간접으로 개입하면서 나는 심한 절망감을 느꼈다.그것은 기념관을 추진하는 사람들의 의식이었다.그들은 과거의 잘못된 행위에 대해 아무런 문제의식을 느끼지 않았다.어쩔 수 없었다는 상황론이 아니라 그것을 왜 문제삼아야 하는지에 대한 의식조차 없었다.죄에 대한 부정이 강자의 논리와 결합됨으로써 마침내 죄 자체에 대한 부재의식으로까지 발전한 것이었다.그리고 이것은 알게 모르게 대중의 일상의식까지 병들게 만들었다. 

----일본의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이 주장하는 논리와 역사인식이 우리를 분노케 한다.그러나 이러한 인식은 결코 그들만의 것이 아니다.껍데기만 다를 뿐,우리 역시 같은 의식 속에 있다.비록 제한적이나마 한국 대통령이 베트남 전쟁 개입을 사죄했을 때 한나라당과 박근혜 의원은 "참전군인의 명예를 욕되게 하지 말라"고 비난했다.이것은 1995년 일본우익이 패전 50주년을 맞이하여 식민지지배와 침략전쟁을 사죄하려 했던 무라야마 총리에게 던진 비난과 똑같다.여기에 대해 한국지식계는 침묵하고 있다. 

----친일파 문제가 무엇이 잘못되었나를 기록하고 기억하게 하는 것은 역사의 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과제로서뿐만 아니라 죄에 대한 책임을 되새기게 한다는 점에서 현재적 의의가 있다.

#### 이 글이 씌어진 김대중 정부 마지막해에서 7년이 지난 지금 형편은 어느 정도 나아졌는지 물어보면 글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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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혼 2009-11-11 18: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중의 일상의식까지 병들게" 된 사례는 이 사회 곳곳에서 목격되는 것 같습니다. 만약 그러한 '질병'이 없었다면, 드물지 않게 보게 되는 저 무슨무슨 전우회나 해병대들의 '수치심 모르는' 집회들이 계속 이어지진 않았겠죠. 덧붙여 제국주의와 똑같은 논리가 피식민지인들의 일상의식 안에서도 반복되고 있다는 주장은 그 자체로 정당하지만, 그러한 '반복'과 더불어 '차이'를 말하자면, 저는 소위 한국의 '우파적 대중'에게는 자신을 '피해자'로 인식하지 않으려는 강한 무의식적 의지가 작용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는 말하자면 니체가 말했던 노예의 도덕과는 정반대의 심리적 기제일지도 모르는데(또는 같은 의미에서 어쩌면 그러한 노예의 도덕의 가장 강력한 판본일지도 모르는데), 그들의 긍지와 자부심 안에 숨겨진 '피해자-자기의식'에 대한 병적일 정도로 집요한 거부와 회피를 살펴보면, 그것이 특히 '피식민지인들의 제국주의'라는 모순형용을 파악하는 데 있어 하나의 기준점을 제공해줄 수도 있을 거란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피해자이며 피해자일 수 있다는 사실과 가능성 자체에 대해 "죄 자체에 대한 부재의식"과 맞먹을 만한 무시와 거부로 일관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전쟁과 제국주의의 가장 큰 피해자들 중의 하나인 참전군인들이 무슨무슨 전우회라는 이름으로 자신들의 '긍지'를 과시하는 집회가 이에 관한 대표적인 사례일 수 있겠죠. 지금 형편은 얼마나 나아졌는가, 이 질문에 관해서는 모두들 '글쎄요...'라는 의문을 남기겠지만, 사실 나아질 '형편'이라는 게 과연 있는 것인지에 대해서도 의문이 듭니다.

노이에자이트 2009-11-11 22:03   좋아요 0 | URL
외국에는 참전군인들이 중심이 된 반전평화단체도 있다고 들었습니다만 우리나라는 그런 점에서 좀 아쉽지요.

왜 자신들이 전장에 나가서 그 고생을 하게 되었는가에 대한 인식이 없기 때문에 엉뚱한 사람들에게 화폴이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고엽제 제조사나 당시의 집권자보다 시민단체를 더 미워하는 따위의 사고방식도 이상하지요.

군자란 2009-11-12 15:06   좋아요 0 | URL
대중의 일상의식까지 병들게 된 사례로 해병대 전우회에 많은 동감을 합니다. 김포에서 제대한지 벌써 20여년이 넘어가지만 창피한게 한 두가지가 아닙니다.

노이에자이트 2009-11-12 15:07   좋아요 0 | URL
참으로 착잡한 일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