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정효는 콩글리시와 엉터리 번역의 사례집인 <가짜 영어 사전>이라는 기발한 제목의 책을 쓴 적이 있습니다.거기에는 특히 국제경기에서 한국선수들이 주먹을 불끈 쥐고 파이팅! 하고 외치는 것을 못하게 한 어느 외국인 심판 이야기가 있습니다.탁구 경기인데 그런 모습을 보이는 것이 신사답지 않다는 것이지요.경기하다가 주먹질이라도 하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였다는 겁니다.그러면서 안정효는 우리 가족 파이팅! 우리 부모 파이팅! 하는 것은 가족끼리 치고 박고 싸우자는 뜻이냐고 꼬집기도 했습니다. 

 사실은 Fight에는 동사용법,명사용법이 다 있습니다.그러니 따로 fighting이라고 할 필요가 없습니다.일본인들은 발음은 어색하지만 화이토! 하는데 이것이 더 맞습니다.물론 되도록이면 안 쓰는 것이 좋겠지요. 격투종목에 쓰면 되지만 그 외에 쓰면 좀 호전적인 느낌이 납니다.영어권에서는 힘내라고 격려할 때는 go go go! 라고 한답니다.그런데 우리나라도 예전에는 fighting이라는 말을 쓰기 전에는 우리말 표현이 있었을텐데 통 생각이 나지 않는군요.일단 꼬부랑말이나 어려운 한자말이 들어오면 기존의 우리말 표현을 잊게 된다는 이오덕의 주장은 사실 같습니다. 

  우리나라 사람은 f발음과 h발음을 구별하기가 힘듭니다.최근 파이팅이란 표기 대신 화이팅이라고 표기하기도 하더군요.점점 이상한 표기가 늘어난다고나 할까요.whiting을 발음하면 그렇게 되는데 이것은 영어권의 이름 중 하나입니다.아마 영화<로미오와 줄리엣>에서 로미오 역을 한 배우 이름을 기억할 것입니다.레오나드 화이팅이 바로 그 이름이지요.그런데 또 보통명사로는 생선의 한 종류를 이르기도 합니다.화이팅! 하고 소리치면 "생선을 먹고 싶은가보다...경기장에서까지..."하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안정효에 따르면 한때 우리나라 체육계 인사 일부 사이에서 "관중들이 파이팅이라고 외치거나 특히 선수들이 주먹을 불끈 쥐고 파이팅! 하는 짓을 못하게 해야 한다"는 말도 나왔다고 합니다.전세계인이 보는 경기에서 우리나라 사람을 호전적으로 보이게 할 수 있다는 염려때문이지요.하지만 이제 순 토박이 우리말만 구사할 것 같은 시골의 80노인도 파이팅! 이라고 하는 걸 보면 완전히 뿌리가 깊이 내린 표현이 된 것 같습니다. 

 "저는 김태희 팬이에요"할 때는 fan입니다.어떤 영어 선생님이 "선풍기 날개 같은 것도 fan이라고 한다"고 일러준 것이 기억납니다.하지만 프라이 팬이라고 할 때는 pan이 맞습니다.커피 포트엔 pot라고 쓰지요.재밌는 것은 우리는 '팬 레터'라고 하는데 영어권에서는 fan mail이라는 단어를 더 많이 쓴다는 것이지요. 

  '스프링'의 철자는 spring이라는  것을 틀리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만, '용수철'이라는 뜻 이외에 '샘'의 뜻이 있기 때문에 일어나는 연상작용이 문제를 일으킵니다.'스프링 쿨러'라고 쓰거나 발음하는 사람이 많더군요.아마 spring과 cooler의 합성어라고 생각하는 모양입니다.물이 시원하게 뿜어져 나오는 것을 생각하면 이런 단어라고 상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지요.하지만 외래어 표기법은 '스프링클러'입니다.영어 철자는 동사 sprinkle에서 나온 명사형 springkler지요.cool과는 무관한 철자!  

 머리맡에 국어사전, 옥편 외에 외국어 사전을 갖다놓고 수시로 찾다 보면 재미있는 단어나 그 용법이 의외로 많더군요.순우리말 단어에도 희한한 표현이 많습니다.인터넷과 달리 종이사전은 그냥 펼쳐볼 수 있어서 편하고 좋습니다.조금 의심나면 바로 찾아서 확인하는 버릇을 들이는 게 올바른 언어생활을 하는 데도 좋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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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09-09-23 19: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은 외래어나 외국어의 정확한 뜻보다는 그나라 발음을 제대로 하는가를 더 중요시하기 때문에 올바른 언어생활을 위해 사전을 펼쳐보실분이 얼마 안계실것 같네요 ^^;;;

노이에자이트 2009-09-23 22:22   좋아요 0 | URL
아하...그런 풍조가 있나요? 쯧쯧쯧...

비로그인 2009-09-24 0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어렸을 때 길에서 대사전을 100원에 팔고 그러던 때 하나 샀는데 100원인 이유가 있더군요. ㄱㄴㄷ 순서도 안맞고 편집 자체가 불량이더군요. 그래도 아직 갖고 있죠.

노이에자이트 2009-09-24 15:57   좋아요 0 | URL
페이지 순서 안 맞는 책은 정말 골치...게다가 사전이 그러면 정말 짜증나겠네요.

후애(厚愛) 2009-09-24 07: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년전에 큰 조카 영어 선생님이 기간을 삼일 줄테니 전자사전 가지고 오라고 해서 난리가 났어요. 형편이 안 좋은 학생들은 어떡하라고 그러는지..
안 가지고 온 학생들은 벌 받았다고 하더군요.

카스피 2009-09-24 14:03   좋아요 0 | URL
아니 어떤 영어선생이 고따위 말을 한답니까? 당장 교육청에 전화 한통화 때리세요^^

노이에자이트 2009-09-24 15:59   좋아요 0 | URL
여하튼 돈없으면 슬퍼요...특히 학교에서...옛날에는 월사금 못낸다고 담임선생한테 망신당하고 집으로 돌려보내고...여하튼 돈 없으면 멸시받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변한 게 없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