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내전을 어떤 각도에서 공부하느냐에 따라 다양한 공부를 할 수 있습니다.가장 일반적이고 널리 알려진 것은 민주주의와 파시즘의 대립이란 시각이 있습니다.이 대립 속에 또다른 대립이 있습니다.내전 속의 내전이라고 해야 할까요.아나키스트,스탈리니스트,트로츠키스트의 대결이 있었고 특히 스탈린이 보냈던 감시인들은 프랑코 파보다는 오히려 같은 공화파인 아나키스트나 트로츠키스트들을 제거하는 데 더 힘을 기울였습니다.뭇솔리니와 히틀러가 프랑코 파를 지원하는 정도만큼 열성적으로 지원해 주지도 않았구요.자칫 간과하기 쉬운 사실인지만 스페인 내전에 가장 많이 온 외국군대는 뭇솔리니가  보낸 이탈리아 군입니다.히틀러가 보낸 콘도르 군단은 괴링이 지원한 비행대가 있었고 또 게르니카를 초토화시켜 악명을 떨쳤습니다만 이탈리아 군에 대해서는 특별히 이 분야를 공부하지 않은 이들은 잘 모르더군요. 

 그리고 또하나 잘 주목되지 않은 사실은 모로코 군의 참전입니다.당시 공화파가 가장 무서워한 군대가 이 모로코 군이었습니다.공화파가 이  부대에 걸리는 걸 제일 무서워 했으니까요.공화파에 대한 무자비한 살인으로 악명을 떨친 부대입니다.차마 말로 하지 못할 잔인한 짓을 했습니다.모로코는 스페인의  지배에 있었고(프랑스와 지배지역을 반으로 나누었음),프랑코는 모로코에서 지휘관 생활을 했습니다.모로코 남자들은 기병을 잘 다루었고 용맹하기 이를 데 없었죠.식민지 출신들이 제국주의 군대의 일원으로 참전한 일은 자주 있었기 때문에 저는 이런 군대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하나하나 알아보려고 합니다.1차대전은 물론 2차대전에도 식민지 출신 군대가 많이 참전했습니다. 

 또하나 요즘 외신에 나온 아르메니아 학살 문제입니다.1차대전 당시 최악의 인종살인 사건인데 터키가 악명을 떨치고 있는 원인이지요.우리는 터키에 대해 아무래도 직접 충돌한 적이 없기 때문에 그다지 알려져 있지 않지만, 이 문제에 대해 인정하고 사과하지 않으면 터키가 유럽연합에 가입할 수 없다는 조건을 걸 정도로 큰 쟁점입니다.터키는 아르메니아 학살에 대해 한번도 인정한 적이 없을 뿐더러 아르메니아 인에게 터키인들도 많이 살해당했다는 상당히 대담한 물타기로 일관해 오고 있습니다.최근 오바마가 터키를 방문해서 아르메니아와의 관계개선을 종용하고 그 결과 터키가 전향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다고는 하지만 과거사에 대한 사과문제는 피해국의 정서를 만족시키기가 힘들고 그래서 아르메니아에서는 터키의 진솔한 사과가 있기 전에는 관계정상화는 안된다는 시위가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아르메니아인 학살은 독일처럼 가스실에서 죽인 것도 아니고 일본처럼 남경을 함락시키고 저지른 일도 아니고 좀 독특합니다.1차대전 중 터키는 독일 오스트리아의 편을 들어 참전했는데 아르메니아는 터키(당시는 오스만 투르크 제국)로부터 독립할 기회라며 러시아를 지원했습니다.카프카즈 지역을 놓고 러시아와 터키가 맞붙는데 배후에 있는 아르메니아인들을 러시아로부터 떼어놓기 위해 추방령을 내리고 이들이 중동지방으로 쫓겨가는 동안 학살 전염병 굶주림으로 비공식으로 150만이 죽어나갔습니다.아르메니아인들로서는 결코 못잊을 원한이지요.아마 2차대전처럼 전범재판이 있었더라면 터키 지도자들은 당연히 전범으로 처벌을 받았을지도 모릅니다. 

  문제는 이때 쿠르드 족이 학살에 많이 가담했다는 겁니다.어떻게 보면 직접학살은 터키 군보다 쿠르드 군이 더 많이 했지요.쿠르드 족은 자기 나라가 없어서 이란 터키등의 나라에 용병이   되는 일이 있었는데 용맹했기 때문에 상당히 쓸모가 많았습니다.당시 터키와는 아르메니아 학살에 협조하는 댓가로 터키 동부지역을 할양하겠다는 묵계가 있었다고 합니다.물론 1차대전의 패배로 오스만 투르크는 해체되고 이 약속도 흐지부지 됩니다. 

  스페인 내전과 아르메니아 학살은 지금도 그 과거사 문제로 첨예한 대립이 일어나고 있습니다.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오르한 파무크는 아르메니아 학살에 대해 사과해야 한다는 주장을 했기 때문에 조국 터키를 떠나야 했고 지금도 터키에서는 이 문제 잘못 건드리면 극우파에게 테러당할 각오를 해야합니다.의회민주주의가 확립되어 있다는 독일에서도 과거사 문제에 대해 진보적인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귄터 그라스가 네오나치에게 폭행을 당한 일이 있었으니 더 할말이 없지요.스페인에서는 아직도 스페인 내전 진상규명을 놓고 프랑코 지지파(아직도  상당한 위력을 가지고 있음)들이 강력히 반발하고 있습니다.그 당시 살인과 폭력의 한축을 담당했던 이들모로코 군과 쿠르드 군의  만행에 대해서는 어떤 해석을 해야 할까요.지나치게 이념논쟁을 흐르기 쉬운 이들 사안을 좀 더 다른 시각으로 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 같아서 이런  사실을 이야기해 봅니다. 

***아르메니아 학살에 대한 책 

최호근<제노사이드>(책세상 )

앨런 파머<오스만 제국은 왜 몰락했는가>이은정 역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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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9-05-09 0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0세기에 까지 기병을 활용했다니 신기하네요. 공화파쪽에선 패배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가를 두고도 논쟁이 있는 것 같더군요. 스페인에선 프랑코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더 많은 모양이네요. 특권을 잃고 프랑코에 붙었던 가톨릭도 반성이 없나보네요.

비로그인 2009-05-09 09:17   좋아요 0 | URL
<사막의 라이온>와 <아라비아의 로렌스>에 특히 관심이 가네요. 공화파의 무기 수준이 조악했다는 건 조지 오웰이 증언했던 것 같네요.
간도를 찾아야 한다고 하는 친구들이 있는데 무슨수로 찾을거냐? 전쟁이라도 할거냐? 전쟁하면 네가 앞장설거냐? 하면 벙어리가 되더군요.

노이에자이트 2009-05-09 15:25   좋아요 0 | URL
2차대전까지 기병을 사용했습니다.물론 사역용으로 더 많이 썼지만요.이병주가 일본군에 징집되어 맡은 임무가 말 담당이었지요.
어느 나라나 보수파들은 일정정도 세력권이 있습니다.칠레에도 피노체트 파가 있구요.
경향신문이 계속해서 간도는 우리땅이라고 선전을 하던데,글쎄요...

노이에자이트 2009-05-09 15:58   좋아요 0 | URL
스페인 영화에 대한 정보 감사합니다.그런 장면이 나오다니 관심이 가는군요.원저의 저자가 팔랑헤 창설자군요.
예전에 우리 땅이었으니 내놓으라...매우 어려운 문제입니다.따로 공부가 필요하겠지요.
북아프리카는 열강의 이해가 부딪히는 곳이라서 세계대전 때 중심이 되었지요.저는 종교사적인 측면에서도 관심이 있는 곳입니다.

노이에자이트 2009-05-09 15:23   좋아요 0 | URL
<사막의 라이온>이나 <아라비아의 로렌스>는 한때 테레비로도 자주 방영했는데 요즘은 안 하지요? 만주공작에 나섰던 도이하라 겐지가 자신을 만주의 로렌스라고 했던 것이 생각납니다.제국주의 국가가 제3세계의 독립운동에 끼어드는 경우가 드물지 않지요.

쟈니 2009-05-10 12: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공간은 댓글을 통해 알게되는 것도 무척 많아요. 다만, 곧 삭제한다 하시니, 놓치지 않기 위해서라도 노이에자이트님 서재를 하루에 한번은 꼭 와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

노이에자이트 2009-05-10 20:23   좋아요 0 | URL
인터넷을 통해 소모적인 말싸움,시비를 거는 사람도 만나지만 좋은 정보를 알려주는 사람도 있지요.그렇게 도움을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인터넷을 하면서 느끼는 고마움 중 하나입니다.

Forgettable. 2009-06-11 17: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이 글 보고 난 모르는 얘기니깐,
하면서 넘어갔는데 최근에 스페인 내전에 관심이 생겨서 알아보려고 하는 참인데, 이렇게 복잡한 사연이 있었군요. 하, 더 궁금해집니다.


노이에자이트 2009-06-11 22:25   좋아요 0 | URL
역사를 안 다음에 소설을 읽으면 더 이해가 쉽지요.서양에는 스페인 내전을 배경으로 한 소설이나 영화가 많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