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번 문항에 관하여

  에드워드 할레트 카<역사란 무엇인가>제3장 역사와 과학과 도덕 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노예제도에 찬성하는 이들은 노예주들 중에도 개인적으로 착한 사람이 있었다고 강조해왔다..." 또 저자는 베이컨의 "인습의 완강한 지속은 변혁과 마찬가지로 난폭한 것이다"는 말도 인용했습니다.그런 내용을 읽으면서 질문을 만들어 봤습니다.하지만 애초에 제가 작성한 질문은 "당신이 노예라면 어떤 주인 밑에서 일하고 싶은가?"였는데 질문이 너무 사람을 불편해하는 것 같아서 좀 더 차분하게 대답할 수 있는 것으로 바꾸었습니다.참고로 카가 소개한 재밌는 인용이 있습니다.영어사전 편찬자로 유명한 사무엘 존슨은 "만약 평등의 상태가 계속되면 행복한 사람은 하나도 없을 것이므로 차라리 일부 사람들이 불행한 편이 낫다."고 했고 르네상스 문화를 연구한 야콥 부크하르트는 자기 소유물 외엔 잃을 것이 아무 것도 없는 진보의 희생자들의 짓눌린 신음에는 눈물을 흘렸으나 간직할 것이 없는 앙시앙 레짐의 희생자들의 신음에 대해선 말이 없었다고 합니다. 

2번 문항에 대하여 

이런 문항은 바로 우리의 일상에 많이 부딪히는 현실을 다룬 것입니다.제가 이 문제를 곰곰히 생각하게 된 것은 윌리암 힌튼 저 강칠성 역<번신>(풀빛1986)을 읽고 나서였습니다.이 책은 중국내전이 막바지로 치닫던 1947~1948년 중국 해방구에서 벌어지는 혁명사업에 참여하는 농민들을 취재한 르포인데 이 방면의 고전적 명저입니다.특히 지주에 대한 투쟁과 함께 여성들이 가부장적인 억압을 반대하면서 남편과 시댁식구들을 규탄하는 집회 모습이 꽤 자세히 나옵니다.재밌는 것은 여성들이 남편과 시어머니를 함께 인민재판하는 광경인데 효도 이데올로기를 내세워 자신을 합리화하는 남편 이야기가 있고,재판 중에 잘못을 뉘우치면서 어머니를 규탄하는 남편 이야기도 있습니다.중국인에게 듣기로는 이 동네에서는 시어머니를 규탄하는 집회에 참석하지만  저 쪽 동네에선 친정 어머니가 며느리(내게는 올케)에게 못된 시어머니로 규탄 받아 재판에 끌려나온다는 소식을 들은 사람들도 있었다네요.제가 한때 중국여성해방운동에 관심이 많아서 이 책을 구해서 읽었어요.나중에 엘리자베스 크롤의 책도 읽을까 했는데 게을러서인지 아직도 못 읽고 있습니다.원래 제가 할 질문은 우리나라에서 그런 인민재판이 열린다는 가정을 세워 만든 것이었는데.워낙 독한 내용이어서 그냥 거두어 들였어요.효도 이데올로기를 완전히 깨뭉개는 질문이었는데 여러분이  그런 시각에서 질문을 한번 만들어 보세요. 

3번 문항에 대하여  

마르틴 루터 킹 목사가 버밍햄 감옥에서 보낸 편지에 나오는 유명한 내용이에요.킹 목사가 불법시위를 했다고 구속되는데 그의 투쟁노선을 비판하는 이들이 법을 지켜야 하지 않느냐,성직자가 그러면 되겠느냐.등 말이 많아지자 옥중서신으로 답한 글에 나옵니다.킹 목사는 당연히 부당한 목적을 위해서 정당한 수단을 사용하는 것이 더 나쁘다고 합니다.저는 서른이 넘도록 소크라테스는 악법도 법이니 지켜야 한다고 말하고 독배를 들었다고 믿고 있었는데 그런 이야기는 없었다고 하네요.강정인<소크라테스,악법도 법인가>(문학과 지성사)에는 그런 거짓말이 교과서에 실리게 된 사연을 자세히 분석한 논문이 있어요.극단적인 법치주의로 인민을 통제하기 위해 그런 내용을 주입하게 되었다고 합니다.학교에서 배우는 거짓말이라는 용어가 실감나는 순간이었죠. 

4번은 김우창 씨가 1988년 신동아 9월호에 쓴 '혁명적 폭력과 구조적 폭력'이라는 제목에서 그대로 따왔습니다.이 글은 김우창 씨 특유의 길면서도 치밀한 논리를 전개하고 있는데 구조적  폭력을 갈아엎기 위해 혁명적 폭력을 어디까지 정당화될 수 있는가의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김우창 씨는 이 글 외에도 이 문제를 다룬 글이 있는 것으로 봐서 이 문제를 깊이 고민한 것 같습니다.애초에는 도스토예프스키 <악령>에 나오는 도발적 문제제기를 다루어 볼까 하다가 우리나라 사람들은 <카라마초프의 형제>나 <죄와 벌>에 비해 이 소설을 그다지 많이 안 본다는 데에 생각이 미쳐 간단히 이런 질문을 만들어 보았습니다. 

  질문을 만드는 과정에서 2번은 워낙 민감한 문제를 제기하면 불편할 것 같아서 많이 다듬었고.나머지는 거의 책에서 그대로 인용한 것입니다.그리고 1번도 몇 번이고 고치다가 결국 평범한 질문이 되고 말았습니다.굳이 너무 불편한 질문을 만들어 사람들을 괴롭혀서는 안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더 자세히 알고 싶으신 분은 제가 밝힌 위의 책이나 글을 읽어보시기 바랍니다.제 질문에 답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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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9-03-01 0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에도 <소크라테스,악법도 법인가>를 소개해주셔서 그때 서점을 뒤져봤는데 구하질 못해서 아직 못읽고 있네요. 학교에서 거짓말 가르치기 보다 살면서 한 번쯤은 겪을 수 있는 질문을 함으로써 학생들이 자신의 길을 찾게끔했으면 좋겠어요.

노이에자이트 2009-03-01 20:38   좋아요 0 | URL
박홍규 씨 책 중에 소크라테스를 다룬 책이 있는데 거기서도 소크라테스는 악법도 법이라고 말한 적이 없음을 지적했습니다.하지만 워낙 세뇌가 철저해서 작년 촛불시위 때도 준법정신을 강조하면서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더군요.

코마개 2009-03-02 11:50   좋아요 0 | URL
'소크라테스는 악법도 법이라고 말하지 않았다'-권창은, 고려대 출판부
이게 같은 책일겁니다. 강정인 교수의 '소크라테스, 악법도 법인가'의 공동 저자로 되어 있는 사람인데, 판본을 바꾸어서 나온거라고...

노이에자이트 2009-03-02 23:36   좋아요 0 | URL
예.그 저자 역시 소크라테스에 대해 잘못 알고 있는 우리의 편견을 계몽하는 글로 유명하지요.

쟈니 2009-03-02 2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래 질문에 답을 달려고 하다가 머리도 아프고 해서 그냥 뛰어넘었습니다. 행동과 생각에 대해 저도 요즘 고민이 많은 상황이라서요.
제 생각대로 행동하면 뭔가 제가 손해를 꽤 보는 거 같고. 그렇다고 제가 손해를 보지 않는 방향으로 행동하려니, 평소 지론에 위배되는 것 같아 할 수 없어서, 그래서 생각을 따르다 보니 손해를 보고, 열을 받는 상황이 지속되네요.. 생각을 바꿔야 할지..

노이에자이트 2009-03-02 23:39   좋아요 0 | URL
자신과 무관한 일에 관해선 명쾌하게 결론을 내릴 수 있지만 자신이 얽혀있는 일이면 그럴 수가 없는 존재가 인간이 아닌가 생각합니다.고민이 해결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