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작 도이처는 제가 가장 좋아하는 저술가 중의 한 명입니다.그와 교류가 있었던  에드워드 홀렛트 카와 함께 러시아 및 유럽 혁명사의 권위지요.웅장하고 해박한 역사서를 보면 압도까지 당할 것 같습니다.또 두 사람은 그 유명한 켐브리지 대학 트레벨리안 기념 강연장에 서기도 했습니다.카의 강의 제목이 <역사란 무엇인가 >였고 1961년에 책으로 나왔습니다.도이처는 <미완의 혁명>이었죠.도이처의 이 강의는 그가 작고한 해(1967년)에 했고 책으로 나왔습니다.거장의 마지막 사자후였다고나 할까요.우리나라에선 종로서적에서 번역되어 나왔는데 그다지 알려져 있지 않은 책입니다만 저는 여러번 읽고 또 읽고 한 애독서 중의 하나입니다.

 도이처는 전직 트로츠키 주의자였습니다.그래서 코민테른에서 제명 당합니다만 그렇다고 트로츠키 주의 단체에서 열심히 일하지도 않았습니다.본인은 죽는 순간까지 마르크스주의자로 불러 줬으면 하고 바랐다지만 사실은 청산주의자라고 봐야죠.우리나라에 그의 저서 중 제일 먼저 소개된 것은  그 유명한 스탈린 전기입니다.한림 출판사 세계 위인 회고록 전집의 한권으로 1971년에 번역되었죠.두툼하고 무게가 있는 책이지요.재밌는 것은 역자해설에 도이처의 공산당 전력이 전혀 소개가 안 되어 있다는 점입니다.아마 당시 사회 분위기로 봐서 그런 것 같은데 여하튼 박정희 시대 때 도이처의 저서가 번역되어 있다는 사실을 보면 완벽한 사상 통제는 없다는 격언을 생각나게 합니다.

  도이처는 혁명대열에서 이탈한 사나이라고 봐도 되지요.요번에 그의 트로츠키 전 2권,3권이 마저 번역되어 있다길래 저는 서점에 가서 중국혁명 당시의 트로츠키와 스탈린의 대립이 어느 정도 분량이나 나왔는지 훑어봤는데....실망...그다지 분량이 많지 않네요.도이처는 모택동주의에 대한 책도 썼고 그의 유작인 미완의 혁명에도 중국공산주의의 미래에 대해서도 꽤 깊이 있는 분석을 보여주어서 기대가 컸는데 정작 트로츠키 전에는 그 내용이 빈약하니 실망할 수 밖에요.트로츠키 저작목록에 보면 중국혁명사가 있는데도 왜 그랬을까요.에이! 아무래도 내가 이 분야에 대해 직접 써야겠다! 제목은 <중국혁명,그리고 스탈린-트로츠키 논쟁>! 그러나...지금까지 저는 손도 못대고 조용히 살고 있습니다.마음먹는 대로 다 된다면 세상에 안 될 일이 어딨습니까.손 발이 게을러서 문제죠.

  도이처 같은 청산주의자가 아니고 죽는 순간까지 트로츠키 주의자로 살았던 사나이는 벨기에의 경제학자 에르네스트 만델입니다.그의 무지막지하게 두툼한 책 <후기 자본주의론>은 한마당에서 번역되어 나왔는데(1985년) 정운영 씨의 소개글이  실려 있지요.여기서 정 씨는 만델 더러 "심장이 왼쪽에 있음을 의식하는 사람"이라는 유명한 정의를 내립니다.이 말은 그가 나중에 자기 책 제목으로도 썼죠.중앙일보에 쓴 칼럼모음이라 어째 안 어울린다는 느낌을 주긴 하지만요.만델은 이 책에서 "이 책을 로만 로스돌스키에게 바친다"고 했습니다.로스톨스키 역시 유명한 트로츠키 주의 경제학자입니다.우리나라에선 역시 트로츠키 경제학자로 알려진 정성진 씨가 로스톨스키의 <자본론의 형성>이라는 두툼한 책을 번역했죠.만델의 또다른 책도 번역되었습니다.<마르크스 경제사상의 형성과정> 한겨레1985.이 출판사는 한겨레 신문사와는 무관하니 오해 마시길.여하튼 우리나라에서는 사회주의 노동자당의 대부 토니 클리프 이전에 만델이 먼저 소개되었습니다.요즘은 만델의 저서는 모두 서점에서 사라졌지요.

  저자가 직접 나와 있지 않은 해적판에도 트로츠키 주의자들 저서가 있습니다.1980년대 초중반 헤겔 논리학을 비롯한 헤겔 해설서를 많이 낸 중원문화의 <형식논리학과 변증법적 논리학>이 바로 그 책이죠.이 책은 트로츠키를 레온이라고 표기했습니다.엥겔스는 프리디리히라고 했다가 그냥 엥겔스라고 했다가 일관성이 없는데 아무래도 몇 명이 나눠 번역한 것 같습니다.미국의 트로츠키 단체에서 강의한 것을 책으로 썼는데 한때 트로츠키 주의자였다가 전향한 번햄이라든가 샤하트만 등을 비난하는 대목이 나옵니다.트로츠키 분파들을 안 다음 이 책을 읽었기 때문에 이 책이 트로츠키 주의 계열 것이로구나 하고 알았죠.만약 입문서라고 해서 대학 들어가자 마자 읽었다면 그 사실을 몰랐겠지요.

  일본의 트로츠키 주의자들이 혁명적 낙관주의에 넘쳐 쓴 이와다,가와타미 공저<현대국가와 혁명> 이론과 실천 1986도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책입니다.선진국의 혁명은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해 쓴 이 책은 일본 공산당의 분트 파라는 별명이 붙은 분파 소속의 저술가들의 저서입니다.하지만 팜플렛 선동이 아니고 상당히 깊이 있는이론 수준을 보여줍니다.특히 맑스 엥겔스 레닌의 부르조아 국가론을 해설하고 있는 장은 정독할 필요가 있죠.그 외에 제가 관심이 있는 국제 통화체제 이야기도 나오고 프랑스 5월 혁명,일본의 안보투쟁에 대해서도 많은 분량을 할애했습니다.당연히 스탈린주의를 내건 코민테른에 대한 비판도 나오지요.트로츠키 식 파시즘 분석이 주목할 만합니다.

  페레스트로이카라는 단어는 이제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한 이십년 전에는 대단한 화제를 모았지요.학술단체 협의회에서 나온 논문집이 우리나라 학자들의 수준을 보여주는 책이죠.그런데 트로츠키 주의자들이 페레스트로이카를 평가한 논문들도 실은  책도 번역되었습니다.<페레스트로이카란 무엇인가 >신평론1989 가 그것입니다.만델의 글이 여러 편 실려있지만 또 당시 우리나라엔 알려져 있지 않은 마이클 뢰위,크리스 하먼의 글도 실려 있습니다.크리스 하먼은 1990년대 이후 번역도 많이 되고 해서 더 익숙한 이름이 되었지요.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만델은 사람들의 뇌리에서 사라져 가고 트로츠키 주의 하면 토니 클리프가 생각날 만큼  그의 저서가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우리나라의 트로츠키 단체들도 그 주류는 클리프의 사회주의 노동자당 파지요.다른 분파는 거의 사그러든 상태입니다.지난 촛불시위에서 많은 화제를 모았던 <다함께>라는 단체가 있었죠.알만한 사람은 다 알겠지만 그 단체가 사회주의 노동자당 계열입니다.영국을 비롯한 유럽의 반 세계화 시위 현장엔 이 단체 활동가들이 사회주의 노동자당 팻말을 들고 나와 있는 광경을 볼 수 있지요.독서 시장에는 이제 멘델의 책은  물러서고 크리스 하먼,앨릭스 갤리니코스 등의 번역이 많이 나와 있습니다.학계엔 역시 정성진 씨가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구요.트로츠키의 명성을 최고로 높여준 러시아 혁명사도 완역되어 있는 등 우리나라의 트로츠키 번역은 꽤 활발합니다.저는 해롤드 이삭스<중국혁명의 비극>이 번역되었으면 좋겠습니다.대학살이 일어나면서 국공합작이 깨진 1927년 상해를 다루고 있는 고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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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씨 2008-11-02 19: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정 씨는 만델 더러 "심장이 왼쪽에 있음을...이 말은 그가 나중에 자기 책 제목으로도 썼죠.>

이 문장을 읽노라니 갑자기 옛날 생각이 나는군요. 학교 졸업후 한 동안 공사판에 노가다를 다녔는데, 가자마자 십장아저씨가 제게 이름이 뭐냐고 묻더군요. 박아무개라고 했더니, 지금부터는 "박 씨"라고 부르겠으니 그리 알라고... 저로서는 난생 처음 들어보는 "박 씨" 였죠.
그리고 전두환시절 땡전뉴스보다 더 기억에 남는 것은 그가 연설을 할때마다 수없이 반복하던 "본인은.." 하는 말투입니다. 갑자기 "자기 책"이라는 표현을 만나니 이런 덜 어울리는 기억이... 죄송합니다.

노이에자이트 2008-11-03 16:29   좋아요 0 | URL
호칭 인플레가 갈수록 심하죠.우리나라는 사람을 존중하기 위한 호칭체계가 아니라 직함을 내세우는 호칭체계가 점점 심해지고 있습니다.80년대만 해도 월간지 기사엔 이름에 씨만 붙여도 되었죠.그때는 함석헌 선생이 80이 넘어도 씨였고 강만길<분단시대의 역사인식>도 책날개의 저자 소개란에 이 책의 저자 강만길 씨라고 나와 있습니다.70년대엔 더 말할 나위도 없죠.직함을 붙이는 번거로운 관행이 정착된 것은 90년대 초입니다.이런 호칭체계가 얼마나 사람을 차별하는 것인가는 정년퇴직자에게도 예전 호칭을 그대로 붙이는 걸 보면 알 수 있습니다.한번 계장은 영원한 계장.한번 사장은 영원한 사장.그냥 씨라는 평등한 호칭이 있다면 좋을텐데요.일본어의 상에 해당되는 호칭이 없으니 우리나라에는 이 호칭때문에 얼마나 다툼이 많습니까.노가다 판이 그나마 수직적인 위계질서가 좀 느슨한 편이지요.

로쟈 2008-11-02 2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젝이 해설을 쓴 트로츠키의 <테러리즘과 공산주의> 영어본 때문에 국역본을 찾았더니 없더군요. 많이 번역돼 있지만 이가 빠진 듯싶었습니다...

노이에자이트 2008-11-03 16: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트로츠키의 스탈린 전도 번역이 안 되어있습니다.그래도 영구혁명론이나 러시아 혁명사가 번역되어 있으니 다행이지요.

후애(厚愛) 2008-11-04 06: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호칭에 대해서 제일 편하게 부르는 곳이 미국이 아닌가 생각해요. 저도 미국에 와서 알았지만 모두가 이름으로 불려요.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에도 이름이고 형제와 자매. 그리고 스승과 제자 사이에도 이름으로 부르고 초면인데도 무조건 이름으로 부른답니다. 나이에 상관없이 말이지요.

노이에자이트 2008-11-07 15: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본이나 중국도 우리나라 정도는 아니에요.세종대학에는 일본에서 귀화한 호사카 유지라는 학자가 있는데 우리나라에 온 첫해에 학생들끼리 학년은 낮으나 재수 삼수 혹은 군복무 마치고 와서 선배보다 나이가 많은 학생들에게 말을 내리는지 올리는지 문제를 가지고 다투는 걸 보고 이해하기가 어려웠다고 하더군요.일본도 존비어 체계가 꽤 복잡한 데도 우리나라 사람들이 위아래 따지는 것 보고 질려버렸나 봐요.거기는 선후배라도 친해지면 편하게 반말하거든요.한 번 선배는 영원한 선배라든가 하는 그런 거 없어요.

쟈니 2008-11-05 23: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많은 이야기, 많은 책이 노이에자이트 님의 글속에 녹아있군요. 글 하나에서 많은 것을 알게 되어서 기쁩니다. 고맙습니다. ^^

노이에자이트 2008-11-06 15:43   좋아요 0 | URL
도움이 된다니 기쁩니다.더욱 분발하겠습니다.

가시장미 2008-11-06 05: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 글 너무 어려워요. -_ㅠ 안그래도 졸린 눈 비비며 서재질 하고 있는데 ㅋㅋ 오늘은 그냥 안부만 여쭙고 갈께요. 나중에 기회되면 다시 읽도록 할께요 ^^
참 이상한게 이 시간만 되면 잠을 자는 게 싫어요. 12시까지 늘어지게 자거든요. 그래서 새벽에 잠이 안 오는 건 당연한데, 잠이 올 때쯤 되면 왜 이렇게 잠자는 시간이 아까운지 ㅋㅋ 늦게 자면 더 늦게 일어날텐데도.. _-_)~ 그래서 이 글 쓰고 자려구요. 울희망이가 발길질 하다가 조용해져서 이 때 어여 자야되요 ㅋㅋ 엄마 닮아서 새벽에 자주 깨거든요.
잘 주무시고 계시죠? 좋은 꿈 꾸셨길 바랄께요. 오늘 하루도 즐겁게 보내시구요. ^^

노이에자이트 2008-11-06 15:45   좋아요 0 | URL
다시 읽으시면 쉬워질 거예요.책 소개인 걸요.
저는 전형적인 아침형입니다.일찍 일어나고 일찍 자구요.
희망이는 아들일까요,딸일까요?

미국사람 2011-08-19 0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해롤드 이삭스 <중국혁명의 비극> The Tragedy of the Chinese Revolution
Harold Isaacs은 제가 처음 들은 책인데 아마존을 찾아보니 놀랍게도 아직도 출판이 되고 있군요.
1938년 초판인데 아직도 출판되고있으면 명저 반열에 속한 책이고 550페이지면 대작일텐데 내용이 궁금하군요. 어쨌건 좋은 내용 감사합니다.
그런데 이런 책을 국내에서 어떻게 구할 수 있었는지 궁금하군요. 하긴 전두환 시대에는 요즘이면 학생들에게 돈을 주고 읽을라해도 안 읽을만한 책이 해적판으로 수없이 돌고 있긴했지만 말입니다.

노이에자이트 2011-08-19 16:56   좋아요 0 | URL
해롤드 이삭스의 중국혁명의 비극은 중국혁명을 다룬 책에는 반드시 인용되어 있더군요.이 시기를 다룬 소설이 앙드레 말로<인간 조건>입니다.

80년대에 번역된 명저들은 소련이 무너지고 1990년대 중반부터 헌책방에 쏟아져 나와서 싸게 구입했습니다.물론 정식저작권료를 물고 번역하지 않은 책들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