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치바나 다카시가 우리나라에도 인기입니다.몇 년 전에는 그의 유명한 고양이빌딩의 서재가 방송을 타기도 했지요.독서가들에겐 그의 책 한 권 한 권이 소중한 모양입니다.그의 책 중 제일 먼저 국내에 소개된 것은 <일본 공산주의 연구>박충석 역 고려원1985라는 사실은 모르는 사람이 많습니다.사실 이 번역본 자체가 한자가 빽빽한 데다가 일본 지명과 인명도 히라가나 발음 표기도 없이 한자만 표기해서 참 읽기 불편하게 나왔죠.70년대에 일본에서 처음 나왔을 땐 일본 내 진보진영에서 굉장히 반발하기도 한 문제의 역사서입니다.우리나라에 다치바나가 널리 알려진 것은 <나는 이런 책을 읽어왔다>가 번역된 후일 겁니다.그런데 이 책에 한국전쟁 당시 미첩보기관과 구 일본군 잔당들이 한국전에서 암약한 내용을 다룬 로만 킴 <할복한 참모들은 살아있다>가 142쪽에 소개된 사실은 많은 이들이 그냥 스쳐지나가 버린 모양입니다.저는 이 분야에 관심이 많아서 기억합니다만.
한국전에 세균전이 있었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된 것은 조정래<태백산맥>을 통해서입니다.하지만 역시 이 책을 읽은 많은 주변사람 중에 그런 내용이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없었습니다.그렇게 많이 팔린 책인데도요.그의 강연회에서 직접 물어봤죠.한국전 때 세균전이 있었느냐고.조정래 씨는 그렇다고 바로 대답했습니다.저는 그 유명한 하얼빈 731부대장 이시이 시로가 한국전이 한참이던 때 우리나라에 왔던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일본이 어느 정도 한국전에 개입했는지 궁금했죠.당시 이시이가 방문한 공식적인 목적은 부족한 혈액을 공급하는 문제를 해결하려 했다...그런 것이었지만 731부대가 뭔지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왜 하필 이시이가...하는 의심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이시이 부대를 일본에서 대중에게 널리 알린 이는 추리작가로 유명한 모리무라 세이이치(1933~)입니다.저도 그의 소설을 좋아하지요.그가 쓴 <악마의 포식>이 바로 이시이 부대원들을 인터뷰해서 쓴 논픽션 물입니다.우리나라엔 1978년 경 번역되었죠.하지만 이 번역본은 이제 구할 수 없고 그 뒤 해적판 번역이 많이 나왔습니다.저 역시 헌 책방에서 구한 해적판을 읽었습니다.모리무라가 이 글을 연재할 때 항의하는 이들은 "왜 그런 어두운 역사를 굳이 폭로하느냐.너는 일본인이 아니란 말이냐."하는 말을 했답니다.하지만 한 편으로는 몰랐던 사실을 밝혀줘서 고맙다는 사람,또 내가 더 증언할 것이 있다고 손수 연락을 해오는 731부대 출신들도 있었다고 합니다.이 책 뒤편에는 저자가 중국 방문했을 때의 기록이 있지요.사진 중 제 눈을 사로잡은 것은 한국전 때 미군이 만주에 떨어뜨렸다는 세균폭탄이었습니다.북경 박물관에 전시된 건데요.저와 같은 학원에서 중국어를 강의하는 20대 중국여성에게 물어봤더니 그 폭탄이 지금도 전시되어 있다고 합니다.
세균전을 미국이 했다 안했다 논란이 많습니다.냉전시대엔 우리나라에서 그런 말은 해선 안되었지요.하지만 80년대부터 새로운 시각의 해외 연구물들이 번역되면서 이 문제를 다룬 책들이 선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데이비드 콩드<한국전쟁 또 하나의 시각>최지연 역 (과학과 사상1988)이 세균전을 다룬 대표적인 책일 겁니다.이 책은 An Untold History df Modern Korea 중 한국 전쟁 편을 번역한 것입니다.이 책의 나머지 부분은 <분단과 미국1945~1950>(사계절). <남한 그 불행한 역사 1953~1966>(좋은 책)로 번역되었습니다.분단과 미국 편에는 1945년 해방직후 미군정이 도착하기 전 조선 총독부와 재 조선 일본군과 긴밀히 연락을 주고 받은 사실이 자세히 나와서 관심있게 본 기억이 납니다.한가지 알려둘 것은 이 책은 미국에선 판금이라서 일본에서 먼저 나왔다는 사실입니다.그만큼 민감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저자는 일본항복 직후 맥아더 사령부에서 일했는데 맥아더가 일본에서 우경화하면서 전범들을 석방하는 등의 조처를 취하자 이에 굉장히 항의를 한 인물입니다.맥아더 사령부 내의 이런 갈등은 나중에 제가 따로 말씀드리죠.
세균전에 관한 정보는 부르스 커밍스,존 홀리데이 공저<한국전쟁>태암 1988에도 있습니다.이 책은 방송다큐물로 제작된 것을 책으로 냈습니다.사진이 아주 많아서 도움이 됩니다.당시 세균전 문제는 공산권과 미국 간에 굉장한 격론이 벌어진 쟁점이라서 조사반을 파견한다,기자들을 보낸다 굉장했죠.이 조사반엔 세계적인 학자들도 있었는데 <중국의 과학과 문명>으로 유명한 조셉 니덤도 끼어있었습니다.당시 조사반원들을 찍은 사진에 니덤이 끼여 있죠.하지만 이 책은 콩드의 책과는 달리 미국에 대해 비교적 차분한 논조를 유지하고 있습니다.세균전 문제도 조심스럽게 다루려고 한 흔적이 있죠.
미국이 세균전을 했다는 공산권의 선전은 날조라는 주장을 한 책도 당연히 많죠.조셉 굴든<한국전쟁> 김쾌상 역 일월서각 1982이 그 대표입니다.논픽션 작가인 저자는 반공 냄새를 풍기면서 다소 조롱하는 투로 이 사건을 다루고 있죠.하지만 그렇다고 이 책을 흔하디 흔한 반공물로 보면 곤란합니다.맥아더를 이렇게 신랄하게 조롱한 책도 없으니까요.맥아더를 비난하는 이가 반공주의자일리가 없다고 생각하는 이는 한국 반공 교육 특유의 단세포적인 생각을 못 벗어난 사고방식의 소유자일 것입니다.맥아더에 대한 비난을 부모에 대한 비난을 대하듯 하는 이들은 반공주의자인데 왜 맥아더를 물고 늘어지는 거야! 조셉 굴든 이거 어떤 놈이야? 하고 화를 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굴든의 책에는 북한과 중국에 대해선 비판적인 태도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이시이 시로를 석방하라고 도쿄 전범 재판 당시 강하게 압력을 넣은 이가 당시 일본점령 사령관인 맥아더였습니다.그런데다가 이시이가 한국전 당시 방한까지 했으니 이런 저런 무성한 추측이 생기는 것이지요.물론 이시이가 방한했을 땐 맥아더는 해임되고 리지웨이가 후임으로 올 때였고 이때문에 리지웨이는 세균전의 장본인이라는 오명이 따라다닙니다.
마루타라는 단어를 유행시킨 계기는 모리무라 세이이치의 저 책보다는 정현웅의 마루타라는 소설 덕이지요.한 이십 년 전에 굉장한 베스트 셀러였습니다만 지금은 도서관에서도 퇴출되었군요.물론 위에 소개한 한국전쟁 관련서들도 이젠 모두 절판되어 구할 수가 없습니다.콩드의 책을 번역하려고 세 개의 출판사가 동시에 준비하다가 나누어 번역하기로 정리한 일화는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의 얘기 같습니다.요즘은 이런 책을 출판사가 경쟁하듯이 번역하진 않을 겁니다.이제 그 세 출판사 중에 남은 것은 사계절 밖에 없군요.세월이 많이 지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