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무 시간이 아닐 때 가끔 가까운 도서관에 가서 공부할 때가 있다.책도 빌려보고 또 그 곳의 책을 읽다가 독서일기에 신나게 적어두기도 한다.그런데 시험기간에 학생들이 오던 어느 날.도서 대출실에서 일어난 일이다.그 때 고대 중국과 우리나라 간의 조공관계에 대해 열심히 읽고 쓰고 있는데 갑자기 나이 든 아저씨의 목소리---여기는 공부하는 데가 아니다....나는 깜짝 놀라서 고개를 들었는데 사연인즉 이랬다.그 목소리 주인공은 그 도서관의 남성사서.그 곳은 도서관의 책을 읽는 열람실인데 중학생 일부가 시험 공부하려고 집에서 문제집을 가져와 풀고 있었던 것.그러니 시험 공부하지 말라는 이야기.그런데 공부하지 말라...내가 했던 고대 한중관계사 공부는 공부가 아니었던가.그 사람 이야기로는 내가 한 것은 책을 읽는 것이지 공부를 한 것은 아니라는 말인데...그러고 보니 우리나라 특유의 용법인데 공부는 시험공부 밖에 없다.학교 다닐 때 그런 핀잔 한 번씩은 다 들어 봤을 거다.시험공부 외에 다른 공부-문학서적이나 역사학 공부-를 하면 넌 공부 안 하고 뭐하느냐!! 쓸 데 없는 책 보지 말고 학교공부나 해!!! 나도 마찬가지지만 초중고교 다니면서 시험공부 외에 읽은 책이라곤 가끔 본 잡지 빼곤 제대로 된 단행본은 거의 없는 것 같다.그런 식으로 학창 시절을 보낸 이들이 자식들 낳아 역시 똑같은 소리를 해댄다.야....공부나 해라.쓸 데 없는 책 보지 말고...쓸 데 없는 책이라...성적 올리는 데 필요한 책 빼놓고는 모두 쓸 데 없는 책이라 이거지.
직업이 성인 대상 영어 강의를 하다보니 방학 때나 되어야 청소년들을 만나는데 가끔 방학을 맞이하여 외국에서 공부하는 유학생들이 영어 글쓰기 공부하러 내 강의를 들으러 올 때 나는 외국물을 먹은 적이 없는지라 여러가지를 물어본다.그 중 부러웠던 건 외국-주로 미국,캐나다-은 초중학교 때부터 책을 읽고 에세이를 체출하거나 토론하는 공부를 많이 한다는 것.우리나라에서 말하는 쓸 데 없는 공부를 많이 한다.내가 알아 본 바로는 중학교 때 골딩<파리 대왕>오웰<동물 농장>하퍼 리<앵무새 이야기>등을 공부한다고 한다.몇 년 전 소설가 이호철 씨가 문학을 지망하는 젊은이를 대상으로 강의하면서 우리나라 초중고에서 맨날 문제집이나 참고서만 공부시키는 통에 독서량에서 너무 문학대국에 뒤지는데 이를 대학 가서는 도저히 따라 잡을 수가 없다고 안타까워 한 적이 있다.하긴 대학에 간들 뭐 얼마나 그동안 못 읽는 책을 읽는 것 같지도 않지만.나도 이호철 씨의 주장에 공감한다.그래서 겁나게 억울하다.
먹고 사느라고 직업활동을 하는 사람이 독서를 한다고 하면 그 뭐라더라 자기 계발 도서라든가 뭐 그런거 안하고 인문 사회과학서적을 읽으면 이상하게 보는 풍조가 있다.여가를 보내기 위해 낚시를 한다거나 운동을 한다거나 하면 음....그렇구나 하고 이해해 주지만 각주가 붙은 사상사나 역사책을 붙들고 있거나 하면 그런 책을 왜 보는가 하고 물어 보는 이들이 있다.더군다나 내가 대학교육을 담당하는 사람도 아니고 그러니 왜 저런 짓을 하나 답답한 모양이다.내가 대학원을 나온 것도 아니니 박사과정 들어갈 것도 아닌데 왜 저러는가....하고 궁금한 표정들.더 솔직한 이들은 그렇게 질문한다.그런 거 해서 뭐해요? 즉 먹고 사는 데 도움도 안 되는 거 왜 하느냐 그 얘기다.낚시가 취미인 사람에게 어부가 되려고 하느냐고 묻지는 않는다.조기 축구를 열심히 하는 중년 남자에게 축구선수가 되려고 하느냐고 묻지도 않는다.그런데 왜 인문사회과학 서적을 읽는 이에겐 그런 거 해서 뭐하느냐고 물을까.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