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열 씨의 주장 중 검토해야 할 것
1.정조가 노론 계열의 사주로 독살되었다는 설은 다산을 비홋한 몇 몇 남인 계열 학자들에 의해 전문형식으로 기록되어 있고 옛부터 구전되던 말이다 ----다산의 무슨 책에 그런 내용이 있는가.이인화 씨도 자기 고향에 이런 전설이 어른들 사이에 구전되어 온다는 일화를 소개하고 있다.
2.왕권을 제약하는 입장이며 개화파의 선구가 되는 노론,왕권의 신장 및 절대주의 왕정 아래서의 부국강병을 이상으로 하며 수구파의 핵심을 이루는 남인 --- 이런 계보 파악은 이상하다.위정척사파는 노론이 아닌가? 이항로,최익현은 분명 노론이다.이들이 어찌 개화파라고 할 수 있나? 어윤중이나 박정양을 노론으로 분류하는 거야 그들이 개화파니까 문제가 없다고 쳐도.
그 외 머리 속에 떠오른 대로 써 본 것.
정조는 5경과 같은 고문에 나오는 주나라를 모범으로 삼아 강력한 왕권을 행사하려 했고 이는 4서를 정통으로 신봉하는 노론 사대부들과 이념상 충돌할 수 밖에 없었다.
이인화 씨는 정조의 왕권강화책을 박정희 통치와 동렬에 놓고 있다.절대권력은 민주주의로 가기 위한 불가피한 통과의례라는 주장은 어떤 평가를 내려야 하는가?
경종은 이복동생(훗날이 영조)이 준 게장을 먹고 죽었다.경종의 어머니는 희빈 장 씨.그녀의 지지자들은 남인.희빈 장 씨가 주술로 저주를 걸어 인현왕후를 해꼬지했다는 소문을 퍼뜨린 이가 최무수리인 숙빈 최씨(영조의 생모).최 씨가 경종에게 독약 든 게장을 보내게 했다는 소문은?
정약용이 천주교도란 이유를 들어 처음으로탄핵한 이들은 노론이 아니라 같은 남인 계열이었다.물론 이땐 금방 복귀하긴 했다.남인들이 천주교도가 많다는 선입견이 많으나 남인들이라고 해서 모두 천주교도에게 관용을 베풀진 않았단 사실은 이 시대 공부하는 초보자가 명심해야 할 것.
순조 시대 때 대박해를 맞은 남인은 대원군 때 다시 전성기를 맞는다.대원군 주변에 모인 남인들의 성향은 어떠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