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탁오는 중국에서 뿐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오랜동안 금기시된 인물이었다.한국의 이탁오라 할 만한 허균도 오랜동안 우리나라에서 기피인물이었다.연암 소설 연구로 유명한 이가원 씨가 일제시대 때 허균을 연구하려고 문헌을 찾는데 통제구역에 그의 책이 있었다고 한다.반항적인 사상가였기에 그런 인물을 연구하는 것을 막으려고 그랬나 보다.또 이가원 씨가 중국의 유교에 대해 알아보려고 1969년 대만을 갔는데 역시 이 곳에선 이탁오 책이 금서였다고 한다.명청시대를 넘어 이렇게까지 그의 사상은 끈질기게 금서의 딱지가 붙었다.

허균이 처음 중국을 방문한 해는 1597년.두 세번째 방문인 1615-16년 경에 이탁오의 저서를 사서 국내로 들여온 것 같다.유자를 비꼬는 행동이나 글은 이탁오를 알기 전부터 허균의 개성이었는데 이탁오가 자신과 비슷한 면모를 보인 사실을 알고 더 그를 좋아하게 된 것 같다.지금 전하는 허균의 문집 <성소부부곡>엔 이탁오에 대한 글이나 책을 인용한 대목이 없다.이는 허균이 처음 문집을 엮었던 1611년까진 이탁오의 책을 읽지 않은 증거가 된다.하지만 허균이 죽던 해에 엮은 <한정록>권13에는 이탁오의 책이 한구절 인용되어 있다.여기엔 이탁오가 아니라 이 씨 <분서>라고만 되어 있다.슬프게도 허균 역시 반역죄로 사형당한 뒤엔 기피 인물이 되어 그의 글을 인용하는 이들은 그냥 허씨라고만 썼으니 기이한 인연이다.

허균이나 이탁오나 금기시된 인물.허균이 이탁오의 사상에 영향을 받았슴을 알게 된 것도 1980년대에야 비로소 가능했다.사제지간인 이가원,허경진이 허균의 책을 뒤지고 뒤져 찾아낸 것.한정록 전 20권(물론 요즘의 권이 아니다)중 권 13에는 옛사람들의 취미 생활 49칙을 소개했는데 여기에서 이탁오의 글 인용을 찾아낸 것이다.

이가원의 허균 연구서가 <유교반도 허균>이다.반역의 무리...의미심장한 제목 아닌가.중국에서는 이탁오를 일컬어 유교반도라고 했는데 조선에서 이에 대응하는 인물이 허균이라는 의미일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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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쟈 2008-07-27 22: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유교반도 허균>이란 책도 있군요! 덕분에 알았습니다.^^

노이에자이트 2008-07-27 23: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동아시아 냄새나는 책도 소개하려구요.이 책은 분량도 얄팍해서 읽는 데 큰 부담은 없어요.

파란여우 2008-07-29 2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항아들은 당사자에게는 고달픈 삶이었지만 후대의 관찰자들에게는 또 매력적이라는.
저도 덕분에 책 한 권 주섬주섬 챙겼습니다.
더위에 무탈하시길 빕니다.^^

노이에자이트 2008-07-29 23: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허균은 성 해방은 주장했지만 본인만 즐기고(여성편력이 꽤 화려했죠)아내에겐 기회를 주지 않은 듯합니다.하하하.결국 마지막 그의 죽음을 재촉한 것은 내연 관계였던 여인의 실토...친구였던 이이첨이 정적이 되면서 그의 운명은 비참하게 예정되어 있던 게 아닐까요? 친구끼리 광해군에게 딸을 서로 후궁으로 바치려다가 사이가 틀어졌으니...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