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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바닥에서
막심 고리키 지음, 최윤락 옮김 / 지만지드라마 / 2019년 7월
평점 :
<베르나르다 알바의 집>에 관한 서평을 쓸 때, 처음 희곡을 접하시는 분들께 <밑바닥에서>를 권하지 않은 이유는 단 한가지이다. 이 극은 지극히 (이 말로는 조금도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비극적이고, 암울하다. 살을 에는 바람과 눈폭풍 속에 잠시 존재했던 옅은 온기가 순식간에 사라졌을 때 오히려 그 온기를 원망하게 되듯이, 이 극은 감정적으로 매우 잔인하다. 그래서 이 극을 나는 지독히 사랑한다. <베르나르다 알바의 집>과 마찬가지로 나는 <밑바닥에서>를 뮤지컬로 처음 접했다. 아직도 ‘배우’를 맡으신 박민성 배우님의 넘버에 압도되어(정말이지, 뮤지컬을 볼 때 그런 감정을 느꼈던 건 그 때가 유일했다)전율했던 기억이 난다.
“내가 여기서 벗어날 수 없다고 생각해? 여기서 벗어날 거야… 껍데기를 깨고, 반드시 여기에서 벗어나고 말 거야…”
“자유를 원하지만, 제기랄!
쇠사슬이 끊어지지 않네.”
<밑바닥에서>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극에 나오는 인물들은 전부(정확히 말하면, 단 한 사람만 빼고)하층민이자 "밑바닥 인생"을 살아간다. 그들은 간혹 과거의 영광을 되뇌일 뿐(그 대표적인 인물은 배우와 사틴이다), 지독한 무력함에 빠져 이에서 빠져나올 희망조차 품지 못한다. 그들은 오히려 탈출을 갈망하는 스스로의 욕망을 부정함으로써, 또는 욕망을 드러내는 동시에 무기력하게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서' 지긋지긋한 현실을 견뎌내고 있다. 같은 여인숙에서 동고동락하면서도 그들은 서로에게 폭언을 퍼붓고, 악착같이 자신의 생존을 우선시한다. 여인숙에 거주하는 모든 인물은 굶주림과 가난 때문에, 그리고 이를 잊기 위해 들이킨 알코올 때문에 신경이 잔뜩 곤두서 있다. 이 극에서 가장 밝은 성격을 가진 페펠(개인적으로는 아직도 페페르라는 호칭이 더 익숙하다) 또한 그렇다. 시계의 값을 계산할 때, 바실리사와의 결별을 얘기할 때, 양심의 무의미함을 얘기할 때 페펠은 쾌활한 청년에서 거칠고 날이 선 말투를 가진 냉소적인 하층민으로 그 위치가 뒤바뀐다.
"우리들은 모두 이 지구의 순례자라고 할 수 있지... 들은 적도 있는데, 우리의 지구도 넓은 하늘로 보면 순례자라고들 하잖소."
이때 갑작스럽게도 단조로운 하층민들의 삶을 뒤흔들고, 희망을 품게 만들고 혼란에 빠트릴 인물, 즉 '루카'라는 이름의 노인이 등장한다. 루카는 언제나 가난하고 억척스럽게 살아야만 했던 안나의 삶을 위로하고 그가 평온하게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돕는다. 또한 루카는 알코올 중독에 빠진 배우에게 중독을 무료로 치료해 주는 병원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절제를 통해 새로운 삶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심어준다. 이때 이 극에서 탈출이라는 희망을 꿈꾸나 절망으로 추락하는, 다시 밑바닥 인생으로 회귀하는 대표적인 인물은 두 명이다. 페펠은 바실리사의 정부 역할을 그만하고 나타샤와 새로운 삶을 꾸려나가기를 원한다. 알코올 중독으로 자신의 이름조차 잊어버린 배우는 알코올 중독을 치료해주는 병원이 있다는 말을 듣고 술을 끊어 스스로의 이름을 되찾는 데 성공한다.
“무슨 말을 하라는 거야? 억지로 사랑을 얻을 수는 없어, 자비를 구걸하는 것도, 내 성격에 맞지 않아… 진실을 말해줘서 고맙군…”
“우리들은 짐승이지… 우리들은 서로 길들여야 해… 그런데 당신은 내게 뭘 가르쳤지?”
“그리고 어쩌면 내가 사랑하고 있었던 것은 바스, 당신이 아니고… 내 희망을, 그 희망을 당신 속에서 사랑하고 있었는지 몰라… 이해하겠어? 나는 기다리고 있어, 당신이 나를 끌어내줄 것을…”
먼저 페펠의 경우, 그는 애정이 없었던 바실리사와의 관계를 종결짓고 사랑하는 나스탸와 맺어지기를 꿈꾼다. 루카 또한 페펠의 선택을 옳다고 말하며, 아주 멀리 떠나가라고 충고한다. 루카는 또한 나타샤에게 인간에 대한 신뢰를 가르친다. 그러나 바실리사는 페펠의 마음이 흔들릴 때마다(심지어 바실리사는 페펠보다 그 마음을 먼저 알아챈다) 나타샤를 학대한다. 페펠은 (바실리사의 정부가 되면서 페펠은 바실리사의 남편 때문에 감옥에 두 번이나 다녀왔다) 나타샤와 어디로든 떠나 자유롭게 살아가고자 하나 결코 바실리사가 자신을 안전하게 보내주리라고 믿지 못한다. 당연하게도, 페펠이 나타샤에게 사랑을 고백하고 두 사람이 맺어져 떠나기로 결심한 그 순간, 바실리사가 등장하고, 난투극이 벌어진다. 이 과정에서, 페펠의 실수로 바실리사의 남편이 사망하고 만다. 이때 페펠을 나락으로 끌고 간 것은 한때 사랑하는 이를 경찰에 넘기려 한 바실리사가 아니다. 나타샤에 의해, 페펠의 순수했던 사랑과 희망은 바실리사의 남편을 죽이기 위한 공모로 전락한다.
“얼마나 치욕스러운 일인지 넌 모를 거야, 이름을 잃어버린다는 것이!”
“아이고, 노래를 망쳤어… 그 바, 바보 놈이!”
두 번째로 배우의 경우, 그는 친구 사틴에게 언제나 '배우'라는 직업이 얼마나 영광스럽고 자랑스러운지, 자신이 배우로서의 자신감과 재능을 타고났으며 얼마나 큰 환호성을 받으며 살아왔는지 얘기하지만, 지금은 자신의 이름조차 외울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렸다. 그는 밑바닥 인생을 살면서 과거를 언급하는 인물들 중 가장 이전의 삶에 애착이 강한 인물이다. 그 애착은 '중독은 얼마든지 치료할 수 있고 새 삶을 찾을 수 있다'는 루카의 말에 의해 일깨워진다. 알코올 중독자였던 그는 심지어 술을 완전히 끊고 포즈를 취한 채 독백을 해 낸 채로 자신의 예명을 알려준 뒤(나는 처음 이 극을 접했을 때부터 아직도 이 이름을 외우고 있다. 그만큼 그 넘버는 강력했다.) 미련없이 여인숙을 떠나 도시로 향하려 한다. 하지만 배우의 마지막은 알코올 중독을 치료하고 있다는 근황이 아니다. 배우는 4막에서 여전히 여인숙에 머무르고, 자신을 위해 기도해 줄 것을 마지막으로 청한 뒤 공터에서 목을 멘 모습이 발견된 채로 극은 막을 내린다.
"나는 거짓말을 알아! 또 정신력이 약한 자... 남의 노력과 희생으로 살아가는 자, 그런 놈들에게도 거짓말은 필요해... 거짓말을 든든한 버팀목으로 삼고 있는 자도 있고, 그와는 달리, 거짓말을 방패로 삼는 자도 있기 마련이야... 하지만 스스로가 자신의 주인인 자...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않고, 남을 수단으로 삼을 생각이 전혀 없는 자에게는 거짓말이 무용지물이야!"
"사기꾼이라고 해서 좋은 말 못하란 법 있어? 정직한 사람도... 가끔은 사기꾼이 하는 말을 하기도 해! 음... 지금은 많이 잊었지만 아직 아는 건 많아! 그 할배? 지혜로운 사람이었어!... 나에게도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 있지, 녹슨 동전이 산을 만난 것처럼..."
비극적이고 황량한 결말에 대한 복선은 사실 3막 중간에 등장한다. 루카는 진실의 땅을 찾지 못한 유형수가 결국 목을 메어 죽었다고 페펠과 나스탸에게 말한다. 나스탸의 말대로, "속았다고 생각하니 참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루카는 극 중간에 돌연히 우크라이나에서 새로운 종교를 찾기 위해 퇴장하려 한다. 아니, 퇴장해 버리려 한다. 페페르가 홀로 도주한 4막이 시작되자, 루카의 존재, 즉 희망과 이에 대한 갈증 또한 사라진다. 남겨진 사람들은 루카가 쥐어준 뒤 다시 '빼앗아 간' 삶에 대하여 반추하나(이 시점에 다다른 뒤에야 그들은 서로의 말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한다), 결국 그들에게는 "밤새 노래를 불러" 자신들의 운명을 애도하고 슬퍼할 자유만이 허용된다. 물론 이조차도 배우의 죽음으로 종결되지 못한 채 극은 막을 내린다.
희곡 <밑바닥에서>는 절망이 아니라 삶에 대한 의지와 희망을 노래한다. 여인숙에 머무르는 하층민들은 현재의 삶에 좌절하기도 하나(이 극의 결말이 얼마나 비극적인지를 보면 알 수 있다)결국 사틴과 같이 삶을 돌아보고, 이를 이해하려고 한다. 당연하게도, 그 과정은 치욕스럽고 고통스럽다. 하지만 그들은 이를 딛고 '나아가고자' 한다. 아무리 절망적인 상황에 처해 있더라도 그들은 새로운 삶과 희망을 꿈꾼다. <밑바닥에서>는 '파멸'이라는 소재를 사랑하는 나에게도 칼바람에 심장이 베이듯 고통스러운, 하지만 그만큼 대단한 작품이었다. 이 극을 읽을 때마다, 나 역시 한 발짝 더 나아가고자 마음을 먹곤 한다. 지금이 아무리 괴롭더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