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에서 한아뿐
정세랑 지음 / 난다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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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에서 한아뿐. 하나뿐이 아닌 한아뿐. 소설의 제목은 이야기가 얼마나 대책없이 로맨틱하고 많은 사랑을 내포하고 있는지를 여상히 드러내고 있다. 정세랑 월드의 팬이면서, <보건교사 안은영>을 넷플릭스 시리즈로도 전부 접하고 <아라의 소설>까지 완독했으면서, 이제야 이 책을 접하게 된 것을 후회하고 있다. 이 책을 접하게 된 계기는 <아라의 소설>을 읽고 정세랑 월드에 본격적으로 빠져봐야겠다는 결심과, <독파>라는 완독챌린지 앱이다. <독파>에서는 무료로 진행되는 챌린지도 있고, 첫 챌린지의 참가 비용은 무료이며 정말 좋은 책들을 중심으로 챌린지가 진행 중이니, 관심이 있으신 분들은 다운받아서 한번 도전해 보시는 것을 권해드린다.

<보건교사 안은영>의 은영과 <지구에서 한아뿐>의 한아는 많은 특징을 공유하고 있다. 수수한 외모를 가지고 있다. '이해자', '동반자'이자 함께 미션을 클리어하는 동료를 얻는다. 무엇보다도 둘은 자신만의 힘으로 선한 일을 계속해서 해 나간다. 설령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데도 말이다. 차이점이 있다면, 은영은 학생들과 학교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 싸우는 반면, 한아는 환경에 대한 자신의 신념과 지구 밖의 존재를 위해 묵묵히 일한다는 점이다.

한아에게는 '경민'이라는, 어쩌면 그 자유로움이 매력적이고 동시에 대책없이 무책임하게만 느껴지는 남자친구가 있다. 옷과 추억을 보존하여 오랫동안 간직할 수 있게끔 도와주는 한아의 일상에서, 갑자기 경민의 태도가 헌신적으로 뒤바뀌고 기이한 현상이 일어나면서 소설은 시작된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처음에는 소설의 설정을 그다지 '멋지고 로맨틱하다'고만 받아들이지는 못했다. 다른 세상을 향해 '말없이' 떠나버린 진짜 경민(X라고 칭함)은 물론이고, 첫 눈에 반해 타인의 모습을 빌려 다가와 마음을 쏟아내는 신원 미상의 존재라니. 나라면 호기심을 가지는 것과는 상관없이, 그 상황을 한아만큼 잘 받아들이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내 생각보다 한아는 훨씬 아량이 깊고 담대한 사람이었다.

"나는 안 될까. 처음부터 자기소개를 제대로 했으면 좋았겠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게 더 나은 방법일 것 같았어. 그래도 나는 안 될까. 너를 직접 만나려고 2만 광년을 왔어. 내 별과 모두와 모든 것과 자유 여행권을 버리고. 그걸 너에게 이해해달라거나 보상해달라고 요구하는 건 아냐. 그냥 고려해달라는 거야. 너한테 아무것도 바라지 않아. 그냥 내 바람을 말하는 거야. 필요한 만큼 생각해봐도 좋아. 기다릴게. 사실 지금 이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것으로도 난 괜찮은 것 같아. 우주가 아무리 넓어도 직접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이야기들이 있으니까. 이거면 됐어."

"너는 너무 멀리 있는데, 나는 왜 널 가깝게 느낄까."

소설에서는 한아를 사랑하는 경민의 마음만큼이나 지구를 사랑하는 한아와 주변 사람들의 마음이 여상히 드러난다. 한아는 더 이상 입지 못하는 옷들과 추억을을 패스트 패션을 거슬러 올라가듯이 되새기고 되살리는 일을 한다. 한아와 유리는 비건 레스토랑에 대한 사랑을 이야기한다. 한아와 경민은 우주인들을 돕기 위해 기이하고 짧은 모험을 하고, 둘의 결혼식에는 자투리천을 이용한 드레스와 비닐을 쓰지 않은 꽃다발이 쓰였다. 단 한 발자국이라도, 지구에 대한 사랑이 담긴 한아의 여정은 독자들의 마음을 움직인다.

'아폴로'에 대한 주영의 마음과 아폴로의 꿈을 향한 도전 또한 사랑스럽고 멋지다. 아무리 자신의 인생을 타인에게 쏟는다고 비난을 듣는다고 해도, 누군가 혹은 무언가를 향한 진심은 반짝이며 빛나기 마련이다. 아폴로를 처음 만났을 때 주영이 토해내는 말은 날것이면서도 때묻지 않은 사랑과 확신으로 가득하다. 이런 사랑을 누가 말릴 수 있을까. 돌이켜보면, 누군가의 팬이 되는 경험을 한다는 것은 정말로 감사한 일이다. 그 사람 덕분에 나는 내일을 기대하며 눈을 뜨고, 자신의 마음에 기대 하루를 충만하게 살아갈 수 있었으니 말이다.

다시, 다시, 다시 태어나줘.

소설 속의 평화는 '진짜 경민(x라고 칭한다)'의 등장으로 인해 순간 뒤바뀐다. 혹은 뒤바뀌지 않는다. 사랑에 빠져든 채로 자신의 신념을 지키며 살던 인물들에게 x의 존재는 경민과 한아의 사랑을 방해하기 위한 장애물조차 되지 못한다. 그는 고작 '아폴로'와 그를 쫓아 우주로 떠난 주영의 소식을 전하기 위한 매개체로 전락했을 뿐이다. x와 경민은 끊임없이 대비된다. 죽어서 한아를 의지와는 관계없이 영영 떠나게 된 x와 돌아온 이후 평생 곁을 지킨 채 한아에게 한번 더 함께할 것을 청하는 경민. 에필로그에서 경민의 다음 생을 함께하자는 맹세를 나는 이 소설에서 제일 아끼고 사랑한다. 경민은 끝없이 한아를 속인다. 처음 다른 이의 몸으로 한아를 마주해 연인의 자리를 차지했을 때부터,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계약서 이야기를 할 때까지. 어떻게 보면 무서운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랑하기 때문에' 끝없이 두려움에 시달리고 이기심에 휘둘리고 마는 경민의 모습이 어떻게 보면 지극히 날것이고, 현실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런 계산 없이 자신의 마음을 그대로 내뱉고 마는 모습은 강한 마력이 있다. 경민도, 주영도.

많은 이들이 환경에 관심을 가지는 2022년, 나 역시 에코백과 텀블러를 사용하고(지나친 구입은 물론 지양하려 한다) 재활용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키링을 가방에 달거나 일주일에 한 번은 채식을 하고 있다. <지구에서 한아뿐>은 재출간된 소설이라 하더라도 이 시점에 읽기에 너무나 좋은 소설이다(특히, 경민과 한아의 결혼식은 11월이다). 부디 애정으로 가득 담긴 이 소설을 통해 환경과 누군가에 대한 애정을 더욱 키워나가시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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