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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지 않은 일 비비언 고닉 선집 3
비비언 고닉 지음, 김선형 옮김 / 글항아리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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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비언 고닉 선집의 마지막 작품인 <끝나지 않은 일>의 티저북 서평단으로 선정되어 작성하였습니다.


  비비언 고닉의 작품, 특히 비비언 고닉 선집의 첫 번째 책인, 엄마와 딸의 필연적인 애증관계를 다룬 첫 번째 작품인 <사나운 애착>을 읽은 사람이라면, 비비언 고닉은 자전적인 이야기를 날카로운 문체로 파고드는 작가임을 단번에 알 수 있다. 비비언 고닉은 서평, (래디컬 페미니즘으로부터 시작된)저널리즘, 에세이 등 다양한 형식의 이야기를 우리에게 안겨주었고, 그 이야기들은 항상 뉴욕의 브롱크스에 위치한 유대인 가정에서 자라온, 혹은 뉴욕에서 홀로 살고 있는 자전적인 경험으로부터 출발한다. 지극히 자전적인 이야기로부터 이야기를 꺼낸다는 점은 (필연적으로 다른 환경에서 다른 경험을 했을)독자와 화자를 격리시킨다는 의미가 아니다. 독자와 화자는 개인적인 이야기를 공유함으로써 서로를 보다 잘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즉, 비비언 고닉이라는 사람의 고유한 이야기는 글의 한계점이 아닌 출발점이 된다.   

  선집의 마지막권(비비언 고닉의 광팬을 자처하는 나로서는 슬프기 그지없다)인 <끝나지 않은 일>은 회고록과 문학 비평이라는 두 가지 장르(장르를 구별하는 것이 유의미한지는 모르겠지만)를 동시에 다룬다. 회고록과 비평이라는 글의 공통점은 비교적 확고한(회고록의 경우 재서술을 통해 점차 확고해지는) 주관이 개입된다는 점이다. 비비언 고닉의 맹렬하고 사나운, '날것'에 가까운 글은 일반적인 경험부터 지극히 사적이고, 어쩌면 밝히고 싶지 않아 할 만한 경험까지 거침없이 '까발리면서' 전개된다. 진솔한 것을 넘어 과감하고 거침없는 글에 매력을 느끼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내 경험으론, 인생 초년에 중요했던 책을 다시 읽다 보면 긴 의자에 누워 정신분석을 받는 느낌이 들 때가 꽤 있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 특히 어렸을 때부터 책을 끼고 다니는 '문학소녀'였던, 지금도 책을 사랑하는 '여성'에게 비비언 고닉은 첫 번째 문장에서부터 정곡을 찌르는 말로 인사를 건넨다. 점심시간 밥을 굶고 도서관에 콕 박혀 있던(그리고 고등학생 때는 도서관의 '야자실화'에 화를 냈던) 청소년기를 보낸 나는 첫 문장부터 마구 박수를 치면서 읽었다. 어릴 적 읽었던 책을 다시 읽으면 내가 동경했던 인물과 사랑했던 스토리의 디테일 하나하나가 당연히 머리에 남아있는 것 같지만(해리 포터 시리즈의 첫 문장을 모두가 외우고 있다는 것과 비슷하다), 시간이 지나 머리가 굵어진 다음 그 책을 다시 집어들면(그리고 어린이용으로 편집된 도서가 아닌 원작을 보게 되면) 내가 미처 깨닫지 못했던 것들이 눈에 들어온다. 

  그 예로, 대학 시절 자존감이 바닥을 쳤을 때 도움을 많이 받았던 <소공녀>를 들여다보자(비비언 고닉이 썼듯, 문학 작품은 하나의 강렬한 메세지를 향해 달려간다는 말을, 그리고 책의 의미가 단순히 다양한 세상을 여행하는 것만이 아니라는 점을 이 책을 통해 깨닫게 되었다). 한밤중에 일어나는 티 파티와 낡은 다락방이 낭만적이지만은 않다는 점을, 사라의 아버지인 크루 씨가 인도에서 부자가 되었다는 것이 그다지 달갑게만은 느껴지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사라의 자존심을 잡아 준 인물이 마리 앙투아네트라는 점도 완역판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다. 비교적 최근 어린이판으로 읽었던 <보물섬>이 만화 <원피스>처럼 낭만이 가득한 이야기가 아닌(<원피스>의 세계도 디아스포라에 가깝다), 위험하기 짝이 없는 스토리로 보이는 것도 내가 어른이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럼에도 (주로)시대적, 공간적 배경, 그리고 각색의 차이에서 오는 '불편함과 낯섦', 혹은 인물들의 '불완전성'은 절대로 어린 시절의 사랑을 멈추게 만들지 못한다. 독서의 의미를 단순히 '현실도피'로만 규정하는 애서가는 없을 것이다. 처음 도서관이나 서점에 처음 방문했던 때의 놀라움, 종이 특유의 향과 팔락거리는 감촉, 내가 좋아하던 서가나 의자, 무엇보다도 어린 시절의 자기 자신은 당시 읽었던 책과 단단하게 붙어 떨어지지 않게 된다. 우리는 어린 시절 사랑했던 책을 다시 읽고 끊임없이 회상하면서, 그 시절의 자신을 사랑하고 받아들이는 방법을 배운다. 그러므로 책에 대한 비평은 결국 자신으로부터 출발하는 것이 된다. 그리고 '나'라는 존재가 더이상 어리지 않더라도, 하나의 작품에 대한 감상이 '일인칭'으로부터 출발하는 현상은 계속된다. 드라마 <프로듀사>에서는 (정확하지는 않지만) '신디 씨의 노래를 들으면 그 시절의 자신을 떠올리게 될 것'이라는 위로가 등장한 적이 있는 것처럼 말이다. 

  첫 번째 챕터에서는 비비언 고닉이 글을 쓰기 시작하고, 저널리스트 겸 작가로 거듭나는 과정 또한 그려져 있다. 자기 자신을 알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자신을 정체화하고, 자신의 이야기를 반복해서 서사화하는 것이 필수적이다(서사화를 여러 차례에 걸쳐 진행될 때마다 디테일이든 핵심이든 그 내용은 달라지고, 이를 통해 우리는 '사실' 혹은 '진실', 그리고 '자신다움'에 가닿게 된다.). 이를 위해 (적어도 비비언 고닉에게)가장 효과적인 수단은 글이다. 글을 쓰면서, 즉, 엉켜있는 머릿속을 가시화하여 재배치하면서, 우리는 수많은 감정들을 마주하게 되고, 이를 공개하게 되면 느꼈던 감정과 불안은 극대화된다. 비비언 고닉이 글을 쓰기를 주저하는 사람에서 글쓰기를 직업으로 받아들인 사람이 되어가고, 그 과정에서 용기를 낸 경험을 통해 많은 용기를 얻었다. 꼭 글이 아니더라도,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산다는 꿈같은 상황에 처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용기임을 알려주었기 때문이다. 

  비비언 고닉 선집의 시작점인 <사나운 애착> 서평단 선정(당시의 나는 글을 쓰고 싶었다기보다는 엄마와 딸 사이의 관계를 보다 파고들려 했다.)을 계기로 알게 된 이 작가와 선집의 맹렬함과 솔직함은 더할 나위 없이 매력적이다. 비비언 고닉은 자신이 완벽한 사람이 아님을 특유의 '호전성'을 통해 드러내는데, 거침없이 할 말을 하고야 마는 화자에게 빠져들지 않을 독자는 없다고 생각해본다. personal journalism이라는 고닉의 언어를 파고드는 등 세심하고 치열한 편집은 이 책의 발돋움을 돕는다. 비비언 고닉 선집의 마지막 책인 <끝나지 않은 일>의 서평단으로 활동하면서, 거침없이 자신을 드러내는 작가와 나를 동일시하거나, 품었던 동경을 강화하는, 이를 통해 나 역시 자신에가 한발 더 다가가는 귀중한 경험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서평단에 선정된 독자에게 보내는 다정한 메세지에 대한 감사의 인사를 드리며 이 글을 마친다.  

  

#비비언고닉 #끝나지않은일 #글항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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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들리 러블리 - 로맨스릴러 단편선
배명은 외 지음 / 황금가지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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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 문제로 한동안 서평을 쓰지 못했고, 지금 키보드를 두드리는 손이 많이 느려졌다는 걸 절절하게 느끼고 있다(꼭 <파리의 클로딘>의 도입부 같군! 나는 클로딘처럼 그다지 낭만적이지 못하지만...) 감사하게도 황금가지 <데들리 러블리> 서평단에 당첨되어 다양하고 기발한 아홉 편의 이야기를 읽을 수 있었다. <데들리 러블리>에서는 예상치 못한 배경과 소재들이 등장하고, 작가들의 상상력이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으로 자유롭게 펼쳐진다. 정제되지 않은 '날것'의 이야기를 바로 옆에서 '듣고' 있는 것만 같다.

먼저 <휘파람을 불면>에 대하여 쓰자면, 이 소설은 현대에서 정체를 숨기고 살아가는 호랑이와 착호갑사의 후손이 마주하게 되는 이야기이다. 뗄레야 뗄 수 없는 사이이자 어떤 면에는 불구대천지의 원수라고도 할 수 있는 두 존재는 (어쩌면 당연하게도)착호갑사가 호랑이를 추격하고 발견하여 마주하게 된다. 착호갑사는 호랑이에게 동맹을 맺을 것을 제안하고, 호랑이는 이 제안에서 우위를 차지하지 못하고 착호갑사에게 휘둘린다. 이 위태로운 동맹은 어떻게 끝을 맺을까?

이 작품의 가장 큰 매력은 '착호갑사'와 '호랑이'라는 정체성이 조금도 손상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후자에 대하여 이야기하자면(전자는 스포일러를 방지하기 위해 제외하겠다) 호랑이는 장난감에 넘어갈 수밖에 없는 고양이과 동물, 전통설화 속 어수룩하고 순수하며 친근한 존재, 그리고 순식간에 목숨을 앗아갈 수 있는 위협적인 맹수라는 정체성을 작품 속에서 전부 드러내고 있다.

이 책에서 가장 좋아하는 단편은(단편 중에서 가장 길이가 긴 작품이기도 하다) <아무것도 아닌 누군가의 인어>이다. 여성의 일방적인 짝사랑과 희생으로 끝을 맺은 안데르센의 인어공주는 여러 차례 리메이크되었고, '인어'라는 매혹적인 존재는 때로는 사람을 매혹하여 목숨을 앗아가는 존재로, 때로는 보호를 필요로 하는 아름다운 존재로 등장하며 수많은 창작자들의 영감이 된다.

이 작품에서는 새로운 인물인 '근위대장'이 등장한다. 근위대장은 허영에 넘쳐 인어에게 관심을 두지 않던 왕자와는 달리 말을 하지 못하는 인어를 똑똑한 이라 여겨주고 아픈 다리를 걱정해주던 인물이다. 왕자와 함께 자랐지만 근위대장이 되어 그의 명령을 들을 수밖에 없는 존재이지만, 근위대장은 인어와 사랑에 빠져 함께 달아나고자 한다. 둘은 왕자의 손아귀와 욕망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아무것도 아닌 누군가의 인어>에서는 안데르센의 인어공주 이야기를 결말 직전까지 철저하게 따른다는 점에서 다른 이야기와 그 차이가 있다. 다만 왕자는 인어가 자신을 구했다는 것을 영영 알지 못한 존재가 아닌, 사실을 알면서도 '왕자비'를 택하고 왕자 대신 '왕'이 되기를 열망한다. 디즈니판에서 '우르술라'가(사랑하는 멜리사 맥카시라니!) 변한 '왕자비'는 진실을 알면서도 왕자와 함께 '왕비'라는 신분을 탐한다. 무엇보다도, 인어가 다리를 얻는 과정은 '동경'이나 '사랑'에서 탈피하여 탄탄하고 설득력 있는 서사와 함께 전개되어 독자를 매혹시킨다. '인어'라는 소재를 좋아하지 않는 독자분이더라도 이 소설에는 충분히 마음을 붙일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

고양이와 함께 사는 반려인 입장에서 <고양이 지옥>은 매우 흥미로웠다(강아지와 함께하는 반려인 분들도 아마 비슷한 감정을 느끼실 것이라 생각한다). 이 작품에서는 주거지 근처의 개와 고양이는 인식칩을 이식받고 생명에 관한 권리를 보호받는 통칭 '동네 개, 마을 고양이 법'이 시행되는, 일종의 '유토피아'를 배경으로 한 소설이다. 당연하게도(반려인 입장에서는 슬프게도), 유토피아는 균열을 달고 다닐 수밖에 없다. 동물권을 존중하는 직장에서 마을 고양이의 매력을 소개하는 일을 하는 오윤주 주무관은 고양이들의 사망 사건을 조사하다 그 원인이 '부동액'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작품은 드론을 이용해 부동액을 분사하여 고양이들을 고의로 살해하였다는 일종의 '살해 트릭'을 밝히고 전개되는데, 도무지 뚜렷한 동기를 찾을 수 없다(스포일러를 하자면, 고양이에게 화풀이를 하는 묻지마 범죄는 결코 아니다).

이 소설은 어떤 면에서는 '탐정소설'의 구조를 충실히 따르고 있으나, 진정한 매력은 주인공 오윤주의 업무를 중심으로 탄탄히 구축된, 동물권이 중시되는 유토피아적 세계관이 있다. 고양이들의 매력포인트를 소개하고 결연, 혹은 입양예정자가 있는 세계관은 소설 내의 뜻밖의 사건 외에는 더없이 사랑스럽다. 특히 '간식을 주지 마세요' 라는 수를 놓은 조끼를 입은 고양이 '뚱이'는 직접 만나보고 싶을 정도였다.

기묘하고 사랑스러운 이야기를 촘촘히 엮어 놓은 소설집인 <데들리 러블리>는 각 작가들의 독특한 상상력을 선보여주는, 아이스크림 같은 책이었다. 예측할 수 없는 달콤함과 쌉쌀함이 독자를 기다리고 있다. '로맨스릴러'라는 독특한 장르 이외에는 이 책의 통통 튀는 매력을 정의할 수 없을 것만 같다. 이 책의 단점을 굳이 지적해야 한다면, 이야기에 따라 약간의 편차가 존재한다는 점이다(모든 단편집의 특징이겠지만 말이다). 이 책에서는 sf, 동화, 로판과 같은 다양한 세계관을 다루고 있으니 새로운 장르를 찾아나서고 싶은 독자분들이 읽어보시면 좋을 것 같다. 어쩌면 '책태기'에 처해 있는 독자분들께는 가장 적합한 책이 아닐까 생각한다. 생각하지 못한 이야기들이 펼쳐지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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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는 그대로 알제리 나의 첫 다문화 수업 7
박연구원 지음 / 초록비책공방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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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제리'라는 나라는 익숙하지 않은 지명과는 달리 생각보다 우리와 가까운 나라다. 알제리는 조르주 페렉의 <사물들>,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의 배경이 된 나라이기도 하고, 이브 생 로랑과 알베르 카뮈는 프랑스계 알제리 이민자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우리는(적어도 나의 경우는) 알제리의 문화를 프랑스의 문학이나 문화의 일부분을 통해서만 주로 접해 왔다. 생텍쥐페리의 소설 <어린 왕자>의 배경인 사하라 사막과 알베르 카뮈의 소설 <페스트>의 배경이자 해안 도시인 오랑이 동시에 위치한(알제리는 아프리카 최북단에 위치한 국가이며, 아프리카에서 가장 큰 국가이기도 하다) 매력적인 나라 알제리는 '눈부신 햇빛'으로 우리를 반겨 준다.

죽음이 눈앞에 있는 그런 상황에서 필기구 없이 자신의 피로 독립을 노래하는 시를 썼다는 건 얼마나 위대한 일인가.

알제리와 프랑스와의 연관성이(슬프게도 프랑스는 가해자가 되어 알제리에게 혁명가적 정신을 물려준다) 드러나는 부분은 '국가'이다. '카사망'이라는 이름의 국가는 '서약'을 의미한다. 우리나라의 이육사 시인으로 비유할 수 있는 인물인 독립운동가이자 시인인 무프디 자카리아는 <글을 쓸 펜조차 없던 상황에서 감방 벽에 자신의 피로 가사를 썼다>고 한다. 이 책은 알제리의 숭고하고 아름다운 국가의 가사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큐알코드를 통해 알제리의 국가를 직접 들어볼 수 있도록 독자들에게 편의를 제공하고 있다.

동물을 사랑하는 사람은 분명 이 책을 사랑할 것이라 생각한다. 알제리의 마스코트이자 <어린 왕자>의 주역인 사막여우가 등장하기 때문이다. 월드컵이 한창 벌어지고 있는 지금 알제리와 축구를 연관짓는다면, 알제리는 축구선수 지단의 고향이기도 하며, 알제리 축구 대표 팀의 애칭은 '사막여우들'이다.

분명히 '사막여우'라는 동물이 유명함에도 불구하고, 알제리는 우리나라보다 비록 기온이 높을지는 몰라도 매우 습하기 때문에 추운 겨울이 기다리는 장소이기도 하다. 알제리의 광대한 영토는 알제리의 기후를 하나로 설명하기 어렵게 만들기도 하고(단적으로 서울과 부산, 서울과 제주도의 날씨가 같다고 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그만큼 알제리를 다채롭고 매력적인 장소로 만들기도 한다. 건기와 우기가 반복되고 언제든지 비가 쏟아질 법한 겨울이 기다리는 북부와는 달리, 알제리 남부에는 비가 거의 오지 않는다(알제리 역시 최근 기후 이상의 여파를 맞고 있다고 한다). 여름의 경우, 알제리 북부의 최고 기온은 47도, 남부의 최고 기온은 50도이며 햇빛이 워낙 강해 얇고 긴 옷과 선글라스가 필수이다. '사막'하면 떠올릴 수 있는 이미지처럼 남부에는 모래폭풍이 불기도 한다.

알제리의 도시는 대표적으로 알제와 오랑이 있다.

수도 알제의 경우 서울과 같이 높은 인구 밀집도를 자랑한다. 대중교통의 사정은 좋지 못해 사람들은 주로 택시나 자가용을 이용해야 하며, 프랑스 식민 지배의 흔적으로 시내에는 프랑스식으로 지어진 관공서들이 전통적인 양식으로 지어진 건물들과 뒤섞여 이국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소설 <페스트>의 배경이자 자유롭고 개방적인 분위기를 자랑하는 항구 도시 오랑은 스페인과 오스만 제국의 지배를 번갈아가며 받은 탓에 여러 문화가 공존하고 있다. 항구 도시 오랑은 알제리의 경제적 요충지이기도 하며, 다른 나라와 활발히 교류가 이루어지는 만큼 개방적인 분위기를 자랑한다.

역사학을 전공하면서 <카르타고>라는 나라에 대해서는 수도 없이 들어봤고 지도로도 많이 접해봤지만, 카르타고가 현대의 알제리에 위치하는 곳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포에니 전쟁은 1차, 2차, 3차로 나뉜다. 로마의 시칠리아 탈환을 위한 1차 전쟁과 알프스 산맥을 넘은 카르타고의 명장 한니발(지금은 '양들의 침묵'에 나오는 빌런의 이름으로 아는 사람이 더 많을 것이다)과 로마의 장군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가 등장하는 2차 전쟁은 전부 로마의 승리로 끝난다. 사실상 카르타고를 섬멸하기 위하여 로마가 구실을 만들어 발발한 3차 전쟁은 카르타고가 완전히 멸망하면서 막을 내린다. 이후 북부 아프리카 지역은 로마에 귀속되며, 이후 이 지역은 이슬람교가 유입되고 스페인과 오스만 제국의 지배 하에 놓이게 된다.

프랑스의 알제리 지배는 '후세인 데이 부채 사건'으로부터 시작된다. 섭정 후세인(후세인 데이)은 프랑스가 알제리에게서 진 빚을 받아내고 협상을 하는 과정에서 납득할 수 없는 제안을 받고 결국 프랑스 영사인 피에르 드발의 뺨을 부채로 치게 된다. 프랑스는 이 사건을 구실로 삼아 알제리에 군대를 보내고 알제를 점령하기에 이른다. 1834년에 알제리에 프랑스 총독이 임명되면서 알제리 정복 전쟁이 열린다. 이때, 알제리군은 프랑스군의 압도적인 기술적 우위를 게릴라전이라는 전술을 통해 극복하게 된다. 결국 알제리는 알제리의 3분의 2에 해당하는 지역의 자치권을 인정받는 '타프나 조약'을 맺으면서 전쟁에서 사실상 승리하게 되나, 프랑스군은 1842년부터 1872년까지 알제리를 향한 손길을 뻗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책에는 '프랑스에게 알제리는 영국의 인도와 같았다'는 표현이 나온다. 프랑스는 알제리를 '프랑스의 일부'로 융화하기 위하여 많은 노력을 기울였으나, 이는 제도에 한정된 것이었지 알제리 국민을 향한 것은 아니었다. 알제리인들은 수도 없이 부당한 차별에 시달려야만 했다. 제 1, 2차 세계대전에서도 알제리 국민들은 프랑스를 위해 참전할 것을 요구받았고 희생당했다. 그러나 제 2차 세계 대전에서 프랑스가 승리한 뒤에도 독립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결국 1954년 11월 1일 알제리는 독립 전쟁을 시작한다. 결국 알제리의 독립은 샤를 드골의 등장으로 인해 1962년 3년 에비앙 합의를 통해 이루어지게 된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독립은 많은 혼란을 초래했다. 친프랑스계 사람들(하르키)은 프랑스 정부에 협조했으나, 알제리인의 멸시를 받는 것은 당연했고 프랑스로부터의 보호는 조금도 받을 수 없었다. 1962년에는 알제리에 거주하는 프랑스 출신 사람들(피에누아)가 학살당하는 '오랑 학살 사건'이 발생하기도 한다.

알베르 카뮈의 소설 속 알제리에 대하여 잠깐 알아보자면, <이방인>에는 알제리의 날씨가 등장한다. 강렬한 햇빛이 내리쬐는 바닷가나 무덤가로 향하는 길 자신을 따라오는 뜨거운 태양처럼 말이다. 뫼르소는 살인 동기를 "햇빛이 눈부셔서"라고 말하며 자신을 변호하지 않는다. 그는 진실하기에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는 운명에 처한다. <페스트>에 대해 첨언하자면, 실제로 오랑은 1849년 콜레라로 인해 많은 사람이 사망한 일이 있었고, 카뮈는 '흑사병'이란 소재를 통해 소설을 집필했다고 한다.

알제리라는 낯설고 익숙한 나라를(한 나라에 대한 지식은 방대할 수밖에 없다) 편안한 문체의 책으로 접하고 가까워질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여긴다. 알제리에 대한 친밀감을 이 책을 통해 많이 쌓을 수 있었으니 말이다. 이 시리즈는 현재 올림픽이 열리는 나라인 '카타르'에 대하여도 서술하고 있으니(또한 알제리에 대한 내용 중에도 축구에 관한 지식이 많이 포함되어 있으니), 알제리를 알고자 하시는 분 외에도 축구에 관심이 있으신 분이라면 즐겁게 읽으실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슬픈 역사를 지닌 아름다운 나라, 대문호의 작품의 영감이자 배경이 된 나라 알제리를 직접 방문해 볼 날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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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윈 영의 악의 기원
박지리 지음 / 사계절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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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could be bound in a nutshell, and count myself a king of infinite space, were it not that i have bad dreams.

hamlet, william shakespeare.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한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다.

데미안, 헤르만 헤세.

<데미안>의 새와는 달리, 다윈과 니스는 알을 깨고 나오는 것을 거부한다(러너의 경우, 무력한 존재가 호두 안으로 회귀한다는 표현이 보다 적합할 것이다) - 신(1지구)은 자신을 거부할 것이 분명하므로. 그들은 대신 '호두'처럼 자신의 세계를 단단하게 구축한다. 호두 안에 들어있는 것은 새롭게 지저귀는 생명이 아니므로, 호두가 깨지려면 호두알의 의사와 관계없는 바깥으로부터의 '강한 충격'이 요구된다. 이때, 호두는 단단한 껍질, 즉 기득권층의 안락함과 삶의 주도권을 남의 손에 내어주기를 거부한다. 그래서 그들은 모자를 한 겹 더 뒤집어쓰고 끈을 잡기로 선택한다. 그들은 '비상' 대신 '머무름'을 택하면서 이전의 자신에게 종말을 고한다.

<다윈 영의 악의 기원>은 서울예술단의 동명의 창작가무극을 통해서 접하게 되었다 - 당시 다른 진로를 준비하느라 삼연 중 단 한 차례도 볼 수 없었던 게 혼자 너무 서러웠다(뒤늦게 접한 넘버(뮤지컬의 노래를 말한다)는 왜 그토록 아름다운지!). 박지리 작가님의 <다윈 영의 악의 기원>을 처음 책으로 접했을 때는 누구든지 분량의 압박을 느낄 수밖에 없을 것이다 - 나처럼 이미 그 작품의 팬인 사람한테도 말이다. 이 책은 총 856페이지이다. 하지만, 다른 분들께 내가 쓴 후기는 다음과 같다: "저는 공연 못 보게 된 상황에서 거의 울면서 읽었어요 너무 재밌더라구요ㅋㅋㅋㅋㅋㅋ 두꺼운 게 오히려 되게 반가웠던 책이었어요!"

<다윈 영의 악의 기원>은 두꺼운 책을 짊어지고 다닐 만한(이북을 선호하신다면 관계가 없을지도 모르겠다) 가치가 분명히 있다. 먼저, 청소년 소설이기 때문에 문장과 서사, 캐릭터 간의 관계 및 갈등이 명확하다. 두 번째로, 이 책은 하나의 사회 혹은 언뜻 등장하고 말 법한 조연이 가진 사소한 이면까지 설득력 있게 서술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가장 공감할 수 있었던 인물의 서사는 주연인 '루미 헌터'외에도 조연인 '조이 헌터'의 이야기였다. 이 소설은 그만큼 높은 몰입감과 완성도를 자랑한다.

이 책은 주로 1지구 아이들(예외적으로 2지구와 3지구 아이들까지)이 입학하는 '프라임 스쿨'을 배경으로 한다. 기숙사제 명문고라는 배경은 확실히 매력적이다. '이튼 스쿨'을 배경으로 하는 <다시 찾은 브라이즈헤드>나 <모리스>처럼 말이다. 이 폐쇄적인 공간은 다윈의 '완벽성'과 '무지함', 사건의 발단, 레오가 아버지에 대하여 느끼는 양가 감정, 레오와 다윈과의 우정, 루미의 열등감, 그리고 다윈이 느끼는 죄책감과 불안감을 종합적으로 표현해낸다. 9지구가 가지는 삭막함과 황량함 또한 이 소설의 현실적이고 매력적인 부분 중 하나이다. '얻을 게 없어 범죄가 일어나지 않는다'는 이곳은 다윈과 루미의 목숨을 내걸지 않고도 힌트를 얻을 수 있는 곳이 된다.

이 책에 나오는 캐릭터들은 지극히 입체적이다. 대표적으로, 루미는 진실을 찾고자 하는 영민한 소녀의 틀에 갇히지 않는다. 삼촌의 죽음을 밝히는 데 집착하는 루미의 마음에는 가족애가 아닌 보다 높은 지위에 대한 욕망이 기저에 깔려 있으며, 특권 의식, 인정 욕구, 그리고 허영을 미처 감추지 못한다. 다윈의 틀에 짜맞춘 듯한 이상적임과 온화함, 모범적임 뒤에는 기득권층 특유의 '무지함'이 깃들어 있다. 니스와 다윈은 도덕 의식으로 인해 끝없이 갈등하고 앓아눕게 되나, 그들은 결국 자신의 삶을 포기하지 못한다. 러너의 선택과 권위적인 행동에는 삶에 대한 욕구와 짙은 방어 기제가 깔려 있다.

다윈과 니스는 유사한 이유로 인하여 유사한 반응을 보이게 된다. 러너의 손자가 아닌 아들인 니스가 보다 면밀하게 사건을 처리해나가야 했다는 점이 다를 것이다 - 니스는 러너와 실험을 한다는 명목 하에 니스의 특징을 지워버리는 데 성공하고, 같은 동기로 문교부 차관의 자리까지 오르는 데 성공한다. 또한, 두 사람은 자신이 짊어진 죄로부터 영영 자유로울 수 없다. 니스는 30년 간 친구의 추도식을 열었고, 소설 내에서 수도 없이 스스로를 '살인자'라 지칭한다 - 이는 다윈에게 큰 충격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다윈은 아버지와 할아버지를 심판하고자 하나, 아버지에 대한 사랑, 계급으로 이루어진 사회의 허위성, 그리고 자신이 영위하는 특권(3세대인 다윈에게는 이제는 당연시되는 것들)은 그를 손쉽게 굴복시킨다.

다윈은 삼대에 걸쳐 내려오는 죄의 굴레를 끊어내고자 한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다윈이 끊어내고자 하는 것은, 러너와 니스와 그가 느꼈던, '불안'이 본질인 '죄의식'이었을 것이다. 마지막 루미의 시점에서 비춰진 다윈은 초연한 모습의, 소년기를 지나쳐버린 존재로 등장한다. 분명 다윈은 니스와 다른 선택을 했다. 자신의 목을 손아귀에 쥐고 있던 친구를 고르고, 공포에 사로잡혀 '원죄'를 제대로 삭제하지 못한 니스와는 달리, 다윈은 사태를 완전히 간파하지 못한 친구를 고른 채(다른 이를 골랐다면 분명 윤리적인 문제가 뒤따랐을 것이지만...) '원죄'와 '불안'에 더 이상 의문을 가지지 않을 것을 요구한다. 하지만 우리는 다윈이 불안의 굴레를 자신의 대에서 완전히 끊어낸 것인지 영영 알 수 없게 되어버렸을 뿐이다.

박찬욱 감독의 영화 스토커stoker와 유사한 <다윈 영의 악의 기원>속 다윈은 '타락'보다는 '성장기'와 같은 당연한 수순을 밟아 나간다. 우리 역시 사회의 '추악함'과 스스로가 누리는, 혹은 누리지 못하는 '기득권'을 절감하며 어른이 된다. 다윈이 어른이 되고, 소년기가 완전히 끝난 것처럼 보이면서 소설은 끝을 맺는다. 단순히 '성장'이라는 모티프만 놓고 보자면, 소년으로 남은 레오와 훌쩍 어른으로 변모해버린 다윈 중 누가 정답을 쥐고 있는지 우리는 알 수 없다. 간직하는 것과 탈피하는 것, 진실을 밝히는 것과 관용을 베푸는 것(혹은 싹을 잘라내는 것). 1지구와 프라임 스쿨에 요구되는 것은 무엇인가? 청소년 소설이라 단언하기에는 성인인 우리에게도 많은 질문거리를 던져주는 박지리 작가님의 <다윈 영의 악의 기원>을 제발 읽어주시기를 바라면서 이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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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이브 취향 채석장 시리즈
아를레트 파르주 지음, 김정아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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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2학년 시절에 고등학생용 여름방학 프로그램으로 서울대학교에 다니면서 역사학(입문 수준) 수업을 들었던 적이 있다. 당시, 그리고 지금에도 내 마음을 사로잡았던 것은 '역사학'에 대한 역사학, 그리고 서양사학이었는데, 그때 고등학생들을 지도해 주신 교수님들은 대부분 파리에 유학을 다녀오신 분들이었다고 기억한다. 그 중 하루, 한 교수님께서 자신들이 어떻게 박사학위를 땄는지 말씀해주신 적이 있었다. 프랑스 도서관에는 문서를 담아두는 종이 박스가 있고, 이를 꺼내면 당장이라도 먼지가 될 법한 종이 쪼가리들이 잔뜩 들어있는데, 이를 하나하나 훑어보면서 원하는 자료가 있는지 살펴봐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그 강의를 듣고 난 후 나는 역사학을 반드시 전공하기로 마음먹게 되었다.

문학과지성사의 "채석장"시리즈를 <카프카의 아포리즘>, 그리고 사랑해 마지않는 시몬 베유의 <중력과 은총>을 통해 사랑하게 된 나는 채석장 시리즈의 전권을 사 모으게 되었다. 그 중 아를레트 파르주의 <아카이브 취향> 또한 도서관에 위치한, 정리되지 않은 고문서를 다루는 역사가의 나날을 그려낸 논픽션이자 인문 도서이다. 대학을 졸업한 지금, <아카이브 취향>을 보면서 나는 고등학교 2학년으로 돌아간 것처럼 크나큰 반가움과 조금의 후회(그 당시 원하는 대학과 과에 진학했지만, 특성상 서양사와 역사학에 대한 강의가 많지 않았고, 언제나 '조금만 더 열심히 할 걸'이란 마음은 남기 마련이다)를 동시에 느끼게 되었다.

사료 원문을 본다는 게 얼마나 큰 혜택이고 영광인지, 그리고 그것을 찾고 해독하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전공자인 지금은 더욱 뼈저리게 안다. 그럼에도, 읽어내면 언제나 예상하지 못한 결과(기존의 가설이 틀렸다는 말이 아니다. 의외의 발견을 하게 된다는 의미이다.)를 가져다준다는 점에서 사료 해석은 꽤나 즐거운 일이기도 하다. 18세기 형사사건에 대하여 자료를 수집하고 있는 저자는 '날것'이라는 표현을 썼다. 저자가 조사하는 주제는 어떤 면에서는 장발장과 자베르를 떠올리게끔 만든다(앙졸라스와 가브로쉬는 실제로 역사학 논문에서 종종 상징적인 의미로 인용된다). 또한 그 시대를 살아가는 일반적인 민중들의 심리나 사상을 나타내는 말을 '망탈리테(멘탈리티)'라고 하는데, 이(심성사)와 '아날 학파'를 전공하고 싶었던 나는 이 책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바로 이런 느낌으로부터 어떤 나이브하면서도 농밀한 감각이 생각난다. 베일을 찢는 감각. 앎의 불투명함을 헤치고 나아가는 감각. 불확실했던 긴 여행을 거쳐 드디어 존재들과 사물들의 본질에 가닿는 감각.

흔적의 무수함 앞에서 작업자는 한편으로는 멈칫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매료되어 다가간다.

그럼 있다 보세. 자네의 애인에게 나의 입맞춤을 저해달라는 안부 인사를 해본들 무슨 소용인가. 내가 입맞춤을 훔쳐내는 곳은 항상 턱이나 눈 아니면 뺨이지만 엉큼한 자네는 따로 챙긴 캉통canton이 있겠지. 뺨이나 눈에서 입맞춤 천 개를 훔쳐낸들 자네가 거기서 수확하는 입맞춤의 절반 값도 안 되는데. 입술 말일세. 제길. 내가 정말 좋아하는 입술인데. 그럼 있다 ㅂ세.

저자는 18세기 형사사건 자료는 (공문서이므로)일기와는 전혀 다른 성격을 지닌다는 측면을 강조한다. 일기의 경우 개인의 생각과 감정과 사상이 자유롭게(때로는 검열되어)표현된 반면, 형사사건 아카이브의 경우 연루된 자들의 말과 행동, 그리고 생각이 '원했기 때문'이 아니라 전혀 다른 이유로 기록되었기 때문이다. 반면 저자가 얘기하는 '헝겊 편지'와 같은 지극히 사적인 기록은 때로는 학자를 감동시킬 만큼 로맨틱한 측면이 있다. 두 자료는 각각 이성적인 이유와 감성적인 이유로 기록되었다. 두 가지 이유는 분리되는 대신 오히려 서로 상호보완적으로 연결된다. 이때, 이들과 같은 자료는 정말이지 '무수히 많고', 진실과 거짓을 그 당시의 맥락을 생각하면서 구분해 내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저자는 역설적이게도 자료가 너무나도 많기 때문에 '항상 자료가 부족하다'고 이야기한다. 맞춤법이 제멋대로인 자료, 찢어지거나 악천후로 인해 망가진 자료도 '무슨 보물을 품고 있을지 모르기 때문'에 하나하나 살펴 볼 필요가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우연히 발견한 자료 중에서 무엇을 발견할 수 있을지 우리는 예측할 수 없다.

또한, 이 책은 '아스날 도서관'과 같은 한 학자의 일상을 면밀하고 생생하게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준다. 동일한 자리에 앉는 동일한 사람들. 버릇, 옷차림, 혹은 향수가 항상 같은 사서의 모습, 뒷사람을 위해 문을 잡아주는 순간, 가장 좋은 자리, 짜증스럽고 미세한 소음, 패스를 요구받는 상황. 도서관에 다나는 사람이라면(나를 포함해서) 누구나 공감할 만한 도서관이 주는 안정성이자 매력을 저자는 매혹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아카이브는 담론에 가려져 있던 것들을 엿볼 수 있는 곳, 규범적인 행동이나 정형화된 행동이 파기되면서 다양한 행동들, 의외의 행동들, 그야말로 틀을 벗어나는 행동들이 출현하는 곳인 만큼, 아카이브 작업자는 지배와 억압이라는 너무나 익숙한 개념으로부터 거리를 둘 수 있게 된다.

아카이브의 또 다른 이점은 그동안 주목받지 못했던 소수, 즉 '여성'에 대한 기록을 손쉽게 찾아볼 수 있다는 것이다. 아카이브에 따르면 여성에 대한 고정관념에서 상당히 벗어날 수 있다. 여성은 오히려 '과격하고 결연하게 언성을 높이는 방식으로' 상대방을 납득시키고자 한다. 우리가 상상하는 일반적인 여성과 관련된 형사 사건 대신, 전혀 다른 입체적인 여성들(예를 들자면, 궁지에 몰린 남편을 구하기 위해 여성이 대신 직접 싸우거나, 징세원들에게 대항하기 위해 쇠스랑 등으로 무장하는 경우)이 문서에 종종 등장한다. 이러한 모습은 우리가 흔히 상상할 수 있는 고전문학 속 일반적인 여성의 모습과는 큰 차이가 있다(시대를 잠시 내려놓고 살펴보자면, 이러한 여성의 모습은 <두 도시 이야기>의 '마담 드파르주'와는 유사할지 몰라도, <레 미제라블>의 '팡틴'과 '코제트'와는 전혀 다르다).

그런데 왜 동일화는 위험한가. 동일화라는 거울 놀이는 비좁고 답답한 울타리 안에 들어앉은 채 상상력의 길, 사고력과 호기심의 길을 가로막기 때문이다. 동일화한다는 것은 자료를 마비시키는 동시에 자료를 이해하는 힘을 마비시킨다.

아카이브 취향은 아카이브에서 골라낸 하나에 머물러 있고 싶은 마음과 그렇게 골라낸 것들을 하나로 엮고 싶은 마음이다.

"실제로 일어난 일의 칼날, 사건의 칼날을 무디게 해서는 안 된다."

이때, 아카이브를 수집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가설을 뒷받침해줄 수 있는 것들에만 주목하기 위해(동일화identification) 함부로 다른 자료를 도외시해서는 안 된다고 저자는 경고하고 있다. 또한 저자는 과거에 일어났던 사건 중 '아우슈비츠 수용소'처럼 참혹한 사건들에 대하여 '진지한 태도로 임할 것'을 강조한다. 저자는 역사가 실제 사건들을 순서대로 배치하는 일이라고 할 경우, 이가 반드시 '진실'이라는 확고한 '자격'을 갖춰야 한다는 점을 여러 차례 말하고 있다. 즉, 기억되어야 할 사건이자 반드시 잊혀져서는 안 될 사건의 '실재성'은 어떠한 방식으로든 제거될 수 없다.

저자는 18세기를 "공론의 필요성에 관한 활발한 논쟁에서는 계몽된 집단의 여론을 인정했을 뿐, 대중의 여론을 인정한 것은 아니었다"고 서술하며 18세기 형사사건 아카이브의 한계점, 즉 대중이 공적인 사안의 주체가 되는 것을 막는 지배층의 입장에서 쓰여졌다는 점을 지적한다. 하지만 비밀경찰 일지 아카이브에 따르면, 지배층은 끊임없이 대중의 여론을 살피고 조사한다. 즉, 더 이상 지배층은 대중의 정치적 영향력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게 된 것이다. 이를 제대로 '읽어내기' 위해서 저자는 '지배층 위주의 역사적 관점으루부터 탈피할 것'을 주장한다.

역사를 써야 하는 이유는 죽은 과거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죽은 과거를 이야기할 어법을 찾아내 "살아 있는 존재들 사이의 대화"에 참여하기 위해서다.

<아카이브 취향>을 마무리하면서, 저자는 과거와 현재와의 소통은 끊임없이 지속될 수 있고, 지속되고 있으며, 지속되어야 함을 강조한다. 과거는 하나의 '추억'으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과관계'의 굴레 안으로 우리를 끌어당기기도 하며, 이의 속박으로부터 우리를 벗어나게끔 만들기도 한다.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의 기억과 생각과 감정 또한 미래의 누군가가 절실히 찾는 메세지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 즐거워진다. <아카이브 취향>을 통하여 나는 고등학교 2학년 여름방학 당시의 '나'를 만날 수 있었다(그리고 그 애에게 조금 부끄럽고 미안해졌다). 전공한 역사학과 관련된 <아카이브 취향>뿐만 아니라, 문학과지성사의 "채석장"시리즈는 우리의 생각을 순식간에 뒤흔들어놓을 정도로 멋진 글들로 가득하다. 역사학에 관심이 있는 분들, 18세기 문학이나 도서관을 사랑하시는 분들, 그리고 여전히 격동기를 살아가고 있는, 그리고 시대가 주는 좌절감을 느끼면서 살아가는 우리에게 <아카이브 취향>은 반드시 필요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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