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과학의 모든 역사>(매튜 코브 지음, 이한나 옮김)를 읽었다. 부제인 '인간의 가장 깊은 비밀, 뇌를 이해하기 위한 눈부신시도들'처럼, 책은 뇌를 연구한 지금까지의 시도들과 그 성과 그리고 정보를 싣고 있다.
'‘마음이 아프다’라는 뜻은
심장이 아프다는 말일까? 아니면 머리가 아프다는 말일까?
우리는 심장은 감성이고 머리(뇌)는 이성이라고 흔히들 말한다. 인공지능 로봇에게 거기엔 심장이 없잖아 라고 말하며 인간과 로봇을 구분하는 획으로 삼기도 한다. 이처럼 우린 ‘심장’이 ‘인간’이라도 말하는 것 같다. 여전히 말이다.
지난 드라마(제목이 파리의 연인? 기억이 가물가물) 명대사 중에 ‘이 안에 너 있다’라고 말 할 때조차 그녀의 손을 남자의 가슴에 가져다 댄다. 감동적이기도 하고, 오글거리기도 하는 장면이지만, 내 안에 너 있다와 같은 의미로 '나 = 심장'으로 여기는 대사이다. 만약 그녀의 손을 머리에 대고 이 안에 너 있다. 라고 했다면 어땠을까? 아마 드라마의 장르가 코미디로 바뀌지 않았을까 싶다. 그럼 우리 인간은 과연 어떤 기관으로 표상될까? 뇌? 심장? 아님 영국 축구스타 베컴이 나온 광고 카피처럼 둘 다?
이 책은 이런 우리에게 해답이 아닌 질문을 던진다.
<뇌냐? 심장이냐?> 이 책을 펼치며 계속 되뇌어야 하는 질문이다.
책은 뇌의 역할이 무엇이며, 생각과 감정이 머무는 곳은 어디인가? 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역사의 순서와 함께 보여준다.
우선, 고대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생각의 근원이 심장에 있다고 믿었고, 그렇게 주장했다. 그의 이런 주장은 당시 누가 보더라도 너무나 당연한 이치였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사망한 뒤, 그리스 지배하에 있던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서 마침내 뇌의 역할에 대한 통찰이 시작된다. 인체를 해부하고 연구한 덕에 헤로필로스와 에라시스트라토스는 뇌의 핵심적인 두 개 부위, 즉 피질과 소뇌의 해부학적 구조를 어느 정도 규명해낼 정도로 뇌구조를 알아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여전히 생각과 감정의 근원이 뇌냐 아니면 심장이냐 하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로마 시민 갈레노스는 (서기 129년 터키 출생) 뇌가 ‘프노우마(pneuma)’라는 특별한 공기가 뇌에서 생성된다고 주장하며 인간의 기관은 심장이 아닌 뇌에 종속된 것이라 주장한다. 하지만 이 역시 당시 사회를 지배하고 있었던 과거 철학자들의 생각과 경험을 넘어서지 못한다.
다음은 중세다.
14세기 초, 루치오 몬디노의 <몬디노 해부학>이라는 논문으로부터 시작해 베살리우스의 연구까지 이제 사람들은 본격적 의심을 시작한다. 뇌일까? 심장일까? 중세는 이렇게 의심한 것에 대한 적절한 대답을 찾지 못했던 시기였던 것 같다. 하지만 적어도 강한 의구심과 함께 그것을 찾고자 주어진 지식 내에서 많은 노력을 했다. 이 시대를 대표했던 셰익스피어의 대사로 대표될 듯하다.
“말해주세요. 사랑은 어디에서 태어났나오? 심장인가요? 머리인가요?”
-(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 中에서)
이제 근세.
17세기는 뉴튼과 같은 과학자들과 함께 우주를 수학화하여 바라보는 시기였다. 그러한 과학적 사고는 뇌에 대한 생각과 연구에도 박차를 가하게 했다. 18세기에 들어서서야 뇌의 본질에 대해 학술적이고 대중적인 생각이 기초하게 된다. 전기 자극 실험이 시작된다. 개의 머리를 잘라 전기를 흘려보내고 이를 관찰하는 끔찍한 실험까지 일어난다. 인간의 이성과 성찰이 상상력을 제한하지 않았더라면 어떤 일과 어떤 결과가 나왔을지 또 그로인해 어떤 생각을 갖게 되었을지 두려워지는 일들이다.
이어서 근대.
안타깝게도 19세기에는 더 비윤리적인 실험들이 자행된다. 그런데 전 이 실험들은 결국 뇌의 구조와 역할을 밝히는데 획기적인 성과를 내게 된다. 위대한 발견이라 명명될 정도로.
현대를 거쳐 현재까지.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 학자들은 컴퓨터와 인간의 뇌의 유사성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생물학적 피드백이 신호로서 전환 가능할까. 인간이 기계와 다른 점은 무엇일까? 인간에게는 ‘의식’이 있다? 그렇다면 인간은 ‘의식’을 가진 기계인건가? 이러한 의문들은 여러 실험들로 인해 곧 답을 찾게 된다. 현재를 살고 있는 인류라면 쉽게 알 수 있듯이, 뉴련은 생각보다 복잡하며 디지털적으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사이버네틱스 및 뇌에 대한 열망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책 275 page)
이제 우리는 신경세포가 있다는 것을 알아냈고, 이를 탐구하기 시작한다. 신경 부호의 존재는 뇌의 연구에 수학을 입힌 것이다. 앞서 인류가 우주에 대한 답을 찾을 때 수학적 방법을 사용한 것처럼, 뇌를 이해하기 위해 다시 수학의 힘을 빌린 것이다.
사람들은 이에 그치지 않고 또다른 생각을 가지게 된다.
신경세포는 제어가 가능한가? 는 물음이다. 쥐를 이용한 미로 실험을 통해 해마가 일화기억을 부호화하는 능력뿐만 아니라 주변 환경을 곧이곧대로 묘사한 지도를 갖추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공간 정보가 어떻게 해마의 장소 세포에 저장되는지도 알아낸다. 기억의 생화학 기제에 대한 의문이 완전히 풀린 것은 아니지만, 신경전달물질 외의 분자들도 시냅스 활동 및 응고화에 관여한다는 사실을 알아낸 것만으로도 상당히 많은 것을 알아낸 것이다. 연구는 이제 다양한 방면으로 진행된다. 수면 연구, 비시지각, 호르몬, 정서, 뇌 발달 및 유전자가 뇌에 미치는 방식 등으로 확장된다. 그리고 드디어 인간의 뇌를 흉내 낸 기계들의 등장하기 시작한다. 물론 이는 컴퓨터를 시작으로 많은 기계들이 있었지만, 최근의 AI는 그 방점을 찍었다. 일례로 우리는 얼마 전 이세돌과 알파고의 바둑대결을 지켜봤다. 결과는 알파고의 승리였지만, 전패가 아닌 단 한 번의 승리로 이세돌은 화제의 중심에 섰다. 아직은 인간을 확연하게 앞지른 인공지능이 없다는 사실을 확인한 기쁨 때문이었는지, 아님 다른 그 무엇이 인간의 편을 들게 생각하게 만든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어쨌든 인간의 뇌는 인공지능의 뇌와는 다르다는 것을 보여준 사건(이벤트)이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 오랜 시간 동안 그 많은 연구에도 불구하고 뇌의 실체를 밝히는데 필요한 이론적 연구는 너무 부족하다고 책은 말한다.
책의 처음에 언급되었듯이, 우리는 뇌를 컴퓨터와 비교하면서 이해하려는 경향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회로’와 ‘매커니즘’을 컴퓨터와 비교하면서 이해하려 한다. 하지만 아리스토텔레스가 살아있다면 그는 이렇게 말하지 않을까 싶다. ‘인간은 기계가 아니다’라고 말이다. 즉 인간과 유사한 기계를 만들어낼 수는 있을지언정 그 기계가 인간이라고 절대 말하지 않을 것이다. 소설 <프랑켄슈타인>이 준 교훈을 상기하지 않더라도 말이다.
그럼 이쯤에서 잠시 다시 짚어 봐야 할 것이 있다. 뇌인가? 심장인가?
오랜 역사와 많은 연구가 있었지만, 여전히 사람들은 다른 대답 혹은 두 개의 대답 사이에서 고민할 것이다. 그럼 질문을 달리 던져 보면 어떨까? 혹 질문자체가 잘못되었을 수도 있으니 말이다. 다시 질문한다.
“마음의 본질은 무엇인가?”
물론 이에 대한 명확한 답은 책 어디에도 없다. 이 책은 마치 우리는 어디에서 왔으며, 어디로 가는가? 라는 철학적 담론을 실은 철학책 같다. 이런 질문들은 나는 누구인가? 인간은 왜 태어났는가? 라는 질문으로까지 이어지기 십상이다. 그리고 그 형태를 달리한 질문들은 개인의 화두가 되어 평생을 함께한다. 이어 그 생각의 과정에 뇌가 필수적인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뇌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공부(연구)해야 하며, 더 알아야 한다. 그것이 곧 인류의 존재론적 물음에 답하는 것이고, 나 자신을 찾는 것일 테니 말이다.
이렇게 책을 다 읽고 나니, 문득 떠오르는 영화가 있었다.
‘루시’(LUCY, 뤽 베송 감독, 2014)
우리 배우인 최민식님이 출연해 화제가 되기도 한 영화다. ^^
이 영화는 인간의 뇌를 100% 사용할 수 있다면 이라는 가정을 기본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아마 이렇게 되려면 뇌에 대한 연구가 거의 절정에 다다라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잠시 영화의 내용을 들여다 보면,
주인공 스칼릿 조핸슨(루시 역)은 자신의 뇌를 100%까지 사용할 수 있게 된다. 범죄조직의 비밀 약을 몸속에 넣고 운반을 하다 약이 터져서 일어난 일종의 사고로 인해서다. 영화는 그녀가 자신의 뇌를 24% -> 30% -> 40% 급기야 100%를 사용할 수 있게 되는 과정을 액션과 함께 뇌사용에 대한 설명을 화려한 그래픽으로 보여준다.
주인공은 자신의 오랜 기억을 생생하게 떠올릴 수 있고, 타인의 기억도 읽을 수 있다. 40%가 넘어서면서는 공상 과학 수준으로 이야기가 발전한다. 영화 속 박사인 모건 프리먼 (노건 역)의 말처럼 evolution(진화)이 revolution(변혁, 혁명)으로 변하는 것이다. 모든 감각이 깨어나고, 다른 에너지를 흡수해 능력을 향상시키고, 시공간 여행을 하고, 그야말로 상상하는 모든 것을 해낼 수 있는 단계. 그게 바로 뇌사용 100%의 단계라고 영화는 말한다.
뇌 과학이 획기적으로 발전한다면, 이 영화와 같은 일이 현실이 되지 말란 법은 없다. 언젠가 그런 날이 온다면 우리 인간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할 수 있는 다른 존재로 진화할 수 있을 듯 하다. 이런 설렘과 기대로 책장을 덮었다.
어설픈 저의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