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 흘러가듯, 벚꽃이 화르르 날리듯, 바람에 나뭇잎이 팔랑거리듯, 소낙비에 물방울이 튀어오르듯・・・・・・ . 마치 2분이 2초 같았다. 실수 한 번 없었다. 이보다 더 좋을 순 없었다. 가슴속에 맑은 샘물이 퐁퐁 솟아나는 느낌이었다. 아까 콩쿠르에서 이렇게 쳤다면 대상은 내 거였을 텐데.
마지막 건반을 눌렀다. 레스토랑 가득 박수 소리가 터져나왔다. 앙코르를 외치는 사람도 있었다. 인사를 하고 자리로 돌아가니 아라가 선뜻 자기 꽃다발을 건네주었다.
"오늘의 대상은 이초은, 너야. 이거 너 가져."
"왜?"
"널 용서하기로 했어."
아라의 엉뚱한 말에 난 고개를 갸웃댔다.
"뭘 용서해?"
"너나 싫어하잖아."
순간 좀 찔렸다. - P122

"티났어?"
"많이."
아라는 눈치가 없는 게 아니라 마음을 잘 숨기는 특별한애였나.
"미안."
"괜찮아."
"근데 나는 너 좋아."
아라가 나를 자꾸 궁지로 몰아넣는 기분이었다. 나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그러고는 아무 말도 안 하고 아라를 가만히 바라만 봤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난 이게 필요 없다는 거야.
왜? 내가 꽃이니까."
아라 말에 엄마는 빵 터졌다. 하지만 이내 정색했다. 웃음을 참는 것 같았다. 이모가 엄마를 향해 눈을 흘겼다. 미워서 흘기는 건 아닌 것 같았다. 엄마가 이모 팔을 툭 쳤다. - P123

이모도 엄마 팔을 툭 쳤다. 어느새 엄마와 이모는 예전처럼 돌아온 것 같았다.
아라는 양손을 꽃받침처럼 턱에 대고 빵긋 웃었다. 이모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나도 고개를 잘래잘래 흔들었다. 아라가 다시 꽃다발을 내게 안겼다. 나는 얼떨결에꽃다발을 받았다. 향기가 너무 좋아 코를 킁킁거렸다. 좀행복해지는 것 같았다.
어쩐지 아라는 평생 내 곁에 있을 것 같다. 계속 나를 들었다 놨다 할 것 같다. 그때마다 내 마음속 비교 마왕이 불쑥불쑥 튀어나와 나를 슬프게도 기쁘게도 할 것 같다. 하지만 이왕 내 마음속으로 찾아온 거 난 비교 마왕이랑 잘지내고 싶다. 친하게 지내다 보면 내 부탁도 들어주지 않을까. 그럼 누구랑 비교당해도 평소와 다르게 화가 덜 날수도 있을 것 같다. 내가 계속 화를 덜 내면 비교 마왕은 무지 심심하겠지? 그럼 제풀에 지쳐 가출선언을 할 수도 있 - P124

다. 그때 나는 비교 마왕을 붙잡을까 말까? 고민 좀 해봐야겠다.
앗, 이건 방금 든 생각인데, 어쩌면 무대 공포증도 시간이 지나면 사라질 것 같다. 오늘 이 레스토랑에서 연주했던 순간을 떠올리면 세찬 파도 같던 가슴이 가라앉을 것같다. 잔잔한 호수처럼. 마치 마법이 일어나는 순간처럼.
벌써부터 내년 콩쿠르가 기다려졌다. - P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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