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리오는 서양 학문을 접하면서 실학에 눈을 돌리게 된 것이다. 1901년「연암집 』(김택영 편)을 시작으로 『흠흠신서 』와 『목민심서」가 각각 장지연張志淵에 의해 광문사에서 간행되었다. 박지원의 열하일기도 1911년 조선광문회에서 간행되었다. "실로 우리 대한제국의 정치학 가운데 제일 신서가 『목민심서』다" 라는 『황성신문(10902년 5월 19일)의 찬사도 이어졌다. 당대의 과제 해결책으로 다산 정약용이, 서양 근대 학문과의 만남 속에서 연암 박지원의 위대성이 부각된 것이다. 당시 실학은 현실 타개책으로 주목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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