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사기》에는 고구려 장수왕이 도림 스님을 백제에 첩자로 보내 바둑으로 개로왕을 꾀어 나랏일을 엉망으로 만들었다는 내용이나옵니다. 《왕자 융과 사라진 성》은 이 이야기를 훗날 백제를 다시일으킨 무령왕의 어린 시절과 연결 짓습니다. 덕분에 왕릉에 남아있는 유물로만 알고 있던 무령왕을 보다 가까이서 만나는 기쁨을누리게 되지요. 그리고 과도한 부역으로 몹시 힘겹게 살아가야 했던 백제 사람들의 생활 모습도 엿볼 수 있답니다. 철기방‘이 따로있을 정도로 발달했던 백제의 철기 문화도 만날 수 있고요.
초등학교 5학년 사회 교과서에서는 한강 유역을 두고 뺏고 뺏기
‘ 며 전쟁을 벌였던 삼국에 관해 이야기합니다. 삼국은 왜 그렇게 한강 유역을 차지하려 했을까? 그 지역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백제는 한강 유역을 어떻게 뺏고 빼앗겼을까? 관심을 갖고 보면 질문이 꼬리를 물고 이어질 법한데, 교실 속 아이들은 한 번도 이런
‘질문을 하지 않습니다. 그런 생각을 할 기회가 아예 없었으니까요.
‘그러다 보니 풍납토성 성벽 위에 올라도, 몽촌토성을 뛰어다니면서도 아무런 느낌을 가질 수 없었겠지요.
‘ 이 책을 아이들과 함께 읽고 곧 개관할 한성 백제 박물관과 몽촌
‘토성, 풍납토성을 둘러보며 흑풍이와 함께 질주하던 왕자 융을 떠올려 보고 싶습니다. 그렇게 한성 백제 500여 년의 역사를 더듬어보고 싶습니다. 여러분도 함께 해 보는 거 어때요??

융도 생각했던 바였다. 그 정도 빠르기라면 고수였다.
"걸취라는 놈, 혹시 다치진 않았겠지?"
수상한 일도 많고, 알아볼 일도 많았지만 융은 그보다 걸취가어찌 됐을지 걱정이었다. 길거리 아이까지 괜한 일에 끼어들게했나 싶었다.
 빌어먹는 애들은 쉽게 다치지 않아, 쉽게 굶기는 해도."

 거기에 멍석을 깔아 사람이 잘 수 있도록 했다. 한쪽은 부엌이었다. 쪽구들과 부엌살림이 있었다.
살림이라고 해 봤자 그릇 몇 개가 다였다. 항아리는 텅 비어 있었다. 융은 걸취에게 줄 보리를 바가지에 덜어 주었다.
"어느 집이나 이럴까?"
흑풍이를 끌고 대숲으로 들어가면서 융이 말했다.
"성 밖은 다 이래, 씨앗으로 쓸 것까지 먹어 버려서 농사를 못짓는 집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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