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얼굴을 찾을 때까지 믿음의 글들 240
클라이브 스테이플즈 루이스 지음, 강유나 옮김 / 홍성사 / 2007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사랑은 너무 어려 양심이 무엇인지 모른다네.’ 세익스피어

 

이 책의 시작하는 첫페이지에 있는 말이다. 이야기 시작 전보다 더 앞인 있는 저자의 말 앞에 있다. 처음에는 왜 이 말이 이 책의 첫페이지에 있는지 몰랐다. 마지막 페이지를 덮자 어렴풋이 알 것 같다.

 

오루알이 동생을 사랑한 것은 어린 사랑이라는 것이다. 오루알 자신은 엄마가 일찍 돌아가신 프시케를 엄마와 같은 마음으로 동생 프시케를 돌보고 사랑했다고 생각하지만, 댓가를 바라는 사랑이라는 것이다. 이것을 증명하는 부분 중에 내가 찾아낸 부분은 세 곳이다. 프시케가 전염병이 걸린 백성들을 치료해주지만 얼마 있다 재물로 바쳐질 때 백성들이 말리지 않은 부분, 아니 오히려 적극적으로 찬동한 부분에서 오루알은 백성들이 은혜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프시케가 재물로 바쳐진 후 다시 극적으로 만나게 되었을 때 프시케는 행복하다고 했고, 왕궁으로 가기 싫어했는데도 다시 왕궁으로 프시케를 데려가려는 오루알의 모습이 두 번째다. 세 번째는 여우선생과 바르디아에게 자기중심적인 사랑으로 그들을 대했지만, 그것을 깨달은 것은 신의 얼굴을 보았을 때이다. 여우선생이 자유인이 되었을 때 떠나는 것을 두려워했고, 바르디아가 가정에 충실하지 못했어도 당연히 생각할 뿐 오루알은 알지 못했다.

그 전까지 신을 고소하는 고소장을 쓰던 오루알이 신의 얼굴을 마주 대했을 때에야, 즉 신을 제대로 만났을 때에야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닫게 되었다.

 

나 역시 그런 어린 사랑, 조금 유식한 말로 하면 저급한 철학에 빠져있는 것은 아닐까? 내 아이에게 학교에서 만나는 아이들에게 어떤 댓가를 바라고 있고, 내 중심적으로 생각하고 대하기에 상처를 받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내가 이렇게 정성을 쏟고 노력하고 있는데 내 말을 듣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화내고 있는 경우가 있지 않은가? 정말 상대의 입장에서 공감하고 배려한다는 것은 무엇이고 어떻게 하는 것일까? 프시케는 그렇게 하면 잘못된다는 것과 벌을 받게 된다는 것, 또 그것이 쓸데없는 일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오루알의 청을 들어주어 주는 성숙한 사랑의 모습을 보인다. 백성들이 치료에 고마워하든 안 하든 오히려 원망하든 자신이 사랑으로 하는 행동을 멈추지 않는다. 신의 재물이 되는 것도 주저함이 없었다.

 

왜 루이스는 그 많은 그리스로마신화 중에 큐피트와 프시케의 사랑을 가져와서 이 이야기를 썼을까? 또 신화와 달리 프시케의 궁전을 보이지 않는 곳으로 만들어야 했을까? 왜 못생긴 여자의 마음이 필요했을까? 신앙인이 아닌 사람들에게 신의 얼굴을 마주대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프시케는 오루알과 달리 어떻게 어릴 때부터 성숙한 사랑을 하는 사람이 되었던 것일까? 저자인 루이스는 나니아 연대기나 다른 저작물보다 왜 이것을 최고의 작품으로 꼽았던 것일까? 이런 궁금증들을 해결하면 처음에 언급한 세익스피어의 말의 의미를 좀 더 분명하고 선명하게 알게 될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