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길 시간여행 - 수채화로 길어 올린 추억의 풍경 ㅣ 여행길 그림책 2
최명옥 지음 / 인문산책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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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방의 한구석에서 먼지 쌓인 앨범을 펼쳐 든 것처럼, 최명옥의 <골목길 시간여행>은 기억의 저편으로 밀려났던 풍경들을 단숨에 눈앞으로 불러온다. 칠십 평생을 살아오며 수많은 길을 걷고 수많은 문을 열었지만, 내 유년의 기억이 온전히 살아 숨 쉬는 곳은 화려한 대로가 아니라 늘 비좁고 어두웠던 골목길이었다. 이 책은 단순히 지나간 시절에 대한 복고풍의 향수를 자극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시절 우리가 골목길에서 나누었던 삶의 온기와 공동체의 가치를 담담하게 반추하게 만든다.

 

저자가 안내하는 골목길을 따라 걷다 보면, 그 길은 이내 내가 자란 시골 마을의 어귀로, 혹은 청년 시절 치열하게 살아가던 옛 도시의 뒤안길로 이어진다. 지금의 도시는 모든 것이 반듯하고 깨끗하며 효율적이다. 사생활은 철저히 보호되고 집과 집 사이에는 높은 벽과 보안장치가 가로막고 있다. 편리함과 쾌적함을 얻었지만, 대신 우리는 문을 닫는 순간 타인과 단절되는 고립을 택했다. 그러나 이 책이 기록한 골목길은 달랐다. 그곳은 안과 밖의 경계가 모호한 곳이었다. 대문은 늘 비스듬히 열려 있었고, 좁은 골목길은 누구 한 사람의 소유가 아닌 모두의 마당이자 거실이었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상실에 익숙해지는 과정이기도 하다. 옛 동무들도, 젊은 날의 활기도, 그리고 그 시절의 풍경도 이제는 기억 속에만 존재한다. <골목길 시간여행>을 읽으며 가장 가슴이 먹먹했던 이유는, 그 골목길이 담고 있던 ‘사람의 냄새’가 그리웠기 때문일 것이다. 옆집에서 무슨 국을 끓이는지 냄새만으로 알 수 있었고, 숟가락 개수까지 훤히 꿸 정도로 이웃의 대소사를 제 일처럼 여기던 시절이었다. 어머니들이 골목 어귀 평상에 모여앉아 콩나물을 다듬으며 나누던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은 그대로 삶의 위로이자 연대였다. 그 시절의 가난은 서글펐지만, 골목이 주는 유대감 덕분에 외롭지는 않았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심각한 갈등과 고립을 겪고 있다. 노년의 눈으로 바라보는 세상은 물질적으로는 풍요로우나 정신적으로는 한없이 빈곤해 보인다. 개인주의가 심화되면서 이웃 사촌이라는 말은 박물관의 유물이 되었고, 공동체의 윤리는 희미해졌다. 저자는 골목길의 풍경을 통해 우리가 잃어버린 것이 무엇인지를 묵직하게 질문한다. 그것은 서로를 향한 환대와 염치, 그리고 함께 살아간다는 것에 대한 온기다. 골목길은 아이들에게는 최고의 놀이터였고, 어른들에게는 삶의 애환을 나누는 소통의 광장이었으며, 노인들에게는 외로움을 달래주는 사랑방이었다.

 

이 책은 단순히 과거를 그리워하는 노스탤지어에 머무는 것을 경계한다. 대신 그 좁고 구불구불한 길들이 품고 있던 가치를 어떻게 오늘의 삶에 복원할 것인가에 대한 깊은 사색을 던져준다. 초고층 아파트 단지와 거대한 쇼핑몰이 채울 수 없는 인간적인 교류의 공간, 그것이 바로 골목길이 지닌 무형의 자산이었다.

 

책장을 덮으며 깊은 숨을 몰아쉰다. 눈을 감으니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흙먼지 날리던 유년의 골목길이 선명하게 그려진다. 그 길 위에서 나를 키워낸 수많은 이웃의 얼굴들이 스쳐 지나간다. <골목길 시간여행>은 나 같은 노년에게는 인생을 따스하게 되돌아보게 하는 거울이며, 젊은 세대에게는 가보지 못한 인간다운 삶의 풍경을 보여주는 소중한 기록이다. 속도와 효율만을 쫓는 세상 속에서, 잠시 걸음을 멈추고 우리가 진짜 지켜야 할 삶의 품격과 공동체의 가치가 어디에 있는지 이 책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일깨워주고 있다. 수많은 시간이 흘러도 결코 바래지 않을 온기가 그 골목길 안에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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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시대에 인문학은 무엇인가 - 107세 철학자와 함께하는 특별한 인문학 여정
김형석 지음 / 위더북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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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70대의 황혼기에 접어들고 보니, 세상의 변화 속도가 무서울 정도로 빠르다는 것을 매일 실감한다. 인공지능이니, 챗GPT니 하는 말들이 연일 뉴스에 오르내리고, 손주 녀석들은 스마트폰 화면을 들여다보며 내가 이해하기 힘든 세상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나 같은 노년층은 점점 더 소외되는 기분이 들었고, 과연 인간이 기계보다 나은 점이 무엇인가 하는 근원적인 회의감이 들기도 했다. 그러던 중 백 세를 넘긴 김형석 교수의 신작 <AI 시대에 인문학은 무엇인가>라는 책 제목을 보았다. 한 세기를 살아온 대선배 철학자라면 이 거대한 변화의 물결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을지, 그리고 우리처럼 나이 든 이들이 이 시대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해답을 얻고 싶어 이 책을 펼치게 되었다.

 

책을 읽으며 가장 깊이 노트를 적어두고 마음속에 새긴 한 문장은 다음과 같다. “AI는 놀랍도록 편리하고 효율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지만, 역사적 맥락과 인간 사회의 정신적 가치, 창조적 생명력을 이해하고 평가하는 능력은 인간 고유의 능력이다.”(p.142)

 

이 문장은 나에게 큰 위로이자 깨달음으로 다가왔다. 우리는 흔히 지식의 양이나 계산 속도에서 AI를 이길 수 없다는 사실에 좌절하곤 한다. 실제로 스마트폰 하나만 있으면 세상의 모든 지식을 몇 초 만에 찾아낼 수 있는 세상이다. 하지만 김형석 교수는 바로 그 지점에서 인문학의 진짜 역할이 시작된다고 말한다. AI가 아무리 정확하고 빠른 정답을 찾아낸다 한들, ‘우리가 왜 살아야 하는지’, ‘어떻게 살아야 가치 있는 삶인지’에 대한 방향성을 제시해주지는 못한다는 뜻이다. 70 평생을 살아오며 얻은 삶의 지혜와 경험,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는 마음은 결코 기계가 흉내 낼 수 없는 인간 고유의 영역임을 이 문장을 통해 다시금 확신할 수 있었다.

 

이 책을 통해 깨달은 핵심은 기술이 인간을 지배하는 것처럼 보이는 시대일수록, 역설적으로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탐구하는 인문학적 정신이 더욱 절실해진다는 사실이다. 저자는 백 년의 삶을 복기하며 과학기술의 발전이 인간을 편리하게 만들 수는 있어도, 인간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은 결국 도덕적 가치와 이성, 그리고 사랑이라고 강조한다. 나이가 들면서 ‘내가 이 변화하는 세상에 더 이상 쓸모없는 존재가 아닐까’ 하는 가벼운 우울감이 찾아오곤 했는데, 책을 덮으며 나의 오랜 경험과 삶을 대하는 태도 자체가 거대한 인문학적 자산일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기계가 채울 수 없는 따뜻한 인간성과 윤리적 책임감을 지키는 것이 우리 세대가 다음 세대에게 물려주어야 할 마지막 역할이라는 깨달음도 함께 찾아왔다.

 

이 책은 나와 같은 70대 이상의 시니어 세대, 그리고 새로운 기술 변화 앞에서 중심을 잡지 못하고 방황하는 2030 청년들에게 적극적으로 추천하고 싶다. 우선 동년배들에게는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 대한 두려움을 내려놓고, 노년의 삶이 가진 고유한 가치와 지혜를 재발견하는 계기를 줄 것이다. 기계와 경쟁하려 하지 말고, 우리가 가진 인간다움의 깊이를 더해가는 것이 노년의 진짜 품격임을 알게 해준다.

 

반대로 청년들에게는 속도와 효율성만을 쫓느라 정작 중요한 ‘삶의 목적지’를 잃어버리지 않도록 돕는 훌륭한 나침반이 되어줄 것이다. 최첨단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이 백 세 철학자의 나지막한 목소리를 통해, 기술을 다스리는 인간의 정신이 얼마나 위대한지 배우기를 바란다. 결국 AI 시대의 주인공은 기계가 아니라, 질문을 던지는 인간 자신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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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권으로 끝내는 AI 전환
오형섭 지음 / 하움출판사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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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오형섭 저자의 <한 권으로 끝내는 AI 전환>을 읽으며, 세상의 변화가 참으로 거침없고 매섭다는 생각을 먼저 지울 수 없었다. 70대라는 나이는 격동의 현대사를 온몸으로 겪어낸 세대다. 전화기 한 대가 귀하던 시절부터 컴퓨터의 보급, 스마트폰의 등장까지 수많은 기술적 대전환을 목격해 왔지만, 최근 사회 전반을 뒤흔들고 있는 ‘인공지능(AI) 전환(AX)’은 그 깊이와 속도 면에서 차원이 다른 두려움과 경외감을 동시에 안겨준다.

 

이 책은 단순히 AI 기술의 구조를 설명하는 기술서가 아니다. 기술의 발달이 우리의 산업, 경제, 그리고 일상 구조를 어떻게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는지를 명확하게 짚어주는 ‘문명 전환의 안내서’에 가깝다. 저자는 AI 전환이 일부 IT 기업이나 젊은 세대만의 전유물이 아니며, 국가와 기업, 나아가 개인의 생존이 걸린 필수적인 흐름임을 냉철하게 분석한다. 책장을 넘기며 과거 우리가 공업화와 정보화 시대를 맞이했을 때 느꼈던 그 거대한 변화의 서막이 다시금 재현되고 있음을 직감했다.

 

기성세대의 시선에서 볼 때, AI는 종종 먼 나라 이야기처럼 느껴지기 쉽다. 챗GPT니, 생성형 AI니 하는 용어들은 일상의 언어와 동떨어져 있고, 이를 배우지 않아도 살아가는 데 큰 지장이 없을 것 같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저자는 책 전반을 통해 AI 전환이 이미 보이지 않는 곳에서 우리의 삶을 규정짓고 있다고 경고한다.

 

이 지점에서 깊은 성찰을 하게 된다. 나이가 들수록 새로운 기술 앞에서 작아지고, ‘내 세대의 일은 아니다’라며 선을 긋기 쉽다. 하지만 이 책을 읽다 보면, 그러한 태도가 결국 급변하는 사회와의 단절을 초래하고 세대 간의 소외를 심화시킬 수 있음을 깨닫게 된다. 기술을 모르는 노년층이 겪는 디지털 소외는 이제 단순히 키오스크 사용의 불편함을 넘어, 사회적 담론과 경제적 흐름에서 완전히 배제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경각심이 든다.

 

그렇다면 70대의 눈으로 바라본 AI 전환의 해법은 무엇인가. 이 책은 변화를 무조건 수용하라는 강요 대신, 본질을 짚어내어 독자가 스스로 생각할 여백을 준다. AI가 아무리 정교해지고 인간의 일을 대체한다 하더라도, 결국 그 기술을 움직이고 방향을 잡는 것은 인간의 몫이다.

 

여기서 오랜 세월 삶의 궤적을 그리며 쌓아온 노년층의 ‘지혜’와 ‘통찰’이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희망을 본다. AI는 방대한 데이터를 학습해 정답을 찾아내지만, 데이터 너머의 인간적인 가치, 도덕적 윤리, 그리고 오랜 경험에서 나오는 직관과 성찰은 흉내 내기 어렵다. 저자가 강조하는 AI 전환의 핵심 역시 기술 그 자체가 아니라, 기술을 활용해 어떤 가치를 창출할 것인가에 방점이 찍혀 있다. 따라서 기성세대는 기술의 작동 원리를 완벽히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AI가 나아가야 할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는 정신적 나침반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책을 덮으며 무거운 숙제를 안은 기분이다.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나는 늙었으니 상관없다”는 태도는 비겁한 변명이 될 수 있다. 비록 손가락이 둔하고 새로운 용어가 낯설지라도, 세상이 어디로 흘러가는지 관심을 끄지 않는 것, 그것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노년의 품격이자 책임이다.

이 책은 젊은 기업가나 직장인들에게는 실무적인 지침서가 되겠지만, 70대의 독자에게는 시대를 읽는 안목을 넓혀주고 스스로의 위치를 돌아보게 만드는 훌륭한 거울이 되어주었다. 변화를 두려워하기보다 묵묵히 바라보고 이해하려는 자세, 그것이 백세 시대를 살아가는 오늘날의 노년이 지녀야 할 진정한 ‘전환’의 태도일 것이다. 거대한 변화의 물결 앞에서 나지막이 일독을 권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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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질이 일상에서 이렇게 문명을 바꿀 줄이야 - 세계사를 바꾼 문명의 생성과 문화인류 이야기
홍익희 지음 / 체인지업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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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책장에 꽂힌 수많은 책 중에서 홍익희의 <물질이 일상에서 이렇게 문명을 바꿀 줄이야>를 골라 든 것은, 70년 넘는 세월 동안 내가 직접 겪어낸 눈부신 물질의 변화가 떠올라서였다. 돌이켜보면 내 유년 시절은 흙과 나무, 그리고 짚으로 이루어진 아날로그 세상이었다. 땔감을 때고 우물물을 길어 쓰던 세상에서, 지금처럼 버튼 하나로 모든 것이 해결되는 플라스틱과 실리콘의 세상으로 넘어오기까지, 우리 세대는 인류 역사상 가장 가파른 물질문명의 전환기를 온몸으로 통과해 왔다. 이 책은 우리가 무심코 누리는 일상의 물건들이 어떻게 세계사의 물줄기를 바꾸었는지 거대한 지도를 펼쳐 보여준다.

 

저자는 석기, 청동기, 철기라는 교과서적인 분류를 넘어 인간의 삶을 극적으로 바꾼 다양한 물질들을 추적한다. 면화, 설탕, 고무, 유리, 석유, 그리고 현대의 반도체에 이르기까지, 일상에서 흔히 접하는 물질들이 단순한 소비재가 아니라 세계 질서를 재편한 ‘보이지 않는 손’이었음을 날카롭게 파헤친다.

 

책을 읽으며 가장 깊이 머무른 대목은 면화와 석유에 관한 이야기였다. 목화에서 실을 뽑아 옷을 짓던 시절은 그리 멀지 않은 과거다. 하지만 그 면화가 산업혁명의 도화선이 되고, 세계 무역의 중심 축이 되었으며, 나아가 미국의 남북전쟁까지 유발했다는 거시적인 역사적 연결고리를 마주했을 때 가슴이 묵직해졌다. 우리가 매일 입고 벗는 옷 한 벌에 인류의 욕망과 투쟁, 그리고 피땀 어린 역사가 고스란히 녹아 있는 셈이다.

 

석유 역시 마찬가지다. 내가 젊은 시절을 보낸 20세기 후반은 그야말로 석유의 시대였다. 석유는 자동차를 움직이는 연료를 넘어 플라스틱, 비닐, 화학섬유, 약품에 이르기까지 현대 문명의 뼈대와 살을 만들었다. 석유가 가져온 물질적 풍요 덕분에 우리 세대는 굶주림을 벗어나 성장의 풍요를 누릴 수 있었다. 하지만 저자는 그 풍요의 이면에 가려진 환경 파괴와 자원 전쟁의 어두운 그림자도 함께 짚어낸다. 노년의 눈으로 바라보는 오늘날의 기후 위기와 환경 오염은, 우리가 앞만 보고 달려오며 물질을 과도하게 소비한 대가인 것 같아 마음 한구석에 무거운 부채감이 남는다.

 

이 책의 장점은 역사를 단지 과거의 기록으로 박제하지 않고, 현재를 거쳐 미래로 연결한다는 점이다. 마지막 장에 등장하는 희토류와 리튬, 반도체 이야기는 지금 우리가 마주한 패권 전쟁의 본질을 정확히 꿰뚫고 있다. 과거에 후추와 면화, 석유를 차지하기 위해 총칼을 겨누었다면, 이제는 배터리와 칩을 만들기 위해 눈에 보이지 않는 기술 전쟁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나이가 들면서 세상의 뉴스들이 복잡하고 낯설게만 느껴질 때가 많았는데, 물질이라는 렌즈를 통해서 보니 오늘날의 지정학적 갈등과 경제적 격변이 비로소 선명하게 눈에 들어온다.



70대의 입장에서 이 책은 단순한 역사 지식의 확장을 넘어, 내가 살아온 시대를 객관적으로 조망하게 만드는 거울과 같다. 또한 분량이 부담없이 한 권으로 세계사 정주행을 시작하기에 알맞다. 우리는 물질의 결핍에서 출발해 물질의 과잉으로 끝나는 시대를 살고 있다. 물건이 귀해 기워 쓰고 아껴 쓰던 미덕은 사라지고, 이제는 한 번 쓰고 버리는 편리함이 미덕이 된 세상이다. 물질은 분명 인간의 삶을 편리하고 윤택하게 만들었지만, 그만큼 인간의 정신과 공동체의 가치를 파편화시켰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이 책은 인문교양의 시작으로 삼기에 매우 좋은 가이드북이 된다.


책은 우리에게 물질을 거부하라고 말하지 않는다. 다만 일상의 당연함을 의심하고, 우리가 발 디디고 있는 문명의 실체를 정확히 인지하라고 권한다. 책을 덮고 주위를 둘러보니 방 안을 가득 채운 가구, 가전제품, 그리고 손에 쥔 스마트폰까지 어느 것 하나 거대한 문명의 역사와 연결되지 않은 것이 없다.

 

이제 남은 생 동안 내가 실천해야 할 지혜는 물질의 편리함에 매몰되지 않고, 그것이 지닌 무게와 책임을 생각하는 일일 것이다. 내 일상을 채운 물질들의 역사를 이해하는 것, 그리고 다음 세대에게 조금 더 지속 가능한 지구를 물려주기 위해 소비를 덜어내는 것. 그것이 이 책이 나에게 던진 묵직한 화두이자, 격동의 물질문명을 누려온 한 노년이 가져야 할 마땅한 예의가 아닐까 싶다. 세상을 바라보는 안목을 한 단계 넓혀준 참으로 고마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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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중의 아메리카 인사이드 - 역사를 알면 미국의 속내가 보인다 ㅣ 나의 두 번째 교과서 시즌3
김봉중 지음, EBS 제작팀 기획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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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김봉중 저자의 <김봉중의 아메리카 인사이드>를 읽으며, 오랜 세월 멀리서 혹은 가까이서 지켜보았던 미국이라는 거대한 나라의 민낯을 마주한 기분이다. 70대를 살아가는 우리 세대에게 미국은 단순히 지구 반대편에 있는 하나의 국가가 아니다. 전쟁의 폐허 속에서 구호물자를 보내주던 고마운 나라였고, 젊은 날에는 자유와 풍요, 그리고 성공을 상징하는 동경의 대상이었다. 청춘의 한 자락에서 귀가 아프도록 들었던 팝송과 할리우드 영화, 그리고 세계의 중심에서 호령하던 미국의 위상은 우리 세대의 기억 속에 깊이 각인되어 있다.

 

그러나 오늘날 뉴스를 통해 접하는 미국의 모습은 우리가 알던 과거의 찬란한 등대와는 사뭇 다르다. 극단적인 정치적 분열, 끊이지 않는 총기 사고, 인종 갈등, 그리고 자국의 이익만을 앞세우는 고립주의적 행태는 당혹감을 자아낸다. 도대체 미국은 왜 이렇게 변했을까. 이 책은 바로 그 질문에 대한 답을 미국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인간의 본성이라는 다각도의 렌즈를 통해 명쾌하게 풀어낸다.

 

저자는 미국을 이해하는 핵심 키워드로 ‘예외주의’와 ‘프런티어 정신’, 그리고 ‘자유와 평등의 모순’을 꼽는다. 책을 읽으며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미국이 가진 거대한 장점들이 동시에 그들의 아킬레스건이 되는 과정을 추적한 점이다. 서부를 개척하며 다진 프런티어 정신은 오늘날 세계를 선도하는 혁신의 원동력이 되었지만, 동시에 타인과 국가의 개입을 극도로 거부하는 이기적인 개인주의와 총기 집착이라는 부작용을 낳았다.

 

이러한 분석을 보며 깊은 성찰에 잠기게 된다. 우리 세대 역시 한강의 기적이라 불리는 고도성장기를 이끌며 ‘하면 된다’는 역동적인 정신으로 살아왔다. 하지만 그 성장의 그늘 뒤에 심각한 양극화와 가치관의 혼란이라는 과제를 남기지 않았던가. 미국의 역사적 모순은 비단 남의 나라 이야기로만 읽히지 않는다. 국가가 하나의 목표를 향해 격렬하게 달려갈 때, 그 이면에 쌓이는 사회적 비용과 상처가 어떻게 미래 세대의 발목을 잡는지 엄중한 경고로 다가온다.

 

책의 중반부를 넘어가며 오늘날 미국을 찢어놓고 있는 보수와 진보의 이념 갈등, 그리고 세대·인종 간의 대립을 다룬 대목에서는 묘한 동질감과 씁쓸함을 느꼈다. 미국은 다문화·다인종이 모여 만든 ‘용광로’ 같은 나라라고 배웠지만, 책이 보여주는 현실은 서로 섞이지 못하고 겉도는 ‘샐러드 볼’에 가깝다. 특히 트럼프 현상으로 대변되는 기득권층과 소외된 백인 노동자들의 분노, 그리고 이에 맞서는 젊은 세대의 진보적 움직임은 현재 대한민국이 겪고 있는 진통과 너무나 닮아 있다.

 

세상을 70년 넘게 살아오며 터득한 한 가지 진리가 있다면, 극단적인 대립은 결코 파국 외에 아무것도 낳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미국이 과거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극단에 치우쳤을 때마다 터져 나온 내부의 자정 작용과 타협의 시스템 덕분이었다. 저자가 지적하듯, 미국의 진짜 힘은 아무리 흔들려도 민주주의의 기본 가치로 돌아가려는 복원력에 있다. 이를 보며 우리 사회의 갈등을 바라보는 시선도 조금은 더 넓어질 필요가 있음을 깨닫는다. 당장의 혼란에 분노하거나 절망하기보다, 역사의 도도한 흐름 속에서 균형을 잡으려는 노력이 중요하다는 것을 배운다.

이 책은 단순히 미국의 정치와 외교를 분석하는 딱딱한 이론서가 아니다. 미국의 시작부터 현재까지를 관통하는 문화적 역동성을 친절하게 짚어주는 훌륭한 인문학적 길잡이다. 70대의 눈으로 바라본 미국은 이제 맹목적인 동경의 대상도, 그렇다고 무조건적인 비판의 대상도 아니다. 우리가 살아온 시대를 지배했던 거대한 문명의 실체를 냉정하게 객관화하여 바라볼 수 있는 성숙한 시선이 생겼기 때문이다.

 

책장을 덮으며, 급변하는 국제 정세 속에서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을 다시금 고민하게 된다. 미국이라는 나라의 내면을 깊숙이 들여다보는 일은 결국 세계 속에서 우리의 위치를 확인하고 앞으로의 생존 전략을 짜는 일과 직결되어 있다. 나이가 들었다고 해서 세상의 흐름에 눈을 감을 수는 없다. 오히려 오랜 경험을 가진 기성세대일수록 이처럼 깊이 있는 책을 통해 시대를 읽는 안목을 유지해야 한다. 그것이 사회의 어른으로서 중심을 잡는 방법이다. 이 책은 과거의 기억과 현재의 변화를 잇는 훌륭한 다리가 되어주었으며, 급변하는 세계를 이해하고자 하는 모든 이들에게 깊은 사유의 시간을 선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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